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산모퉁이 돌고 나니] 다리 하나 자른다고 뭔 난리냐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입력 2021. 01. 1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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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 공원에서 노숙하는 분이 주일예배를 드리러 새벽에 왔다. 다른 교회 교인이 소개해서 난생처음 예배 드리러 온 것이다. 그런데 팬데믹으로 대면 예배를 드릴 수 없었다. 그는 두 발과 한 손이 없고, 오른손만 남아 있었다. 갈고리 손 하나는 덜거덕 쇳소리를 내며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낯빛이 평안했다. 보기 드문 일이다. 다른 분들은 교회 현관에서 기도해 드리고, 아침 식사와 일주일분 마스크를 드리고 돌려보냈다. 평소엔 노숙인을 위한 예배 후엔, 아침 식사를 함께 하고 헤어졌는데, 그냥 돌려보내니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이분은 내 방으로 모시고 들어와 면담을 했다.

“어떻게 몸도 불편한데 새벽에 오셨나요?” 웃음 띤 표정으로 머뭇거림 없이 대답한다. “얼마든지 다닐 수 있어요! 택시로 왔습니다. 찾아오는데 혼났지만요! 애먼 데 내려주어서…. 그래도 잘 찾아왔습니다.” 뜻밖에 불평이 없다. 그가 말로 하지 않았지만, 알아차릴 수 있었다. 택시 기사가 새벽부터 재수 없다고 애먼 곳에 내려놓고 가버린 것이다. “어떻게 몸이 그렇게 되셨나요?” “버거씨 병입니다. 모세혈관이 막혀 손발이 썩어서 잘라냈어요. 엄지발가락 한 개에서 시작했는데, 한 손만 남았습니다.” 그는 두 동생이 있으나, 짐이 될까 연락을 끊고 노숙한다는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나는 그와 대화하면서 놀랐다. 그 목소리와 표정에서 평안함과 여유를 보았기 때문이다. 팔다리가 성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 얼마나 괴로울 일인가? 먹고살기도 힘들고 머리 둘 곳조차 없는 판에! 나는 다시 물었다. “어찌 그렇게 여유가 있고 평안하신가요? 세상이나 부모나 하나님이나, 누구 원망하는 마음이 안 드셨어요?” “아이 뭐, 이미 벌어진 일인데, 원망해서 뭐 해요. 원망해봐야 나만 망가지는 거지.” “그런 마음이 저절로 들었어요?” “그러게 말이에요. 저도 모르겠어요. 그게 이해가 안가요, 저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묻는 내가 오히려 머쓱해졌다. 그는 웃음 띤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만 어렵겠냐, 세상살이가 다 어려운 것인데! 병원에 있을 적에도 의사 선생님들이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팔다리 자르고서, 되레 더 평온해지니까! 병원에 있을 적에 제가 아주 애먹었다니까요. 나 때문에 다른 환자들이 의사한테 욕먹고 그랬어요. 아니 저 사람은 양다리에다가 팔까지 저런데, 당신들은 다리 한쪽 가지고 죽는 시늉을 하고, 창문에서 뛰어내리겠다 하니…. 제가 거기 있기가 아주 미안하더라고요.”

나도 웃음이 나왔다. 그래, 팔다리 없다고 꼭 불행할 일이 어디 있나. 마음과 믿음에 달린 것이지! 예수께서도 죽으러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준다” 하셨고, 우는 여인들에게는 “나를 위해서 울지 말고 너희를 위해서 울라”고 하시지 않던가! 나도 웃으며 이야기를 건넸다. “그 병원에서는 얼마 동안 계셨는데요?” “병원 생활은 얼마 안 하죠. 이거 뭐 절단하면 끝인데, 뭘 오래 있어요.” “하하하!” 우리는 함께 웃었다.

“절단하고 나면 굉장히 아프지 않으세요?” “절단하고 나면 아프죠. 원래 다리가 있는 것처럼 거기 통증이 무지하게 와요. 근데 그건요, 어느 절단 환자건 다 똑같아요.” “누구나 다 아픈 거라고 생각하는 게 천사 같은 마음이고, 정말 놀랍네요! 참 존경스럽습니다.” 그는 한 번 자르면 될 일을 의사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그래서 상한 부분만 잘라내다가 결국 11번을 잘라야 했다. 11번을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겪고 나니, 어느 순간 급하고 못된 성질이 없어져 있더라는 것이다. “형제님, 고난이 은혜네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셨네요. 어려서부터 믿었나요?” “아니에요. 어머니는 열심히 다녔는데, 저는 말 안 듣고 안 갔어요. 저는 죄도 많이 짓고….” “어머님의 기도가 있으셨겠지요. 저랑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나는 교회 목욕실에서 목욕을 하도록 하고, 비대면 낮 예배 후에, 함께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노숙하는 공원에 두고 온 짐을 가지고 오도록 차를 제공했다. 그리고 산마루공동체로 함께 갔다. 한 달간 함께 지내며 성경 말씀과 영적 대화를 하였다. 말씀을 나누면서, 나는 진리를 누리는 한 영혼에게서 일어나는 기쁨과 평안과 자유를 보았다. 한 달 만에 세례를 받고 주의 자녀가 되었다. 하지만 계속 머물 공간이 없어 일단 서울로 나와 후암동 고시원 1층에 자리를 마련해 드렸다. 그리고 치아가 망가져 치과 치료를 시작했다. 치과 치료 후 봄에는 공동체에서 살 수 있도록 통나무를 사다가 집을 지을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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