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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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의 공존의 지혜] 일하는 장애인이 놀랍지 않은 사회

입력 2021. 01. 14. 16:00 수정 2021. 01. 1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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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도 졸업 시즌은 다가왔고, 이제 졸업을 앞둔 이들은 그간 학교에서 배우고 익힌 지식과 기술을 잘 활용할 만한 좋은 일자리를 찾고 있다. 어느 때보다 취직하기 쉽지 않은 시기지만, 훨씬 오래전부터 학교 졸업은 했어도 취직은 먼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이 있다.

2019년 기준 장애인의 고용률은 34.9%로 전체 인구의 고용률(60.9%)에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며, 중증장애인의 고용률은 20%에 불과하다. 전체 인구의 30대에서 50대 고용률은 70%를 넘는 반면, 동일 나이대의 장애인 고용률은 50%의 수준이다. 전체 인구 취업자 중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인구는 13%이지만 장애인 취업자 중 27.5%가 단순노무직에 종사한다. 장애인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율이 60%가 넘는다. 이 수치들을 보고 어쩌면 신체나 정신에 손상이 있는 장애인인데 그다지 놀랍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양한 장애의 종류, 전체 장애인 중 63%에 달하는 경증 장애인의 수와 OECD 국가의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고용률 격차를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일하는 장애인의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우리나라도 장애인이 일반 노동시장에서 일하도록 돕는 방법으로 근로자 50인 이상의 기업에 대해 근로자의 3.4%(공공부문), 3.1%(민간부문)를 장애인으로 고용하도록 하는 의무고용제도가 있고, 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에 페널티를 부과하는 고용부담금제도가 있고, 반대로 요구된 비율 이상 고용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고용장려금 제도가 있다. 5~6%에 이르는 프랑스나 독일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비교적 낮은 의무고용률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행률은 낮은 편이다. 공공 부문에서는 약 80~90%가 지키고 있지만, 전체 기업의 45%만이 의무고용률 수준을 이행하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2019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의 대기업의 평균 장애인 고용률은 1.5%밖에 안되며,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는 기업은 단 한 곳 뿐이었다. 고용부담금이 기업의 규모와는 무관하게 의무고용률을 채우지 못한 근로자 수만큼 비례하여 부과되니 대기업의 경제 수준에서는 부담금이 전혀 부담이 되지 않을 뿐더러 장애인을 고용하여 혹시나 시끄러운 일이 생길까 하는 부담을 떠안느니 차라리 부담금을 내는 것이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물론 기업이 장애인 근로자를 채용하려고 해도 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가 없거나, 적합한 직무 수행이 가능한 장애인이 부족하여 장애인 지원자가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장애인 채용 경험이 없는 것이 큰 어려움이라고도 한다. 장애인을 채용했다 하더라도 장애인 근로자가 개인의 능력과 무관한 일을 맡기도 하고, 때론 장애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기도 하며, 낮은 임금이나 부당해고를 겪기도 한다.

베어베터에서 일하고 있는 장애인 직원들과 이진희 공동대표.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런 양쪽의 어려움을 모두 절충한 새로운 장애인 고용 기업이 있다는 좋은 소식도 있다. 장애인고용부담금 납부 의무가 있는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한 표준사업장과 '연계고용'을 하는 것이다. 기업은 장애인 사업장이 생산한 물품을 구매함으로써 고용부담금을 감면받고, 장애인 사업장은 가격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다. 기업은 장애인의 고용을 도우면서 실제 구매금액의 50%를 정부로부터 환급받는 실리를 얻게 된다. 이것을 활용한 사업장으로 '베어베터'라는 회사가 있다. 설립 후 8년이 지난 지금 240여명의 발달장애인이 일하고 있다.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정해진 일정대로 움직이고, 규칙과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데 장점을 가진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살려 인쇄, 원두 로스팅, 제과, 화환 공급 등의 직무를 수행하고 이들의 품질 높은 제품을 구매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상당수의 발달장애인 직원들이 대기업으로 성공적인 이직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은 경제적 자립과 자아 실현, 소속감과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며, 일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기본권의 실현이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동일하게 부여받은 이 기본권이 지혜롭고 조화롭게 실현되어 나가기를 바란다. 더는 장애인이 학교에 다니는 것이 놀랍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 이제 일하는 장애인이 놀랍지 않은 사회로 나아가길 바란다.

이지선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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