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경향신문]
느티나무가 서 있는 남쪽 둔덕에 10여기의 묘지가 나란히 있는 마을 뒷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 길은 산책길로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었다. 한 남자가 묘비를 열심히 들여다보다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이거 보세요. 이 묘비를 보니 한 남편에 두 아내가 나란히 묻혀 있어요.” 그는 묘비 뒤로 나란히 놓인 세 개의 무덤을 가리켰다. 다시 그 위쪽을 향하며 “저기도 그래요” 하며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아주머니는 “글쎄요” 하고 시큰둥하게 답하고 가 버렸다. 정말 한 곳도 아니고 가까이에 두 곳이나 그렇다. 나는 궁금해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묘비에는 남자의 성씨가 적혀 있고 그 옆으로 배유인(配孺人) 아무개라고 두 명의 부인 성씨가 나란히 새겨져 있었다.
계절 따라 바뀌는 풍경을 수없이 찍으면서도 유심히 보지 못했다. 남자는 혼잣말을 했다. “옛날 남자들은 좋았겠네. 여자를 둘씩이나 데리고 살았으니.” 지금 세상에도 이런 꿈을 꾸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남자들이 예전의 권위에 비해 다소 곤궁해지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감이 있다.
옛날이라 하더라도 ‘여자를 둘씩’ 데리고 산 것은 재력이 있거나 세도가나 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두 부인과 나란히 묘를 쓴 것은 상처를 하고 후처를 얻은 경우일 것이다. 사정이 어떻든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참 속없는 남자다. 요즘 젊은이들은 돈이 없어서 장가가기도 힘든 세상인데 말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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