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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순백의 눈꽃터널 속으로..여기가 '찐' 겨울왕국

최병일 입력 2021. 01. 14. 17:32 수정 2021. 01. 15.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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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에 올랐습니다. 덕유산은 흔히 무주의 산으로만 알고 있지만 향적봉이 정상이어서 그리 알려진 것일 뿐 전북 무주와 장수, 경남 거창과 함양에 걸쳐 있는 거대한 산입니다. 하필이면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 덕유산에 올랐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30도를 넘어서는 극한의 추위를 견디며 정상을 향해 한 발씩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마스크가 얼고 눈썹까지 허옇게 변했지만 머리는 투명해지고 막혔던 가슴이 뚫리는 기분입니다. 마침내 향적봉에 올라 정상 푯말을 바라보며 가만히 기원해 봅니다. 하루빨리 좋은 사람들과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 산에 다시 올 수 있기를….

 주목과 투명한 서리꽃 가득한 향적봉

덕유산이 온통 눈으로 가득하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따라 정상인 향적봉(1614m)까지 올라가는 길목에는 상고대가 지천이다. 상고대는 나뭇가지에 눈이 꽃처럼 피었다 해서 서리꽃이라고도 불린다. 상고대는 투명하고 깨끗하다. 상고대 터널 사이로 파란 하늘이 펼쳐지고 햇빛을 받은 눈꽃은 보석처럼 영롱하다.

의연하게 눈을 받치고 있는 주목들도 겨울 덕유산의 백미다. 주목은 비틀어지고 꺾어지고 때로는 속이 모두 썩어 텅텅 비워진 몸체이지만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가는 영물이다. 그런 부실한 몸으로 여름에는 강렬한 햇볕을 견디고 겨울이면 눈을 얹고 서서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백두대간 중 덕유산의 겨울 경치가 으뜸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덕유산을 제대로 느끼려면 무주구천동의 삼공리 주차장부터 구천동계곡을 거슬러 백련사를 지나 중봉이나 향적봉으로 올라야 한다. 중봉을 거치지 않고 향적봉으로 직진해서 올라가도 최소 5시간이 걸리는 제법 고단한 길이다. 험난한 여정을 마치고 향적봉에 오르면 흑백의 산수화 같은 압도적인 풍경이 펼쳐져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남덕유산, 삿갓봉, 무룡산, 중봉 등 산허리마다 가지만 남은 나무와 눈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향이 쌓인 봉우리’라는 뜻의 향적봉은 봉우리 부근에 군락을 이룬 향나무 향기로 인해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산행이 익숙하지 않다면 무리하지 말고 무주리조트에서 운영하는 곤돌라를 이용해 설천봉까지 오르는 것이 좋다. 상고대나 눈꽃 구경하기에 이만큼 쉬운 방법은 없다. 곤돌라로 설천봉까지 15분,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 걸어서 20~30분 걸린다. 향적봉에서 데크가 놓인 길을 따라 수직으로 내려가면 백련사로 연결된다.

 소담한 눈이 가득…단아한 백련사

산길이 아닌 평지에서 백련사에 가려면 무주구천동 계곡을 따라가는 5㎞의 어사길이 제격이다. 조선시대의 유명한 암행어사 박문수가 주민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자들을 벌하고 사람의 도리를 세웠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길을 따라가면 인월담, 비파담, 구월담, 안심대 등 구천동의 명소를 두루 살필 수 있다. 물이 흐르던 자리엔 소담한 눈이 쌓여 있지만 겨울은 겨울대로 색다른 운치가 있다.

발걸음이 팍팍해질 즈음 백련사 일주문에 닿았다. 산세가 깊고 기운이 좋아서인지 구천동에는 무려 14개의 사찰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백련사만 남아 있다. 백련사마저도 6·25전쟁 때 소실되고 1962년 현재의 위치에 다시 지어졌다. 일주문을 지나면 단아한 백련교가 나오고 이를 건너면 매월당 설흔 스님의 부도탑과 가람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백련사는 흥덕왕 5년 무염국사가 창건했다는 설, 신라 신문왕 때 백련선사가 은거했던 곳에 흰 연꽃이 피어나자 이를 기리고자 백련사라 했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백련사의 첫인상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나 보다. 어떤 이는 가람의 배치가 다소 위압적이라고 했지만 기자의 눈에는 새초롬하게 돌아앉은 누이처럼 정겹다. 눈이 소리를 빨아 먹은 듯 경내는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선수각, 원통전 등의 가람들이 다소곳하다. 대웅전 아래로는 계단이 놓여 있다. 향적봉으로 향하는 이들이 계단 아래서 신발끈을 졸라매고 삼성각 옆으로 난 등산로로 서둘러 발길을 옮긴다. 잠잠했던 하늘에 다시 눈이 내리고 앞서간 이들의 발자국을 지운다. 조용한 산사의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무주=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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