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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넘어북한] 이민위천·자력갱생..구호에 담긴 김정은의 딜레마

박수성 입력 2021. 01. 1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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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12일 열린 북한 8차 당대회 종합평가
권력승계 10년차 김정은, 업적 칭송받으며 '총비서' 선출
지난 5년간 제1성과는 인민대중제일주의 구현
이례적으로 무기 상세 나열하며 국방력 성과 강조
남북, 북미 정상회담 언급 없이 대외 업적 높이 평가
'이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 이념 내세워
경제발전에서의 내부 노력 집중 주문

【서울=뉴시스】강영진 박수성 기자 = 북한 8차 당대회가 지난 5일부터 12일까지 8일간 진행됐습니다. <창 넘어 북한>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총비서 선출 등 당대회를 종합 평가하고 전망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뉴시스 북한팀 에디터 강영진입니다.

이번 주도 북한 노동당 8차 당대회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당초 두 번 정도만 8차 당대회를 다루려고 했는데 오늘이 세 번쨉니다.북한이 당대회를 예상보다 길게 하면서 창 넘어 북한 일정과 맞지 않아서 불가피하게 됐다고 변명할 수밖에 없네요.

이미 8차 당대회에 대해 많은 언론 보도가 있었기 때문에 창 넘어 북한에서 다시 시시콜콜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종합적인 평가와 전망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우선 이번 당대회는 북한이 본격적으로 “김정은 시대”를 선포하는데 가장 중점을 뒀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김정은이 김일성, 김정일이 생전에 누렸던 총비서로 추대된 것이 이를 잘 설명합니다.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만 권력승계 10년 차에 접어든 김정은은 이제 더 이상 김일성과 김정일의 후광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지난 9년 동안 이뤄낸 업적으로 자신은 최고영도자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거지요. 물론 북한 주민들이 그런 주장에 얼마나 동의하는지는 외부 관찰자인 저로선 알 방도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처럼 매주 대통령 지지율을 조사해 발표하는 기관도 없고 대통령의 말끝마다 토를 다는 야당 세력도 없으니까요.

김정은 총비서 추대사에는 김정은이 이루었다는 업적들을 칭송하는 찬사들이 잔뜩 나열돼 있습니다. 일부만이라도 살펴볼까요?

리일환 선전선동부장이 지난 10일 당대회에서 읽은 내용에서 발췌했습니다. 낮 간지럽고 닭살이 돋는 표현들이 많지만 그냥 인용하겠습니다.

“지난 9년간 김정은동지께서는 위대한 사상과 령도로 세인을 경탄시키는 정치 대경륜을 펼치시며 시대와 력사, 조국과 인민 앞에 전무후무한 업적을 쌓아올리시였습니다.”

리일환은 이어 사상, 군사, 경제건설, 코로나 방역, 수해복구 등에서 김정은이 이룬 업적에 대해 극존칭과 미사여구가 가득한 장광설을 펼쳤습니다.

특히 “평범한 인민들을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듯이 정히 떠받드시며 인민의 권익과 편의를 최우선, 절대시하시는 김정은동지의 인민적 용모는 동서고금 그 어느 위인전기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라는 대목이 하일라이틉니다.

당연히 김정은을 “조선로동당의 수반으로 모시는 것은 시대와 력사의 엄숙한 요구이며 우리의 수백만 당원들과 인민들의 불타는 심장의 호소이고 드팀없는 의지입니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드팀없다’는 ‘흔들림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 끝에 리일환은 김정은 동지를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높이 추대할 것을 본 대회 앞에 정중히 제의합니다”라는 말로 추대사를 끝맺습니다.

이 순간 김정은은 계면쩍은 듯 탁자 위에 있는 문서를 들춰 보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당대회 참석자 7,000명 전원이 기립박수를 치고 만세를 부르며 김정은의 총비서 추대를 환영하자 김정은도 일어서서 함께 박수를 쳤습니다.

김정은이 이제 그만하라는 제스처를 몇 번 취하고 자리에 앉았지만 일사불란한 박수와 만세소리는 한동안 계속됐습니다.
우리 사회라면 '왜 하필 총비서냐, 2012년에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한 건 어찌 된 거냐'라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었겠지만 북한에선 그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어찌 됐건 김정은은 그렇게 총비서가 됐습니다. 지금까지는 과도기 호칭이 애매해서 직책 없이 이름만 불렀습니다만 지금부터는 김총비서라고 부르겠습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나 지배층들 모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결정입니다. 북한에서 벌어지는 모든 좋은 일은 전부 김총비서가 내린 은총 덕분이니까요.경우에 따라서는 좋지 않았던 일도 좋은 일로 둔갑해서 김총비서 덕분에 좋은 일이 생겼다고 선전되는 마당인데…어, 더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좀 경망스럽게 말씀드렸는데 지금부터 정색을 하겠습니다.

8차 당대회는 지난 5일부터 12일까지 8일 동안 열렸습니다. 김정은 시대에 처음 열린 5년 전의 7차 당대회는 4일 동안 열렸지요.그만큼 8차 당대회는 한 일도 많고 내용도 알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알차다는 건 제 기준이 아니라 북한 기준으로 가늠할 때 그렇다는 겁니다.

당대회 진행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김총비서는 당대회 개막일인 5일부터 3일 동안 9시간에 걸쳐 7차 당대회 이후 5년 동안 노동당이 펼쳐온 사업을 평가했습니다.

김총비서가 당사업의 성과로 제일 먼저 꼽은 것은 '인민대중제일주의'의 구현입니다. 인민대중제일주의는 김총비서가 권력을 승계한 직후부터 내세워 온 통치 이념입니다. 3대 권력세습은 자신이 백두혈통이라서가 아니라 인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지도자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싶어서 만든 이념이지요.

그런 이념을 잘 구현해 왔기에 “불리한 모든 주객관적 요인들을 능히 극복하고 사회주의 건설에서 나서는 방대한 과제들을 용이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총결기간 재확증된 귀중한 철리”라고 김총비서는 자평했습니다.

이어서 자력갱생을 강조했습니다.

“경제건설분야에서 비록 예견했던 전략목표에 도달하지는 못하였지만 앞으로 자체의 힘으로 경제발전을 지속시켜나갈 수 있는 소중한 밑천이 마련”됐다고 했습니다. 앞으로도 자력갱생을 경제발전 전략으로 삼겠다는 주장을 다시 편 거지요.

다음으로 김총비서는 핵전쟁 억제력과 자위적 국방력 강화에서 이룬 성과를 열거했습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초대형 수소탄, 초대형 방사포, 신형 전술로켓, 중장거리 순항미사일과 첨단 핵전술무기 등을 개발했다고 자랑했습니다.또 다탄두 핵미사일의 극초음속 활공 비행 탄두와 핵잠수함 등 각종, 신형 첨단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신무기와 전쟁 능력 강화는 김총비서가 가장 큰 업적으로 내세우는 분야입니다. 그렇지만 개발한 무기와 개발 중인 무기들을 시시콜콜 설명하는 건 좀 이례적입니다.

미국과 우리, 일본,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까지도 겨냥해 우리 군사력이 이렇게 막강하고 앞으로 더 세질 테니 각오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려는 의도였을 겁니다.

김총비서는 이어 북한의 ‘대외적 지위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역시 김총비서가 트럼프 미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강대국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점을 상기시킨 겁니다. 북한 주민들을 향해 내가 비록 젊지만 이렇게 초강대국들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대한 지도자라고 과시한 겁니다.

그런데 그런 대외활동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있었기 때문에 성사될 수 있었다는 설명은 쏙 뺐네요.앞으로 북한이 우리와 미국에 까칠하게 대할 생각이 있어서 그랬을 겁니다.

잘 알려진 대로 김총비서는 지난 5년의 경제성과에 대해선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평가했습니다.

특이하게도 미국과 적대세력이 주동하는 제재책동과 자연재해, 코로나 19 때문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그 탓만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면서 내부적으로 경제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한층 배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제재는 없어지지 않을 테니 자력갱생으로 잘 살아보자고 제안한 겁니다. 뒤에 다시 언급하겠습니다만 이번엔 자력갱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방법론을 여러 사례를 들며 제시한 듯합니다.

그렇지만 핵무기 개발 성과들과 달리 경제발전 전략의 세부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걸 보면 스스로도 이 방식으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보통 경제개발 전략보다는 무기개발 문제가 더 큰 비밀인데 김총비서는 거꾸로네요.

그러다 보니 외부 관찰자들은 대체로 ‘밥 먹으면 배부르다’는 말 밖에 한 것이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김총비서가 내놓은 경제전략을 박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비핵화를 통해 제재를 풀고 대외개방을 하지 않으면 자력갱생 백날 해봐야 소용없다는 거지요.

반면, 이른바 내재적 관점에서 북한을 평가하는 입장에 따르면 ‘거시적으로 볼 때 경제사회적 모순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우리도 지난 50여 년의 경제성장과정에서 온갖 부정부패와 부조리, 경제사회적 모순을 극복하면서 발전해 왔는데 김총비서가 그런 변화를 시작했고 앞으로 가속화할 것이라는 정도의 비전은 보여줬다고 말합니다. 적어도 김정일 시대와 비교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김총비서는 또 미국에 대해선 ‘강대강, 선대선’으로, 우리에 대해선 ‘하는 거 봐서’ 대하겠다고 했습니다. 김정은을 불량배라고 욕 한 바이든 미 대통령을 상대로, 또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문대통령을 상대로 뭔가 해보겠다는 생각을 먼저 드러내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겁니다.

그렇지만 정말 그럴 건지는 두고 봐야 할 일입니다.

바이든 정부가 뭔가 획기적인 대책을 제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우리 정부는 언제든지 북한을 지원할 의사가 있다는 걸 김총비서는 잘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거라고 느껴집니다.

아무튼 김총비서의 사업총화 보고 내용을 두고 외부에선 곧 도발을 할 조짐이라느니, 그렇지 않다느니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좀 길어지네요.곧 마무리하겠습니다.

당대회는 김위원장의 총화 보고 뒤 규약도 개정하고 대대적으로 인사개편도 하고 무엇보다 김정은 총비서를 추대하고 12일 폐막했습니다.

폐막식에서 김총비서는 이번 당대회에서 “우리의 내부적 힘을 전면적으로 정리정돈하고 재편성하며 그에 토대하여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하면서 새로운 전진의 길을 열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 본 대회를 통하여 재확인된 조선로동당의 혁명적 의지”라면서 ‘이민위천(以民爲天), 일심단결(一心團結), 자력갱생(自力更生)’의 세 가지 이념을 다시 깊이 새기자고 강조했습니다.

한자는 제가 써넣은 겁니다. 북한은 이런 장면에서 외국어 문자인 한자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민위천은 김일성 때부터 써오던 말인데 이번에 정식 구호로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김총비서의 통치이념인 인민대중제일주의를 한자어로 표현한 겁니다.

김총비서의 8차 당대회 결론 연설에서 한가지 흥미로운 대목이 있습니다.

앞으로 경제발전전략을 설명하면서 사업총화 당시 공개된 것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폐회사에서 지방경제 발전을 강조하면서 “국가적으로 해마다 시, 군들에 세멘트 1만 t씩 보장해주기 위한 사업을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이 있습니다.

3일, 9시간 동안 했던 사업총화보고에선 이런 식으로 경제 부문 전부를 짚어가면서 구체적 성공 및 실패 사례를 제시하고 개선 대책을 내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매년 신년사를 보면 '정말 ‘밥먹으면 배부르다’는 말 밖에 할 줄 모르는 거 아니야'라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이번엔 조금은 다른 느낌을 갖게 하네요.

2019년 말 노동당 전원회의 연설에서 자력갱생을 강조했지만 지난해 성과가 없었다는 것을 반성하고 이번 당대회에서는 실질적인 대책을 제시하기 위해 많이 노력한 흔적이 군데군데 보인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북한 8차 당대회 평가를 준비하면서 고민이 적지 않았습니다. 제 개인 성향으로는 뭉뚱그려서 비판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유일영도체계에 의한 극단적 1인 독재 체제를 지키기 위해 핵무장을 해야 하고 그 때문에 제재를 피할 방도가 없는 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력갱생을 다시 강조한 대목에서 특히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반면 이민위천이라는 구호는 김총비서가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는데 관심이 크다는 걸 보여줍니다. 권력 기반을 다지려는 의도가 있어서 그렇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또 75년에 걸쳐 현재의 체제를 구축해온 북한이 하루아침에 근본적인 개혁에 나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없지 않습니다.

북한을 관찰하는 외부의 시각이 근본 개혁에 너무 치우친다면 자칫 비현실적인 북한 붕괴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북한 붕괴론에는 저절로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과 무너지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생각이 뒤섞여 있습니다. 저절로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무너지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모험적인 발상은 문제가 많습니다.

북한이 전쟁이라도 일으켜서 우리를 무너트리려고 하는 것이 분명해지지 않는 한 입밖으로 꺼내선 안 될 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창넘어 북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pzcmari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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