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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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미국 의사당 점거 사태가 동맹국에 시사하는 것

입력 2021. 01. 15. 00:31 수정 2021. 01. 15.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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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국내 일에 더 바쁘게 됐지만
국제질서 회복 시도 미루지 않을 듯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많은 미국인이 통탄을 금치 못한다. 1797년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후임자인 존 애덤스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대통령직에서 내려온 이래, 모든 미국 대통령은 평화롭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정권을 이양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신 파시스트, 반유대주의자, 백인 우월주의자, 큐어넌(QAnon) 추종자 등을 부추겨 의사당 난입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유발했다. 의회에서 추진 중인 트럼프 탄핵은 1월 20일 조 바이든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 전까지 트럼프의 추가 도발을 막겠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폭도들의 의사당 점거는 미국의 경쟁국엔 더할 나위 없는 호재다. 중국은 민주주의는 혼란스럽고 위험하며, 미국은 쇠퇴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이를 활용할 것이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정보부에서 소셜미디어 봇(bot)으로 백인 민족주의와 트럼프에 대한 극단적인 지지를 조장해 이토록 큰 결실을 얻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 동맹국들은 심란해 하며 이번 사건의 의미를 묻고 있을 것이다. 미국이 국내 일에만 몰두하게 될까? 어떤 의원은 이 사건이 9·11 테러 이후 시대의 서막이며, 이제 미국의 가장 큰 테러 위협은 국내에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 등 국제 안보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게 될 것인가? 형사 소추로 트럼프 대통령이 침묵하고 소셜미디어에서 영구 추방된다 하더라도, 의회 내 선동가 중 하나가 계속 불신과 잘못된 정보, 분열의 불꽃을 조장하지는 않을까? 또 다른 트럼프가 출현하지는 않을까? 앞으로 몇 달, 길면 몇 년 동안 동맹국도 이런 질문들과 마주할 것이다.

그럼에도 좋은 소식도 있다. 시위대가 의사당에서 쫓겨나자 의원들은 헌법에 따른 그들의 의무를 완수했고, 조 바이든 당선인의 대선 승리를 선언했다. 공화당 소속인 밋 롬니 주지사, 리즈 체니 하원의원 등은 연설을 통해 트럼프가 민주주의 국가에 끼친 폐해를 공화당원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역설했다. 일부 예외가 있었지만 모든 정부기관은 트럼프의 선거 결과 전복 시도에 굳건히 맞섰다. 판사들은 대통령이 부정 선거를 주장하며 제기한 불복 소송을 기각했다. 주·지역 선관위 관계자들(상당수가 공화당 소속이다)은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 간섭을 거부했다. 전직 국방부 장관들은 국방부를 향해 선거 불복에 관여하지 말라는 공동 기고문을 냈고, 군부는 개입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뉴욕포스트 등 보수 언론사들도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등의 진보 및 중도 성향의 언론사들과 한목소리로 트럼프를 비판하고 사임을 촉구했다.

또 다행히 동맹국들과의 관계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 유럽 동맹국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으며, 한국·일본·호주와의 동맹에 대중과 정부 모두 충분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지금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민주주의 가치를 후퇴시키거나 정당하고 견고한 국제질서 구축에 주저할 때가 아니다. 이번 사건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얼마나 불안정할 수 있는지, 그리고 종족적 국수주의와 선동 정치가 민주주의 원동력을 얼마나 손상시킬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바이든 당선인은 밖으로는 민주국가들의 굳건한 존속을 돕기 위한 의욕적인 조처를 하면서, 미국 내에서는 ‘더욱 완전한 연합’을 이루는 데에 전념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것 같다. 기술과 지정학, 리더십이 변화하는 시기에 한국과 미국 정부가 각자 국내에서 해야 할 과업과 민주적인 정부 구축에 힘쓰는 나라들을 위해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다면 바이든 시대에 한국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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