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면.."속옷 빼곤 다 보라색" 어르신도 깔맞춤 했다
섬마을에 색을 입힌다고 했을 때, 세상은 의아해했다. 대관절 그런다고 신안 꽁무니에 붙은 섬을 누가 찾아가겠나 했다. 반월·박지도는 신안에서도 외딴섬으로 통해 지역 사람도 잘 모르던 곳이다. 목포에서 천사대교를 건너 약 1시간가량 달려야 겨우 닿는다. 섬 전체가 보라색 옷을 입은 뒤 반월·박지도의 명성은 달라졌다. 전국에서 보랏빛으로 꾸민 관광객이 찾아든다. 이른바 ‘보라색 성지’가 된 ‘퍼플섬’에 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반월·박지도는 신안군 안좌도에 딸린 형제 섬이다. 안좌도 두리마을에서 보라색 다리를 건너면 박지도와 반월도에 차례로 닿는다. 섬 모양이 반달처럼 생겨 반월도, 엎어놓은 바가지를 닮아 박지도다. 두 섬 주민을 모두 합쳐봐야 100명 남짓. 대부분이 60대 이상 어르신이다.
2015년 전남도의 ‘가고 싶은 섬’ 사업에 선정된 후 신안군은 4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다리와 길을 닦고, 식당·카페·게스트하우스 등을 지었다. 여기까지는 평범하다. 화룡점정은 보라색 테마로 섬을 가꾸는 작업이었다. 이태 전 천사대교 개통 즈음 반월·박지도에 들른 적이 있다. 그때는 보라색 지붕이 전부였다. 지금은 양쪽 섬의 관문인 퍼플교(1.5㎞)와 문브릿지(380m)를 비롯해 도로와 이정표, 공중전화 박스, 식당의 식기 하나까지 싹 다 보라색이다. 해가 지면 보랏빛 조명이 다리를 감싼다.
마을 어르신들도 이 대규모 ‘깔맞춤’에 적극적이다. 동네 마실 갈 때도 목도리·마스크·꽃신 등의 보라색 소품을 빼놓지 않는단다. 늦은 김장에 나선 마을 할머니 손에 어김없이 보라색 소쿠리가 들려 있었다. 박지도 마스코트로 통하는 고양이 ‘양이’도 목에 앙증맞은 보라색 리본을 달았다. 한 마을 어르신은 “우린 물건 살 때 보라색부터 찾는다. 빤스 빼곤 싹 다 보라색이다”라고 했다.
봄을 기다리며
2019년 약 28만 명이 퍼플섬이 찾았다. 코로나19 악화, 강추위 여파로 최근 손님이 줄긴 했지만, 지난해 8월 13일 정식 개장 이후에도 약 9만 명(일평균 650명) 이상이 섬에 들어 인증사진을 찍고 갔다.
한데 왜 보라색이었을까. 보라색 꽃을 피우는 청도라지·꿀풀 등이 섬에 많은 데에서 힌트를 얻었단다. 지금은 섬 안쪽 길섶과 화단에도 보랏빛이 도는 국화·라벤더 등이 심겨 있다. 반월도 장상순(74) 할아버지는 “주민들이 손수 잡초를 뽑고 보라 꽃을 심었다”고 회상했다.
퍼플섬에 갈 때는 보라색 의상이 필수였다. 입장료(3000원)를 면제받는 방법이다. 매표소 옆에 탈의실이 있는 섬은 퍼플섬이 유일할 테다. 기념품 가게에선 가발·안마기 등 온갖 보라색 물건을 팔고 있었다. 최고 인기 상품은 자수를 넣은 보라색 티셔츠(2만원)다. 사실 반월·박지도의 오랜 특산물은 보라색이 아니라, 김·전복·낙지·굴 따위의 갯것이다. 마을 식당에서 주민들이 잡은 해산물로 조리한 생김굴국(1만원)·낙지연포탕(4만원) 등을 냈다.
해안을 따라 박지도(2.1㎞)와 반월도(4㎞)를 크게 도는 둘레길이 조성돼 있는데, 두 발로 일주하려면 최소 4~5시간은 잡아야 한다. 자전거(1시간 5000원)를 빌리는 방법도 있지만, 강바람도 피하고 주민의 이야기도 전해 들을 수 있는 전동차(9인승, 3000원)를 이용했다. 정창균(67) 박지도 마을 해설사가 라벤더 정원 앞에서 잠시 차를 세웠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네요. 이 추위가 가고 나면 여느 때보다 고운 보랏빛 유채와 라벤더가 꽃을 피울 겁니다”
신안=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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