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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아동학대, 그 악순환의 고리는 어떻게 끊는가 / 조이스 박

한겨레 입력 2021. 01. 14. 16:06 수정 2021. 01. 14.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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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조이스 박ㅣ영어교육가·에세이스트

고대 소아시아 프리기아의 수도에는 고르디우스의 전차가 있었다. 이 전차는 밧줄로 칭칭 감겨 복잡한 매듭으로 묶여 있었고,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정복할 거라는 예언이 내려오고 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이 매듭을 풀려고 애썼지만 아무도 풀지 못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 도시에 입성했을 때 매듭을 풀었다. 검을 뽑아 단번에 매듭을 잘라 끊어서 매듭을 풀고 예언을 성취하는 자가 되었다. 이후, 풀 수 없는 난제를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이라고 부르며, 난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것을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른다(to cut the Gordian knot)고 말한다.

아동학대 사건이 터지면 인간은 정말로 악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나치 독일의 악을 본격적으로 탐구했던 한나 아렌트는 근본악(radical evil)이라는 게 존재는 하지만 아주 드물고, 이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이야기했다. 아동학대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한가 하는 의문이 들게 만드는 현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처하는 사회의 대응을 살펴보자면, 악의 평범성이 자꾸 떠오른다.

아동학대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들끓듯 일어나 가해자를 엄벌하라는 요구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적인 해법이 아닌 것 같다. 학대받는 아이를 선별해서 가정에서 분리해내는 일이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일선의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권한이 강화되어야 하고, 활동에 대한 매뉴얼이 구체적이고 합리적으로 주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치 천부의 권리인 것처럼 너무나도 강한 부모의 친권이 이 모든 현상의 배후에 있다. 핏줄은 하늘이 내려준 거라 인력으로 끊을 수 없다는 믿음을 이 나라의 법도 상당 부분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평범한 권리’에 대한 믿음은 이 권리가 남용될 때 생겨나는 악을 제지할 수가 없다. 대가족 시대에는 이 평범한 믿음이 괜찮았을 수도 있다. 가족 내에 다른 성인들이 있어서 아동 양육에 간섭하고 제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가족 시대에 이 평범한 믿음은 문 닫고 들어간 가정 내에서 어떻게 곯게 되어도 문밖에 있는 이들이 어찌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생긴다. 사실, 아동학대 가해자의 대다수는 친부모이지 양부모가 아니다. 한국에서 신고되는 아동학대 사건의 가해자는 72%가 친부모다. 언론이 계부모 혹은 양부모의 아동학대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우리의 눈이 가려져 있다. 아동학대가 사망으로 이어진 경우, 부모의 친권이 너무 강해서 아동을 학대 가정으로 되돌려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현실이 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학대를 받고 자란 아동은 많은 경우 가정폭력의 가해자가 된다. 평범한 악의 악순환은 이렇게 대를 잇게 된다. 이 악순환을 이어주는 매듭은 단순히 가해자를 엄벌해서 끊을 수가 없다. 우리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듯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지나치게 강한 친권에 기관이 간섭하고 중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뿐이다. 평범한 권리를 남용하는 평범한 악의 본성이 인간에게 있고 그 본성이 닫혀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러날 수 있다면, 인간은 제도로 그 본성을 규제할 수밖에 없다.

또 한가지. 아동학대의 경우, 자녀가 여럿일 때 학대는 한명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럴 때 학대를 당한 아이의 육체적·정신적 상처는 차마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이지만, 학대를 지켜본 아이도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앓게 된다. 인간이 인간을 짓밟는 폭력을 목도한 상처, 부모의 절대권력 아래에서 생존을 위해 폭력에 협조하거나 방임한 상처도 어마어마하다. 서구 몇몇 나라에서는 가정폭력 ‘목격자’들도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구별해서 치료하고 돌보고 있다. 가장 최근에 터진 아동학대 사건의 경우, 가해자의 어린 친자녀에 대한 비난이 인터넷상에서 보인다. 하지만 그 아이도 아동학대의 피해자다. 피해가 가해로 대물림되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이러한 피해자들에게도 돌봄의 손길을 뻗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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