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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년 전부터 가축처럼 길들인 '효모'..인류에 술과 빵 선사하다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 (14)]

김응빈 교수 입력 2021. 01. 1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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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가축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흰 소를 앞세우고 신축년(辛丑年)이 찾아왔다. 지난해가 너무나 힘들었기에 새해에 거는 기대와 소망이 여느 해와는 사뭇 다르다. 신성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지는 흰 소의 해에는 상서로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띠를 나타내는 열두 동물 가운데에는 소 말고도 여섯(토끼, 말, 양, 닭, 개, 돼지) 가축이 더 있다. 야생을 누비던 동물이 인간과 동거를 시작한 건 최소 1만5000년 전쯤으로 보고 있다. 첫 상대는 살가운(?) 늑대였다. 인간 영역에 들어와 주거와 배고픔을 해결하고, 그 대가로 인간을 보호하며 사냥을 도왔다. 그리고 이 둘 사이 유대감이 나날이 커져갔다. 절친 동물, 개의 탄생 과정을 추정하는 가설의 핵심 내용이다.

그 이후로 수천년에 걸쳐 인간은 들짐승을 키워 일을 부리고 식량으로 사용하는(가축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소는 대략 8000년 전에 가축화되었다고 여겨진다. 또한 야생식물을 재배하는(작물화) 데에도 성공했다. 이른바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이다.

그런데 ‘극미동물(animalcule)’까지 범위를 확장하면 야생 길들이기 역사를 다시 써야 할 것 같다. 극미동물이란, 17세기 중반 첫 발견 당시에 미생물을 칭하던 이름이다(2020년 12월18일자 ‘미생물 수다’ 13회 참조). 작은 것이 꼬물꼬물 움직인다고 해서 동물(animal)에 ‘작다’를 뜻하는 접미사 ‘큘(-cule)’을 덧붙였다.

■우연한 횡재

미생물은 인류가 지구에 출현하기 수십억년 전에 이미 다양한 발효 기술을 터득했다. 이 작은 발효 장인들은 음식의 풍미를 돋우고 먹거리 저장을 도우면서 인류에게 다가왔다. 특히 1만년 전쯤 시작된 보리 재배는 특정 미생물과 인류가 단짝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알코올성 발효 음료, 술이 인류 사회의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인류가 술과 연분이 닿은 건 농경생활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분 함량이 높은 과일은 조건만 맞으면 쉽게 발효된다. 수렵채집 시절에 과일을 찾아다니던 원시 인류는 자연 발효된 과일에서 우연히 술을 접하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술 빚기는 신석기시대로 접어들어 농경생활을 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간주한다. 알아낼 길 없는 그 발로를 이렇게 상상해본다. “아껴서 남겨둔 보리죽을 먹으려는데 묘한 냄새가 난다. 그냥 버리기는 아까워 살짝 맛을 본다. 다행히 먹을 만하다. 그런데 먹을수록 기분이 묘해진다.”

알코올(에탄올)은 뇌에서 세로토닌과 도파민 같은 ‘해피 신경전달물질’ 분비를 촉진한다. 그래서 술에 적당히 취하면 보통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 술맛을 알게 된 신석기인은 ‘우연한 횡재’를 이어가려고 일부러 보리죽을 방치한다. 설거지는 하지 않거나 대충한다. 오히려 이게 묘수로 작용한다. 그릇에 붙은 찌꺼기가 자연스레 발효종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부지불식간에 효모와 긴밀한 동거를 시작하는 순간이다.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에’ 전자현미경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스타 탄생

식용 발효종 ‘사카로미세스…’
1500종 효모 중 ‘맥주효모’ 불리며
연간 60만t 생산 ‘미생물계 스타’

효모는 곰팡이(진균) 족속이지만 팡이실(균사)을 만들지 않고 단세포로 살아간다. 효모 세포는 달걀 모양으로 길이가 최대 10㎛(마이크로미터·1000분의 1㎜) 정도이다. 이들은 자연계에 널리 분포하며 지금까지 1500종 넘게 확인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파티를 위해서는 단 1종,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에(Saccharomyces cerevisiae)’만 있으면 된다. 이 학명은 각각 당(Saccharo)과 곰팡이(myces), 맥주(cerevisiae)를 뜻하는 라틴어를 조합한 것이다. 그래서 흔히 ‘맥주효모’ 또는 ‘양조효모’로 불린다. 하지만 이 효모는 빵 발효도 수행하니까 ‘빵효모’라 불러도 무방하다.

장미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향기는 마찬가지라는 셰익스피어의 말대로 이름이 무슨 대수랴. 오늘날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에’는 미생물계 스타로 등극했다. 양조효모는 세계적으로 연간 약 60만t(6000억g) 이상 생산되고 있다. 효모가 1g을 채우려면 200억 세포 정도 있어야 하니까, 연간 효모 생산량을 세포 수로 계산하면 어림잡아 120해이다. 해는 조의 1억배가 되는 수로 120 뒤에 아라비아 숫자 0을 자그마치 20개나 더 붙여야 한다. 이 수많은 효모는 지구촌 도처에서 맥주와 와인, 빵 등 다양한 발효 산물을 선사하며 글로벌 팬덤에 보답한다. 그런데 이들을 자연환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보통 과수의 잎과 열매에 사카로미세스 계통 효모는 많이 있다. 요컨대 포도 같은 과일에 하얀 가루처럼 덮여 있는 게 대부분 효모 세포이다. 하지만 이들 야생 효모는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에’와는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야생 효모는 에탄올 함량이 5%를 넘는 환경에서는 살지 못한다. 반면 양조효모에게 10% 에탄올 정도는 기본이다. 이들은 야생종에 비해 당을 엄청 잘 먹고 그만큼 많은 에탄올을 만들어낸다. 오랜 기간 동안 인공 발효 환경에 최적화된, 말하자면 인간에게 철저하게 길들여진 ‘마이크로 가축’이기 때문이다.

■가문의 분화

에탄올에 약한 야생효모와 달리
양조효모는 인공 환경에 최적화

전통 발효는 오랫동안 ‘백슬로핑(backslopping)’ 방식으로 진행된다. 백슬로핑이란, 씨간장처럼 앞선 발효액을 조금 남겨 그다음 발효에 첨가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될수록 양조효모는 주어진 조건에 맞게 점점 더 변해간다. 선택적 교배를 통해 동식물 길들이기(육종)를 했다면, 양조효모는 발효 조건을 달리하면서 길들여왔다는 얘기이다. 그러므로 현재 맥주와 와인 양조업계를 지배하고 있는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에’ 가문 내에 여러 종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같은 조상의 후손인 맥주효모와 와인효모는 아주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우선 맥주효모는 보리에서 유래하는 올리고당 분해가 주특기이고, 와인효모는 포도나무에 뿌리는 살균제 ‘보르도액(Bordeaux mixture·1800년대 후반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서 포도 흰가루병을 막기 위해 개발된 살균제로서 황산구리와 생석회를 섞어 물에 녹인 용액)’과 방부제 아황산염 따위를 잘 견뎌낸다. 또한 맥주효모는 인간이 만들어준 발효 환경을 벗어나면 맥을 못 추지만, 와인효모는 상대적으로 강한 스트레스 내성과 함께 정 힘들어지면 포자를 만들어 휴면 상태에 돌입하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 늘 발효기 안에서 사는 맥주효모와 달리 와인효모는 보통 1년에 한 번 발효에 집중하고 나머지 기간 동안에는 비교적 자유로운 삶을 살기 때문에 야생성을 덜 잃어버린 것 같다.

■신흥 가문의 등장

오늘날 검증된 종균 배양 확산에
‘전통적 효모 길들이기’는 사라져

요즘 마트에 가면 매우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만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맥주는 두 가지, ‘에일(ale)’과 ‘라거(lager)’로 나뉜다.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에’ 작품인 에일은 이미 중세부터 유럽인의 갈증을 풀어주며 맥주의 대명사 지위를 누려왔다. 반면 라거는 15세기에 바바리아(Bavaria·지금 독일 바이에른주) 지방에서 시작된 후발 주자이다. 그런데 지금은 처지가 뒤바뀌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는 라거이다.

라거효모는 ‘사카로미세스 파스토리아누스(Saccharomyces pastorianus)’라는 신흥 가문 출신이다. 맥주 발효의 터줏대감인 에일효모는 상온에서 발효를 하는 반면, 라거효모는 섭씨 10도 이하에서 일을 한다. 그 결과 에일 발효는 보통 일주일 안에 끝나지만, 라거는 몇 주에 걸쳐 발효가 진행된다. 효모는 발효 과정에서 탄산가스(이산화탄소)를 만든다. 이 때문에 맥주 거품이 생긴다. 탄산가스 발생량은 발효 속도에 비례하기 때문에 에일 발효에서는 가스와 함께 효모가 떠오르고, 반대로 라거 발효에서는 효모가 상대적으로 가라앉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런 연유로 에일과 라거를 각각 ‘상면발효’와 ‘하면발효’ 맥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전자 분석 결과, 라거효모는 유럽 토종 에일효모와 추위를 별로 타지 않는 외래 효모 사이에서 생겨난 잡종으로 밝혀졌다. 이방 효모의 고향은 아르헨티나 남부의 고원 파타고니아라고 알려졌으나, 티베트에도 같은 종의 효모가 자생하고 있음이 확인되면서 그 출처를 두고 논쟁 중이다. 어디서 왔든, 중요한 건 인간이 아니었다면 라거효모는 애당초 탄생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현대 발효 산업에서 백슬로핑 방식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뿐더러 철저한 위생 관리로 다른 미생물 유입을 봉쇄한다. 발효는 기능성과 안정성이 검증된 미생물 종균 배양액, ‘스타터(starter)’를 접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관성 있는 품질 관리가 가능해진다. 전통적인 효모 길들이기는 더 이상 없다. 그 대신 축적된 유전체 정보와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이라는 첨단 바이오 기술을 동원하여 실험실에서 더 섬세하게 효모를 개발한다. 이 기술의 핵심은 생명체의 유전정보가 담긴 DNA 전체를 설계하고 합성하는 것이다.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에’는 식품 발효뿐만 아니라 재조합 유전자를 주입하여 고부가가치 화합물을 생산하는 세포공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산업 역군이다. 2011년 이 유용 미생물의 16개 염색체 합성을 1차 목표로 ‘합성 효모 2.0(Synthetic Yeast 2.0)’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그리고 2019년 11월 합성 염색체 16개의 염기서열 초안이 공개되었다. 이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효모를 비롯한 생명체를 더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 효모의 설계 및 제작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상한 과일과 보리죽에서 신묘한 맛을 보고 무작정 효모를 길들여온 인류가 효모를 원하는 대로 만드는 경지에 오르는 건 시간문제다. 과학의 힘이다. 과학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려면 과학의 창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 과학적 소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응빈 교수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김응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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