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조선일보

김재호 전남대 교수 "5·18 특별법, 5·18 정신 훼손하는 惡法"

유석재 기자 입력 2021. 01. 15. 03:04 수정 2021. 01. 15. 16:31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허위 사실 유포하면 처벌한다고? 다른 소리 못 내게 하는 자가당착
최진석 교수 이어 반대 목소리 "광주 시민, 공감·격려 전화 줘"
본지와 인터뷰하는 김재호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김영근 기자

‘혹시 항의 메일이나 전화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김재호(57)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는 “그런 거 전혀 없었다”고 했다. “오히려 조금 전 광주 시민에게서 공감한다는 격려 전화를 받았습니다.”

김 교수는 최근 전남대 교직원 온라인 게시판에 ‘민주주의와 5·18을 모독하는 악법을 폐지하라’는 성명서를 올렸다. 그는 “(특별법이 통과된 2020년 12월 9일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법치 그리고 광주와 호남의 위대한 민주주의 투쟁의 유산이 쓰레기통에 처박힌 불행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지난달 국회에서 통과돼 지난 5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5·18 역사왜곡처벌법(5·18 특별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가 5·18 특별법을 질타한 데 이어, 5·18의 성지(聖地)인 전남대의 현직 교수가 5·18 특별법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전남대 부설 5·18 연구소가 반박했고 지역 언론의 비판이 이어졌다. 그러나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등 호남 출신 인사 수십 명은 김 교수와 뜻을 같이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가 처음 게시판에 성명서를 올렸을 때 교직원 중 ‘찬성’을 누른 사람은 ‘반대’의 22% 정도였으나, 세 번째 글에서는 52%까지 올라갔다.

/김영근 기자

왜 5·18 특별법을 반대하는 것인지 김 교수에게 물었다. “5·18은 집회·결사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압적인 정부에 항거해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입니다. 그런데 허위 사실 유포를 막는다며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한다면 오히려 5·18 정신을 훼손하는 자가당착적인 법이 아닌가요?”

독일에 나치 찬양을 막는 법이 있다는 반박에 대해서는 “나치와 5·18 왜곡을 같이 놓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나치는 전 지구적인 범죄를 저질렀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현존하는 위협이었지요. 그런데 5·18을 왜곡하는 사람들을 그와 견줄 수 있는 세력으로 볼 수 있습니까? 현행법 안에서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막지 않으면, 앞으로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더욱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갈 위험성이 있다”고 했다.

5·18이 지난 40년 동안 진상 규명을 통해 90% 이상 밝혀졌기 때문에 사실이 아닌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무엇이 사실이라고 답을 정해버리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했다. “그동안 이뤄진 것은 사료 수집과 연대기·일지의 정리일 뿐 역사 연구는 이제 본격적인 시작인데, 다양한 관점의 연구를 처음부터 봉쇄해서야 되겠습니까.” 같은 자료라도 역사가의 연구에 따라 얼마든지 새롭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5·18의 역할에 대해서 김 교수는 “두 가지 중요한 말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우선 대런 애쓰모글루 미 MIT대 교수가 저서 ‘좁은 회랑'에서 했던 말이다. 국가의 힘과 사회의 힘이 서로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균형 발전을 해야 사회가 발전하는데, 국가가 너무 강하면 억압과 착취의 주체가 될 수 있으므로 사회가 이 비대해진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에 족쇄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5·18 특별법은 역사의 진실과 허위를 판정할 힘을 국가에게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5·18 이후 민주화를 통해 국민이 리바이어던에 채운 족쇄를 풀어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했던 말이다. ‘허위 사실일지라도 발언하게 놔 두라'는 것이다. 허위로 인해서 진실이 더 진실될 수 있게 단련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진실이라는 것도 처음부터 아무도 논박할 수 없는 진실이 아니라 비판과 토론의 과정을 거쳐서 거듭나는 것입니다.”

김 교수는 “보수 쪽에서도 5·18을 백안시하고 진보 세력이 전유(專有)하도록 방치할 게 아니라, 보편적인 민주화 운동으로서 역사 속에 포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래를 위한 공동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방어적으로, 조금씩 땅을 내주듯이 마지못해 5·18을 받아들인다면, 5·18 해석 권리의 ‘저작권'이 진보 쪽으로만 넘어가게 됩니다.” 광주 시민에 대해서는 “공수 부대와 시민의 전선(戰線)이라는 이분법으로 현재의 정치 상황을 보는 것은 이제 그만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