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선의 치유하는 과학] 사라진 공감능력이 잔혹함을 부른다

2021. 1. 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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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그 어느 때보다 몸의 건강과 마음의 힐링이 중요해진 지금, 모두가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한, 넓은 의미의 치유를 도울 수 있는 이야기들을, 자연과 과학, 기술 안에서 찾고자 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잔혹함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넘어서 타인의 끔찍한 고통이나 굴욕을 수반하는 행동을 우리는 '잔혹하다'라고 부른다. 최근에도 우리 사회는 이러한 잔혹함을 여러 차례 목격해야 했다. 무엇보다 의도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지속하거나 묵인하는 잔혹함에 대해서 우리는 분노한다. 그 잔혹함의 피해자가 반항조차 할 수 없는 어린아이였을 때 우리는 대체 이러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까 이해하기 어렵다고까지 느낀다.

사람은 어느 순간 잔혹해지는가. 특히 처참하고 끔찍한 많은 사건들이 있었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분야에 대한 많은 고민과 연구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사람은 무언가 특별한 상황이 주어져야 잔혹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연구결과들이 줄지어 나왔다. 1961년도에 행해진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Milgram Experiment)에서는 옆방에 있는 타인에게 죽을 수 있을 정도의 전기쇼크를 가하게 했지만 실험에 무작위로 참가한 일반인들 중 많은 이들이 이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 1971년도에 행해진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는 교도관과 수감자라는 권력 구조를 일반인에게 무작위로 배분하는 것만으로도 놀랄 만한 억압과 폭력이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 보여졌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도 1963년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하며 잔혹함은 국가와 권력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이 보통이라고 여기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고 했다. 영국의 작가 조지 엘리엇이 잔혹함에 대해 정리하는 바가 딱 맞을지 모른다. 그녀는 "잔혹함은 별다른 동기가 필요 없다 – 드러나기 위한 기회만이 필요할 뿐이다"라고 적었다.

"세상에 선을 자라나게 하는 일은 역사에 남지 않는 보편적인 행위들에 달렸다. 우리가 그렇게 나쁜 일을 겪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절반은 드러나지 않는 삶을 충실하게 살아 낸 사람들 덕분이고, 나머지 절반은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에 묻힌 사람들 덕분이다." -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의 마지막 문장

잔혹함이 드러날 기회라는 것이 무엇일까? 대체 잔혹함을 저지르는 뇌는 어떤 상태일까. 영국의 신경과학자이자 발달심리학자 사이먼 배런-코헨은 선을 넘는 잔혹함을 사람들의 뇌 안에서 일어나는 상대에 대한 공감 능력의 상실로 설명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처럼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경우는 뇌안의 공감회로(Empathy Network)가 유전적으로, 선천적으로 잘 작동하지 않는 경우다. 반면 후천적으로도 뇌 안의 공감회로가 잘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신경과학자 타냐 싱어 박사는 여러 연구를 통해 두 그룹이 나뉘어서 게임을 했을 때, 우리의 뇌는 우리 편에 대해서는 더 많이 공감하지만, 상대편에 대해서는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나에게 손해를 끼쳤던 상대편이라면 상대편이 고통을 느낄 때 뇌가 그 고통에 공감하기보다는 오히려 기쁨을 느낀다. 남이 고통을 당할 때 느끼는 기쁨을 독어로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고 하는데, 한국말로 번역하면 '쌤통'과 비슷하다.

이뿐 아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와 맥마스터대학교의 연구자들이 2013년 밝힌 바에 따르면 누군가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을 때,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영국의 심리철학자 애덤 모튼은 잔혹함은 우리가 상대를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물건, 또는 나보다 하등한 존재로 볼 때 생겨난다고 했다. 상황에 따라 내편과 네편으로 나누건, 권력을 통해 위아래를 정하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더이상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지 않을 때 뇌는 공감 능력을 잃고 잔혹함이 드러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답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더 많이 공감할 수 있고 잔혹함을 막는 길이다.

장동선 뇌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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