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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은 장애를 '종식'할 수 없다

허윤희 입력 2021. 01. 15. 05:06 수정 2021. 01. 1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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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 소설가·김원영 변호사 메신저 인터뷰
보청기와 휠체어 보조기기로 경험한 '사이보그'
"비장애중심 기술, 장애인 현실 외면하고 소외시켜"
김원영 변호사(왼쪽)와 김초엽 소설가. ⓒ이지양

“우리는 ‘장애인 사이보그’다.”

에스에프(SF) 소설가 김초엽(27)과 변호사 김원영(38)은 사회과학서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이렇게 입을 모은다. 청각 장애와 지체장애를 가진 이들은 장애와 과학기술이 결합하는 공통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함께 썼다. 이야기의 중심은 휠체어, 보청기 등 보조기기라는 ‘기계’의 도움을 받는 장애인, 즉 ‘장애인 사이보그’이다. 포스트 휴머니즘 담론 장에서 소외된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한 상징적 용어다. 책 출간(15일)을 앞둔 지난 12일 이들을 카카오톡으로 인터뷰했다. 메신저 역시 인터뷰 과정에서 ‘기계’로서 돕는 구실을 한 셈이다.

“2018년 12월 에스엔에스를 통해 알게 된 김초엽 작가에게 이메일을 보냈어요. 과학기술과 장애의 관계를 당사자로서 함께 목소리를 내는 협업을 제안했는데, 이 책의 시작이었던 셈이죠. 처음에는 과학만이 아니라, 과학을 포함한 몇 가지 주제에 대해서 우리의 차이와 같음을 담은 글을 모아보고자 했어요.”

김원영에게 장애와 과학기술은 ‘오래된 숙제’였다. 16년 전 ‘황우석 사건’이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는 학교 정문에서 매일 시위를 하는 황우석 지지자들의 모습을 보았다. “당시 황 교수의 연구가 거짓임이 밝혀진 다음에도 끝까지 그 믿음을 철회하지 않는 지지자들이 있었어요. 그들 중에는 장애인 가족과 당사자들이 있었고요. 그때 그 사건이 강렬하게 남았고,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학적 관심으로 이어졌어요.”

김원영은 김초엽을 만나 장애와 과학기술이라는 주제를 구체화했다. 이메일과 메신저를 통해 포스트 휴머니즘과 과학기술, 장애에 관해 이야기하며, 보청기를 착용하고 휠체어를 타며 생활하는 ‘고유한 경험’을 나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간의 미래상으로 불리는 ‘사이보그’를 떠올렸다. 사이보그는 인공두뇌학(사이버네틱)과 유기체의 합성어로, 1960년 맨프레드 클라인스와 네이선 클라인의 <사이보그와 우주>에서 처음 소개한 말이다. 그들은 “기계와 결합한 유기체”라는 점에서 자신들도 “‘사이보그적’ 존재”임을 발견했다. 그들에게 기계와 유기체, 인간과 비인간 등 이분법 경계를 허무는 사이보그는 ‘정상성’을 해체하는 은유이기도 하다. “사이보그는 ‘온전한 인간’이나 ‘정상적인 인간’과 같은 개념들에 균열을 내는 용어예요. 그래서 내가 ‘정상이 아닌’ 존재라고 느낄 필요를 없애줍니다.”(김원영)

그들이 조명하는 사이보그는 첨단 아이콘이 아니다. 화려한 디자인의 의족을 신고 달리는 운동선수, 아이언맨 슈트를 입고 하늘을 나는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현실의 사이보그, 즉 장애인 사이보그이다. “낡은 철제 수동 휠체어를 탄 이들, 오래된 전동 휠체어를 타고 배터리가 방전될까 걱정하는 이들, 3일에 한 번씩 신장 투석기에 접속하고 4시간씩 혈액의 노폐물을 걸러주느라 스케줄 조정에 곤란을 겪는” 이들이다. 실제로 몸과 기계의 결합은 매끄럽지 않다. 그들의 “보철 다리는 원래의 신체를 짓누르고”, “귓속에 삽입된 보청기는 습진과 중이염을” 일으킨다.

보조기기를 단 장애인은 ‘사이보그 낙인’을 받기도 한다. 김초엽에게 “보청기는 값비싼 낙인”이었다. “보청기를 안 보이게 숨기면서 지냈”고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보거나 이상하게 볼 수도 있다’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그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최근에 청각장애인 유튜브 방송을 보니 그들 역시 밖에서 보청기 배터리를 교체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안 보이게 했다는 경험을 털어놓더군요.”

김초엽과 김원영은 10대 때부터 보조기기와 함께한 서로의 다른 감각도 알게 됐다. 김초엽에게 보청기가 “이물질이자 불편한 기계”였다면 김원영에게 휠체어는 “오랫동안 머물렀던 집”이다. “15살 때부터 휠체어를 탔지만 그 전 ‘몸의 감각’이라는 게 기억나지 않아요. 내 몸의 ‘원초적인’ 감각이 휠체어를 탄 상태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이게 선천적 장애인인 제가 보조기기와 연결된 몸을 경험하는 방식인데, 이 점이 (후천적 장애인) 초엽님과 달랐어요.”(김원영)

그들은 과학과 기술 영역의 중심에 깔린 비장애중심주의를 우려한다. 비장애중심주의는 장애가 없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고 정상적이라고 보는 이데올로기이다. 특히 “장애를 치료와 교정의 대상”으로 보고 기술이 장애를 극복하게 해준다는 관점이 팽배하다. 이것이 기술철학자이자 장애학자인 애슐리 슈가 말한 기술 중심의 장애차별주의 ‘테크노에이블리즘’이다.

첨단의 사이보그를 홍보하는 영상매체에 장애인은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가 베푼 온정의 수혜자로 등장한다. 일례로 음성 합성 에이아이(AI) 광고를 보면 청각장애인이 에이아이를 통해 구현된 목소리를 내자 가족들은 목소리를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기술이 장애인들에게 정상성을 ‘선물’하고 비장애인들이 그것을 보며 감동받는 구도”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김초엽은 “온정과 시혜로 뒤덮인 시선들은 장애인 사이보그의 현실에는 눈을 감고, 미래적인 이미지만을 기술낙관주의의 홍보 대사로 내세운다”고 지적했다. 결국 ‘장애의 종식’을 예언하는 미래 과학기술만을 향해 가다 보면 이동권 보장, 사회참여 등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장애인의 더 나은 오늘 여기의 삶은 끝없이 유예되는 것이다.

그들이 상상하는 과학기술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완전함에 도달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불완전함과 함께 살아가는 기술, 그리고 미래를 추구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취약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소외시키며 나아가는 구조인 것 같아요.”(김초엽) “고가의 퍼스널 모빌리티를 몸에 입고 걸어 다니는 사회보다는, 제가 휠체어를 타고도 개를 키우고 나이드신 어머니의 병원 보호자가 되는 데 문제가 없는 기술이 더 많은 사회이기를 바랍니다.”(김원영)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장애인 당사자 관점에서 다시 쓴 ‘기술의 미래’ 사이보그가 되다김초엽·김원영 지음/사계절·1만7800원 과학기술은 인간의 삶을 어디까지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인류가 지능과 신체 한계를 과학기술로 극복한 ‘포스트휴먼’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그 시기를 머지않은 미래 2045년으로 예상한다. 소설가 김초엽과 변호사 김원영이 함께 쓴 <사이보그가 되다>는 이런 ‘기술 유토피아’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책이다. ‘현실의 사이보그’인 장애인들의 삶을 비판의 중심에 둔다. 인공 와우(달팽이관 장치), 휠체어 등 보조기기와 결합하는 과정에서 겪는 불편함과 고통, 과학기술 정보 접근의 격차 등은 장애인들이 피할 수 없는 오늘의 문제다. 인간의 몸과 과학기술의 만남, 장애의 미래를 상상하기, 장애를 디자인하기 등 다양한 관련 주제가 총 10장으로 구성돼 이 책에 담겼다. 소설가와 변호사 협업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 장애의 경험에 관한 차이와 공통점, 책을 쓰면서 들었던 고민 등을 담은 두 저자의 대담은 이 책의 가장 핵심적 대목일지 모른다. 장애학 관점에서 이뤄져온 과학기술에 관한 새로운 논의와 연구도 소개됐다. 에이미 햄라이와 켈리 프리츠가 2019년 발표한 논문 ‘크립 테크노사이언스 선언’이 특히 자세히 다뤄졌다. 햄라이와 프리츠는 “기존의 주류 장애 기술이 주로 비장애인 전문가들에 의해서,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장애인들이 자신의 구체적인 장애 경험 속에서 일상의 기술을 재구성하고, 미래를 설계하자”고 제안한다. 장애인 딸을 위해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경사로 집을 만든 건축가와 디자이너 부부, 휠체어 전동 키트 ‘토도드라이브’를 만드는 소셜 벤처 등의 사례가 생생하게 제시된다. “많은 장애인들이 기술과 연관되어 있고, 그중 일부는 장애인 사이보그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 모든 장애인이 기술의 중심이 될 수는 없으며 모두가 사이보그가 될 수도 없다. 결국 기술과 장애의 관계를 살피는 일은 기술 자체에 대한 접근성을 살피는 일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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