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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음모론의 해악

유태영 입력 2021. 01. 14.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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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아주에서 상원 두 자리를 놓고 결선투표가 치러진 지난 5일(현지시간). 민주당 후보들이 개표 후반 대역전극을 펼치자 이런 말이 돌았다.

음모론은 기죽지 않았다.

위에 열거한 음모론은 모두 국내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음모론자들은 코로나19를 민주당이 트럼프 재선을 막으려 퍼뜨렸다거나, 빌 게이츠가 DNA를 조작해 세상을 통제하려고 개발했다는 주장에도 동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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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아주에서 상원 두 자리를 놓고 결선투표가 치러진 지난 5일(현지시간). 민주당 후보들이 개표 후반 대역전극을 펼치자 이런 말이 돌았다. “무슨 투표가 맨날 밤에 역전하나. 대선 때와 똑같은 부정선거다.”

실제로 지난해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나가다 조 바이든 후보에게 뒤집히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조지아 등 경합주에서 주로 그랬다. 이유는 단순하다. 민주당색이 짙은 대도시는 외곽 지역보다 투표용지가 많아 개표가 상대적으로 느리다. 펜실베이니아를 예로 들면, 바이든은 유권자가 가장 많은 필라델피아카운티에서 트럼프보다 47만1050표를 더 얻었다. 주 전체 격차(8만1660표)보다 훨씬 많다. 집계에 오랜 시간이 걸린 탓에 역전승이라는 형태가 나타났을 뿐이다.
유태영 국제부 차장
음모론은 한번 발동하면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생명력을 유지한다. 얼마 안 가 ‘워터마크 심판론’이 등장했다. 트럼프가 투표용지에 몰래 워터마크를 새겨놨으니 선거 부정이 곧 들통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주별로 관리하는 선거 과정에 연방정부가 개입하지 못하는 점을 외면한, 일종의 환상이었다. 개표기가 조작돼 트럼프를 찍은 수백만 표가 증발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주 선거관리당국 해명도 안 통하자 급기야 개표기 업체 대변인이 나섰다. 공화당원인 그는 폭스뉴스에 나와 터치스크린 기표 결과 출력물을 유권자의 확인 후 선거당국이 제출받아 관리하므로 조작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윌리엄 바 당시 법무부 장관도 “조사 결과 의혹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음모론은 기죽지 않았다. 정부 기밀 열람권을 가졌다는 ‘익명(anonymous)의 큐(Q)’를 추종하는 큐어논(Qanon) 등 음모론자들의 출발점은 ‘딥스테이트’ 이론이다. 이들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 등이 속한 소아성애자 비밀결사가 세상을 움직인다고 믿는다. 격전지 선거 당국자들이 결탁해 참관인 등 관계자들을 모두 속여야 성립 가능한 선거 사기론은, 그래서 ‘무적의 논리’가 된다. 공화당 소속 주 당국자들이나 트럼프의 측근 바 전 법무장관마저 선거부정에 동조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배신자’ 딱지를 붙이거나 딥스테이트에 포섭됐다고 하면 그만이다.

음모론은 최근 미 의회 의사당이 폭도에게 점거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큐어논 추종자들이 주도한 광기의 현장에서 최소 5명이 사망했다. 이제 음모론자들은 사태 책임을 극좌 ‘안티파’에게 돌리려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주장이 우리나라에서도 횡행한다는 점이다. 위에 열거한 음모론은 모두 국내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음모론자들은 코로나19를 민주당이 트럼프 재선을 막으려 퍼뜨렸다거나, 빌 게이츠가 DNA를 조작해 세상을 통제하려고 개발했다는 주장에도 동조한다. 요즘 방역당국에 대한 비협조적 태도로 논란이 된 BTJ열방센터의 핵심 인물도 백신 음모론을 설파한 적이 있다.

빨간 색안경을 끼면 세상이 온통 빨갛게 보이듯 음모론자에게 세상은 음모로 가득 차 있다. 그게 개인 차원의 왜곡된 신념·환상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에 실질적 해악이 되는 모습을 우리는 한·미 양국에서 목도하고 있다.

유태영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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