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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칼럼]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한겨레 입력 2021. 01. 14. 16:56 수정 2021. 01. 1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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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칼럼]
한국의 국가주의 정책이나 제도 중에 일본을 베끼지 않은 게 있겠는가마는 외국인 정책만큼은 아니어야 했다. 세계화의 선두 주자 한국에서 세계시민은 드문데, 이에 부응하려는지 법무부는 지난 연말에 난민법 개악안을 내놓았다. 내가 응수하고 싶은 말은 불경스럽지만 “법무부는 난민 관련 업무에서 손 떼라!”는 것이다.

홍세화ㅣ장발장은행장·‘소박한 자유인’ 대표

뒤늦게 ‘마중’(시민모임)에 합류하여 화성외국인보호소를 방문했다. 작년 11월, 코로나바이러스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기 전이었다. 아크릴판을 사이에 두고 수화기로 북아프리카와 이집트에서 온 두 외국인과 20분씩 통화했다. 언어보다 환경 때문에 면회는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던가. 사회의 대부분을 상실한 사람이 사회적 입양을 거부당한 모습으로―죄수복 같은 것을 입고― 이중 철창 너머에 있었다. 그렇게 갇혀 있는 외국인은 미등록 체류자로 단속돼 추방을 기다리는 단기 “보호” 외국인들과 주로 난민신청자들인 장기 “보호” 외국인 둘로 나누어지는데, 1년 넘게 갇혀 있는 외국인들도 적지 않다.

내 눈길을 잡아끈 것은 보호소의 영어 이름이 “protection center”가 아니라 “detention center”라는 점이었다. “detention center”라면 ‘구치소’나 ‘수용소’라고 불러야 할 텐데, 왜 “보호소”라고 했을까? 내가 프랑스에서 난민심사를 받은 곳은 외무부 산하 ‘난민과 무국적자 보호실’(OFPRA)이었고, 이때 ‘보호’는 불어로도 ‘protection’이었다. 불온한 탓이겠다, 수용소라고 쓰지 않는 게 저 악명 높았던 일본의 오무라 수용소를 본뜬 것임에도 그렇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된 것은.

나의 합리적 의심은 한국에서는 왜 난민심사를 법무부에서 하는지에 대한 물음과 만나면서 확신에 가까워졌다. 제네바협정과 고문방지협약에 따라 난민신청자가 귀국하면 박해받거나 고문당할 위험이 있는지를 심사하는 곳은 정부부처 중 어디가 맞을까? 난민신청자 출신국의 정치사회 상황을 알기 위해서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나 외교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법무부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의 뿌리에 오무라 수용소가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해에 생긴 오무라 수용소는 주로 한국인을 표적으로 삼아 국민/비국민을 분리, 처리한 공간이었다. 일본은 패전 후 한국과 국교가 없던 시절에 가족과 재결합하기 위해서나 빨갱이 사냥과 박정희 독재정권을 피해 일본으로 도항했던 한국인들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대신 밀항자라는 이유로 오무라 수용소에 가두었고 추방했다. 그들의 외국인 정책이 법무부 소관이 된 배경이다. 한국의 국가주의 정책이나 제도 중에 일본을 베끼지 않은 게 있겠는가마는 외국인 정책만큼은 아니어야 했다. 자신을 겨누었던 칼로 세계 각지에서 온 이주노동자와 난민을 겨누고 있지 아니한가.

‘마중’은 이 땅을 찾아온 이주노동자와 난민을 “맞이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아시아의 친구들’과 ‘수원이주민센터’의 활동가들과 개인 참여자로 구성되었는데, 지난 5년 동안 2주에 한 번 수요일마다 화성외국인보호소의 외국인을 면회해왔다. ‘마중’이 갇혀 있는 외국인들의 처지를 크게 개선할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국제전화카드, 믹스커피, 초코파이, 내복, 코란, 한국어사전, 처방전 없는 의약품 등을 넣어준다. 외부 병원 진료가 필요한데 돈이 없는 외국인에겐 의료비를 소액 지원하기도 한다. 난민신청자를 위해 공익변호사와 연결해주기도 하는데, 난민으로 인정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마중’을 1971년 미셸 푸코가 프랑스에서 결성했던 ‘감옥정보그룹’에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꾸준히 면회를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하리라는 것은 면회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옥이 무엇인지, 누가 거기에 가고 어떻게 왜 거기에 가는지,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죄수들과 그 감시원들의 생활은 어떤 것인지, 감옥의 건물, 음식, 위생 상태는 어떠한지, 내부 규칙과 의학적 통제와 작업장은 어떠한지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 그리고 거기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는지, 또 우리 사회에서 출소자들의 지위는 어떠한 것인지를 알리고 싶다.”(디디에 에리봉의 <미셸 푸코, 1926~1984>, 박정수의 <‘장판’에서 푸코 읽기>에서 재인용)

‘감옥정보그룹’의 선언문 내용인데, ‘마중’의 활동 목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재소자와 이주노동자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그 사회의 인권 수준을 증언한다. 재소자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사회통념이 작용하고, 이번 서울동부구치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사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기 때문에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다. 이주노동자는 재소자들과 반대로 내국인들에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인권침해의 대상이 된다. “보호” 외국인들은 “불법” 체류자라는 멍에를 쓰고 죄수처럼 갇혀 있는 이주노동자라는 점에서 이중으로 인권침해 대상이 될 수 있다.

“하나의 적을 확인하는 것이 인간 질서를 구성한다.” 카를 슈미트의 말이다. 프랑수아즈 에리티에는 “불용인(앵톨레랑스)은 자아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의 단결을 보장하려는 마음속의 자연스러운 경향”이라고 했다(필리프 사시에의 <왜 톨레랑스인가>에서 인용). 그래서인가, 2년 반 전 제주도에 예멘 난민 500여명이 왔을 때, 무사증 입국과 난민신청 허가 폐지·개정 청와대 청원에 70만명 넘게 참여했다. 마치 테러리스트, 성폭행 범죄자들이 집단으로 쳐들어온 듯 난리법석이었다. 그 예멘 사람들 대부분이 난민 인정은 못 받고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아 살고 있는데, 지금까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는 뉴스라도 들은 사람이 있을까? 없다면 그때 청원 참여자들 중 조금이라도 겸연쩍어할 줄 아는 사람은 있을까? 세계화의 선두 주자 한국에서 세계시민은 드문데, 이에 부응하려는지 법무부는 지난 연말에 난민법 개악안을 내놓았다. 내가 응수하고 싶은 말은 불경스럽지만 “법무부는 난민 관련 업무에서 손 떼라!”는 것이다. 대신 보호소를 인권 기준에 맞게 개선해 달라. 휴대전화 사용하게 하고, 보호소 내 통행을 자유롭게 하고, 수의를 없애 자유복 입게 하고, 면회실을 개방형으로 바꿔 달라. 일부라도 치료비를 국비 지원하여 외부진료 받게 하고, 보호기간 연장을 법에 따라 제한하고, 보호일시해제 보증금을 낮춰 달라.

코로나바이러스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어 성탄절, 연말연시에 면회가 중지되었다. ‘마중’은 확성기 달린 방송차량을 준비해 보호소 외국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캐럴과 성탄절 메시지를 전하려고 애썼다. 느닷없이 아랍어, 중국어, 베트남어, 타이어, 몽골어, 영어, 불어 노래와 목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보호소 담 너머 굳게 닫힌 문 너머 그들의 귀에 들렸을까? 설령 잘 들리지 않았던들 그게 무슨 대수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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