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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었다'는 핑계로 사표를 낼 뻔 했다

이창희 입력 2021. 01. 14.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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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비틀기] 갱년기인 줄 알았는데 '화병'.. 나이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창희 기자]

지난해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2월부터 여름까지 이어진 코로나19는 간신히 열렸던 축구장 문을 다시 닫아버렸고, 에어컨이 없는 습한 밤을 꼼짝없이 집에 갇혀 견뎌야 했다. 끔찍했다.

간신히 눈을 붙이고 비척거리며 출근한 일터에서는 실적 압박으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기어코 회사에 자신의 치세를 알리려는 상사의 억지에는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게다가 코로나가 심어놓은 낯선 사람에 대한 공포는 "무조건 자가용"을 외치고 있는데, 이제 열한 살이 된 자동차가 여름이 되면서 엔진이 말썽이었다.

길에 앉아 엉엉 울어버리다
 
▲ 아픈 차를 몰고 나갔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여름이었습니다. 매일매일 부딪히는 모든 곳에서 짜증이 밀려왔고, 일도 일상도 엉망이었어요. 결국, 자동차 검사를 받으러 가던 길에 사고가 났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이창희
 
'아프다'는 아이(?)를 무작정 검사소로 끌고 갈 수가 없어서 차일피일 미뤘더니, 검사 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불안하게 검사소로 향하던 길에 공공 근로를 마치고 돌아오시는 어르신의 비보호 좌회전에 운전석을 받혔다. 고장 난 차를 세우고는 꾸역꾸역 조수석 문으로 나와서, 보험회사 담당자가 올 때까지 쭈그리고 앉아 엉엉 큰소리로 울었다.

다음은? 뻔하게 신세한탄이다. 운이 나쁜 건지, 마음 씀이 못된 건지,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일터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쭈그리고 울다 보니 갑자기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는 일도 없는데, 일터에서 부딪히는 일들에 사사건건 화가 나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 이렇게 왕복 6차선의 대로변에 앉아서 엉엉 울고 있지 않은가. 뭔가 큰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불안이 밀려왔다.

갱년기인 줄 알았더니, 화병?

여기서 일한 지 13년이고, 지난 회사에서의 시간까지 더하면 벌써 19년 차 직장인이다. 지금까지 한 해라도 편하게 지냈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이 상태로는 더 이상 힘들겠다는 무력감이 몰려왔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힘들어서 일 못하겠어요. 아, 회사를 그만둬야 할까요?"
"갱년기라 그래. 3년만 참아. 그럼, 또 지나가."

페이스북 담벼락에 '퇴사할까'를 써놨더니, 정년퇴임하신 선배에게 회신이 왔다. 아! 역시, 우문에 현답이다. 지금 이렇게 힘이 든 것은, 내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아파서' 그렇다는 답변인데, 갑자기 좁아졌던 시야가 환하게 밝아졌다.

원인을 몰랐다면 불안했을 텐데, 이제는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안도감도 함께 왔다. 계속 울고 있을 수는 없었다. 대책도 없이 회사를 그만둘 것이 아니라, 병원에 가는 거다! 

"친구네 한의원, 몇 시까지야? 나, 갱년기 약이라도 먹어야겠는데, 같이 갈래?"
"오늘은 오후 7시까지 한대. 나는 아직 안 끝나서 못 가겠는데, 전화는 해 놓을게."

안 그래도 얼마 전부터 폐경이니 갱년기에 대한 고민을 장난처럼 나누던 동년배 친구에게 연락했다. 알려준 한의원은 집에서도 걸어갈 만한 거리였다.  

"흠. 아직 갱년기는 아닐텐데, 특별한 증상이 있어요? 혹시, 우울감은 아닌가요?"
"우울해요. 코로나 때문인지 항상 긴장하고 있어서인가, 더 힘들어요. … 어쨌든, 약이라도 먹으면 어떨까요? 안 그러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할 것 같아요."
"흠. 그럴 수는 없죠. 화가 난다고 대책도 없이 그만두면 안 되죠. 약, 먹읍시다. 한 번 볼까요?"

의사는 몸의 이곳저곳을 누르고 진맥을 했다. 다짜고짜 '약을 먹겠다'고 목표를 정한 환자에게, 뭐라도 처방을 내려줘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에 진단이 나왔다.

"화병이네요."

첫 느낌은 의아함이었다. '화'라는 게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몸의 어떤 장기에 연관된 것도 아닐 텐데, 진맥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인지도 궁금했고, 병원에서 종종 듣는 '만병 스트레스 기원설'과 닮아 있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성적'인 질문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 나는 자꾸 포기하고 싶어지는, '해결할 수 없는 답답함'을 풀어내고 싶어서 왔으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약'에 도움을 청하는 것뿐이다.

제대로 나이 들어 보련다
 
 앞으로는 힘든 걸 꾸역꾸역 안으로 삼키는 대신, 샌드백이라도 마음껏 쳐볼란다.
ⓒ Pixabay
 
결국 나는, '화병'을 다스리기 위한 보약 한 첩을 지어왔다. 약의 성분이 그다지 세지 않아서인가, 남들은 한약을 먹을 때 피해야 하는 것들이 많던데, 나에게는 그냥 '때맞춰서 잘 먹어라'는 지시만 주셨다. 아마도, 나를 지켜본 의사의 처방은, '보약'이라는 이름이 주는 의약 효과에라도 기대서 지금을 견뎌보라는 것이 본래 의도였던 모양이다. 명의다!

그냥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던 2020년이었다. 공식적으로 만남이 허락된 유일한 집단은 일터의 동료들뿐이었고, 다른 만남이 제거되고 나니 숨 쉴 곳이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는 갱년기를 앞두고 있는 '독거 중년'이고 평생 안경 한번 써본 적 없던 눈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진다.

억지로 괜찮다 우겨봐도, 시간의 흐름은 조금씩 내 안에 쌓이고, 더 이상 '무조건 이겨낸다'라는 주문은 먹히지 않는다. 힘들면 쉬어가고, 아프면 약도 챙겨 먹어야겠다. 이대로 '화병'에 잡아먹히는 것은, 그동안 열심히 살아낸 나의 삶에게도 실례다.

'보약'에 기대어 버텨낸 3주는 한참 전에 지나갔다. 나이 듦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좀 더 자연스러워진 듯하다. 힘들면, 보약이든 영양제든 챙겨가면서 말이다.

참! 보약이 끝나고 난 후, '권투'를 시작했다. 앞으로는 힘든 걸 꾸역꾸역 안으로 삼키는 대신, 샌드백이라도 마음껏 쳐볼란다. 그게, 내가 나를 위해 선택한 '나이듦'의 방식이니까! 자, 제대로 나이 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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