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겨레

악에 맞서 예술은 무얼 할 수 있을까

허윤희 입력 2021. 01. 15. 05:06 수정 2021. 01. 1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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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 작가 자우메 카브레 서면 인터뷰
악의 본질 다룬 소설 '나는 고백한다' 국내 첫 출간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카탈루냐 작가 자우메 카브레의 소설 <나는 고백한다>(전3권)는 바이올린 한 대를 매개로 삼아 악의 연대기와 본질을 다룬 작품이다. ⓒ Itamar Katz

나는 고백한다 1~3자우메 카브레 지음, 권가람 옮김/민음사·각 권 1만4000원

카탈루냐 문학을 대표하는 자우메 카브레의 소설 <나는 고백한다>(전3권)가 최근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인 카브레의 이 소설은 중세 유럽의 종교재판과 2차대전의 홀로코스트,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까지 축적된 악의 연대기를 바이올린 한 대를 매개로 들려준다. <한겨레>는 카브레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의 문학 세계와 카탈루냐의 역사와 문화, 한국 독자를 만나는 소감 등을 들었다.

2011년에 발표한 <나는 고백한다>를 언제 집필하기 시작했고,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파마노의 목소리>(2004)를 막 끝냈을 무렵이었어요. 그때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의 수필 <만료 시효 없는 것>(L’imprescriptible, 1971)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히틀러가 통치하던 독일에서 저질러진 유대인들에 대한 대학살, 즉 쇼아를 경험한 장켈레비치가 살인자들을 용서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결론은 그러한 악은 용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 오른 예수가 형을 집행하는 백인 대장을 가리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행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장켈레비치는 쇼아에 대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자신이 행하는 일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파마노의 목소리>는 이 문구로 시작해, 이 문구로 끝을 맺습니다. 그런데 집필을 마친 후 <파마노의 목소리>라는 소설이 무언가 미완성의 상태로 남아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소설 전개상 끝을 맺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궁극적으로 하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7년이 걸렸던 <파마노의 목소리>를 끝내고도 쉴 수가 없었어요. 이런 이유로 바로 집필을 시작한 이야기가 결국 <나는 고백한다>가 되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우리가 경험해 온 끔찍한 악들

소설에서는 중세 스페인 종교 재판, 홀로코스트 등 어두운 역사와 히틀러, 프랑코 등 거대한 악의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한편으로 골동품 거래에 방해되는 이들을 공산주의자로 고발하는 펠릭스 아르데볼, 아드리아의 우정을 배신하는 베르나트 등 평범한 악인들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악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요?

“그렇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악을 목격하고,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쇼아, 프랑코 및 프랑코주의자들의 악행, 모든 독재자들의 악행들, 개인들의 이기주의… 이 모든 것이 악의 연속들입니다. 아주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도 굉장히 이기주의적이거나 욕심에 가득 차 있고, 타인을 돕는 데 인색하기도 합니다. 악의 구체적인 모습들은 다 달라요. 인간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경험해 온 끔찍한 악들이 있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악이 있지요. 악의 편재성, 악의 각기 다른 구체성, 즉 이기주의에서부터 질투심에 의해 타인에게 해를 입히려는 욕망까지, 바로 이런 것들이죠. 인간의 악행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겁니다.”

소설 속 악을 저지른 이들은 고해성사를 합니다. 우리가 악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악한 세상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요? 소설에서 강조한 예술(특히 문학)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하나요?

“제가 이 질문에 답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술과 문학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사람들이 책을 읽고, 피아노를 친다면… 괴물로 변해 버릴 가능성이 줄어들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쇼아, 곧 유대인 전체를 절멸시키려는 나치즘의 의지를 목격한 바 있습니다. 불과 1세기 이전의 일이에요. 이러한 잔혹 행위 앞에서, 소설 한 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많은 선한 사람들, 독자들에게 삶과 존재를 영위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독자들로 하여금 세상을 탐험하고, 행동 방식을 고민하게 하며, 이야기의 웃음이나 형식의 놀라움을 통해 행복을 느끼도록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요….”

“카탈루냐 독립 국가 원해”

소설에서 사라의 아버지 볼테스가 “자신들의 땅에서 노예 생활을 한다 느끼고 카탈루냐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주를 경험해야 했던 많은 카탈루냐 사람들”의 모습을 유대인에게서 보았다고 말합니다. 볼테스는 유대인과 카탈루냐 사람들이 어떤 측면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했는지요?

“카탈루냐인들은 독립된 국가를 설립하기 원합니다. 그에 따라 2017년 주민 투표를 실시했고, 독립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투표 자체에 반대한 스페인 정부는 굉장히 폭력적인 탄압으로 대응했고, 카탈루냐 정치인들을 체포하여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핵심 정치인들이 수년에 달하는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아직도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상황이에요. 그리고 카를레스 푸치데몬 자치수반처럼 망명을 한 정치인들은 아직도 망명 생활 중이고요. 유대인의 경우 수 세기 동안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야 했고, 그들이 가는 곳마다 끔찍한 대박해가 뒤따랐습니다. 그들 중 원하는 일부가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기 전까지 말이죠. 사라의 아버지는 유대인 여인과 결혼하게 되고, 자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라의 아버지는 카탈루냐인으로서 그리고 유대인으로서(결혼을 통해) 이중으로 쫓기는 마음이 드는 것이지요.”

한국에 작가님의 작품이 처음 번역 출간됐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될 한국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굉장히 설렐 따름입니다. 기자님 질문 하나하나에 기쁜 마음으로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독자들과 만나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한국의 독자들이 이 소설을 흥미롭게 읽고, 한국의 편집자분들이 저의 또 다른 소설의 출간을 결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더없이 영광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독자분들께는, 어쩌면 카탈루냐(제 출신 국가이지요)와 카탈루냐어(제 모국어입니다)를 처음 접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허윤희 최재봉 기자 yhher@hani.co.kr, 번역 권가람

[인터뷰 전문] -<나는 고백한다>는 <환관의 그림자>, <파마노의 목소리>에 이은 악에 관한 세 번째 작품입니다. 여러 주제 중에서 ‘악’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작품을 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의도적으로 그렇게 된 건 아닙니다. 보통 작품을 시작할 때,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정해 두지 않아요. 대신 구체적인 인물을 먼저 그리는 편입니다. 그리고 그 인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에 관심 있는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이러한 것들을 그려 봅니다. 악이요, 네, 물론 등장합니다만, 그것이 주제의 다는 아니에요. 공교롭게도 기자분이 질문을 주신 세 작품이 구상부터 집필까지 가장 오래 걸린 작품이기는 합니다.<『환관의 그림자>는 6년, <파마노의 목소리>는 7년 그리고 <나는 고백한다>는 8년이 걸렸으니까요.” - 2011년에 발표한 <나는 고백한다>를 언제 집필을 시작했고,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파마노의 목소리>를 막 끝냈을 무렵이었어요. 그때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의 수필 <만료 시효 없는 것>(L’imprescriptible, 1971)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히틀러가 통치하던 독일에서 저질러진 유대인들에 대한 대학살, 즉 쇼아를 경험한 장켈레비치가 살인자들을 용서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결론은 그러한 악은 용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독교인들이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라고 한다면, 장켈레비치는 용서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십자가에 오른 예수가 형을 집행하는 백인 대장을 가리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행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장켈레비치는 쇼아에 대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자신이 행하는 일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파마노의 목소리>는 이 문구로 시작해, 이 문구로 끝을 맺습니다. 그런데 집필을 마친 후, <파마노의 목소리>라는 소설이 무언가 미완성의 상태로 남아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소설 전개상 끝을 맺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궁극적으로 하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7년이 걸렸던 <파마노의 목소리>를 끝내고도 쉴 수가 없었어요. 이런 이유로 바로 집필을 시작한 이야기가 결국 <나는 고백한다>가 되었습니다. 할 일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다는 마음을 떨쳐 버리기 위한 것이었어요. 하지만, 장켈레비치의 말로 시작된 그 무언가가 <파마노의 목소리>보다 더 긴 소설로 탄생하리라는 것은 그 당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아직 구체화되지도 않은 소설 속 인물들이 거의 강제적으로 소설 속 중요 주제 중 하나인 인간의 악을 살아 내야 한다는 것 또한 예상치 못했던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기차를 타고 바르셀로나를 가는 길이었을 겁니다. 라몬 율의 작품을 뒤쫓는 아주 잔인한 종교 재판관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가 어떤 문을 열고 나가자 20세기 나치의 고위 관료가 되더군요. 한 문장 속에서, 그 장면의 연속을 끊지 않고 표현할 수 있겠구나… 내가 소설 속 시간의 주인, 그리고 모든 사건들이 일어나는 장소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빈 공간들과 인물의 세부 형태를 채워 나갔습니다. 8년이나 걸리는 일이 될 줄은 몰랐지만요! 그래서 <파마노의 목소리>와 <나는 고백한다> 사이에는 숨겨진 ‘우애’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비록 다른 시공간과 다른 인물들을 다루고 있지만 말입니다.” - 소설에 등장하는 중심 소재인 바이올린은 착취의 물건으로 상징됩니다. 소설의 중요한 상징물로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바이올린은 제가 관심 있는 악기이자, 제가 정말 잘 연주하지 못하는 악기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야기로 풀어 내고 싶었던 것들을 다 말하기 위해서, 피아노가 주인공 악기가 된다는 것은 정말 상상할 수도 없어요. 목재가 있어야 하고, 현악기 장인들의 세계를 그려 내야 하고…… 프레다초는 북부 이탈리아 돌로미티 산맥의 트렌토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곳의 숲이 바로 소설 속 자키암 무레다 가족이 사는 곳입니다. “노래하는 목재”가 될 나무들을 돌보며 생활하는 가족이지요. 오늘날에도 바이올린, 첼로, 그리고 다른 현악기들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목재를 여전히 생산해 내는 곳입니다…. 그리고 <나는 고백한다>를 한국어로 번역한 권가람 씨의 바이올린 실력은 대단합니다. - 주인공 아드리아 아르데볼은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병을 물려주셨죠. 어떤 물건을 원할 때 그 욕망으로 인해 손끝이 간질간질한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은 아버지로부터 아드리아로 이어 내려오는 악의 대물림을 나타냅니다. 이런 악의 대물림을 말하는 이 문장을 통해 작가가 독자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소설을 쓸 때 독자들을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주로 생각하는 것은 주인공들이 실제 존재하는 인물처럼 느껴지는가, 충분히 흥미로운가,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흥미로운 내면을 갖고 있는가와 같은 것들을 생각합니다. 그 내면이 독자의 흥미를 끈다면 더없이 좋겠지요. 독자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는 권위적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독자들이 인물들을 충실히 따라가 주는 것뿐입니다. 그 인물들이 좋든 싫든 말이죠. 아드리아가 아버지처럼 물건에 대한 수집욕이 있다는 사실을 통해, 제가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특별한 가르침은 없습니다. 그저 아드리아가 자신의 아버지와 같이 물건을 수집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얘기하고자 할 뿐입니다. 저는 독자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는 입장에 서 있지 않아요. 그저 인물들을 충실히 그려 내고자 할 뿐이죠. 독자들에 대해서 저는 알 수가 없거든요. 독자들에게 어떤 됨됨이나 문학적 취향에 대해 특정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 뿐이고, 그 이야기를 독자가 마음에 들어 하든 그렇지 않든 생각할 거리가 된다면, 독자들에게 잘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제 손을 떠난 일이니까요…. 저는 누구에게 교훈을 주는 입장에 서 있지 않아요. 인물과 서사를 꾸리는 것만으로도 제가 할 일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래도 작은 바람이 있다면, 독자들이 좋아하는 인물들이 생겨서, 흥미를 갖고 소설을 읽는 것이지요. 그리고 소설의 형식, 제가 인물의 모습을 쌓아 올려 가는 방식을 좋아해 줬으면 하고요. 그렇지만 절대 그 누구에게도 교훈을 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죠. 어떤 독자가 제 소설이 좋았다고 말한다면, 저는 정말 기쁠 따름입니다!” - 소설 한 문장이나 문단 안에서 여러 시공간과 인물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서술 기법을 선보입니다. 이런 소설 작법을 즐겨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래야만 작가(그리고 독자)가 움직이지 않고도 여러 시공간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니까요. 어떤 이야기를 새롭게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 하나의 기적과 같다고나 할까요. 제가 소설을 쓰며 이 시대와 또 다른 시대를 옮겨 다닐 때, 독자들도 이 여행에 함께했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누구에게는 다소 낯설 수도 있는 방식이지요. 하지만 익숙해지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물론, 작가로서 여러 시공간을 이동할 때는, 독자들이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여행했으면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제가 독자가 되어 어떤 소설을 읽을 때면, 저는 작가가 주는 놀라움이 좋습니다. 꼬불꼬불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 나가고 싶고, 인물들에 대해 간절히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가 좋아요. 인물들이 나를 울려 버릴 때도 좋고요…. 그런데 제 소설의 인물들이 독자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면, 저는 분명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일 테지요. 아르헨티나의 매우 꼼꼼한 한 독자가 <나는 고백한다>를 읽고 다음과 같은 말들을 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 당신은 언어의 선형성에 도전한다. - 이 소설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 이 소설은 3D로 쓰인 소설이다. - 이 소설을 읽는 것의 기쁨은 거듭되는 새로운 발견에 있다.” - 소설에는 등장인물들이 이탈리아어, 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로 말합니다. 이렇듯 다양한 언어를 함께 소설에 넣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드리아는 대학자로 성장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만물박사로 키우는 데 급급했던 나머지, 행복한 아들로 키우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아드리아는 매우 총명합니다. 저도 수많은 언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해요. 아드리아처럼 말이죠. 그의 부모는 아드리아가 굉장한 영재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어요. 문제는 그의 아버지의 경우 아드리아가 지식을 쌓는 데만 뛰어난 사람이 되기를 바랐고, 어머니의 경우 자신의 뜻대로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를 바랐다는 겁니다. 균형 잡힌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지요. 그래서 소설이 이렇게 시작하는 겁니다: “어젯밤 발카르카의 비에 젖은 거리를 걸으며 비로소 나는 내 가족 중 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실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소설에서는 중세 스페인 종교 재판, 홀로코스트 등 어두운 역사와 히틀러, 프랑코 등 거대한 악의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한편으로 골동품 거래에 방해되는 이들을 공산주의자로 고발하는 펠릭스 아르데볼, 아드리아의 우정을 배신하는 베르나트 등 평범한 악인들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악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요? “그렇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악을 목격하고,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쇼아, 프랑코 및 프랑코주의자들의 악행, 모든 독재자들의 악행들, 개인들의 이기주의…. 이 모든 것이 악의 연속들입니다. 보기에 아주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도, 굉장히 이기주의적이거나 욕심에 가득 차 있고, 타인을 돕는 데 인색하기도 합니다…. 악의 구체적인 모습들은 다 달라요. 인간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경험해 온 끔찍한 악들이 있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악이 있지요. 악의 편재성, 악의 각기 다른 구체성, 즉 이기주의에서부터 질투심에 의해 타인에게 해를 입히려는 욕망까지, 바로 이런 것들이죠… 인간의 악행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겁니다….” - 소설 속 악을 저지른 이들은 고해성사를 합니다. 우리가 악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악한 세상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요? 소설에서 강조한 예술의 역할(특히 문학)이 강조되어야 하나요? “제가 이 질문에 답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술과 문학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사람들이 책을 읽고, 피아노를 친다면… 괴물로 변해 버릴 가능성이 줄어들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쇼아, 곧 유대인 전체를 절멸시키려는 나치즘의 의지를 목격한 바 있습니다. 불과 1세기 이전의 일이에요…. 그리고 20세기 초반,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저질러진 야만적 행위, 그리고 몇 년 후 후투족이 여성, 어린이, 신생아를 가리지 않고 투치족이라면 무참히 살해했던 르완다 학살… 살인 정권 폴 포트가 저질렀던 캄보디아의 대학살…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만행들이 있었을 겁니다. 이러한 잔혹 행위 앞에서, 소설 한 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많은 선한 사람들, 독자들에게 삶과 존재를 영위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독자들로 하여금 세상을 탐험하고, 행동 방식을 고민하게 하며, 이야기의 웃음이나 형식의 놀라움을 통해 행복을 느끼도록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요….” - 소설에서 사라의 아버지 볼테스가 “자신들의 땅에서 노예 생활을 한다 느끼고 카탈루냐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주를 경험해야 했던 많은 카탈루냐 사람들”의 모습을 유대인에게서 보았다고 말합니다. 볼테스가 유대인과 카탈루냐 사람들이 어떤 측면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했는지요? “카탈루냐인들은 독립된 국가를 설립하기를 원합니다. 그에 따라 2017년, 주민 투표를 실시했고, 독립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투표 자체에 반대한 스페인 정부는 굉장히 폭력적인 탄압으로 대응했고, 카탈루냐 정치인들을 체포하여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핵심 정치인들이 수년에 달하는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아직도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상황이에요. 그리고 카를레스 푸치데몬 자치수반처럼 망명을 한 정치인들은 아직도 망명 생활 중이고요. 이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카탈루냐인들은 독립을 원합니다. 여러 측면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상황은 사실 수 세기 동안 지속된 것입니다. 스페인은 캐나다와 같은 방식을 따르지 않으려고 해요. 캐나다의 경우 퀘벡의 독립을 묻는 주민 투표를 두 번 실시했고, 그 두 번 모두 독립 진영이 다수표를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투표할 권리라도 있었습니다!! 스코틀랜드 같은 방식도 스페인에서는 요원해 보입니다. 그들은 영국으로부터의 분리를 결정하는 주민 투표를 할 수 있었고, 역시나 독립주의자들이 패배에 승복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또 한 번의 주민 투표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지요. 하지만 카탈루냐에는 그런 의사 타진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어요. ‘스페인의 허락 없이’ 투표 실시를 계획하게 되면, 그에 대한 응답은 강력한 탄압으로 되돌아올 뿐입니다. 유대인의 경우 수 세기 동안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야 했었고, 그들이 가는 곳마다 끔찍한 대박해가 뒤따랐습니다. 그들 중 원하는 일부가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기 전까지 말이죠. 사라의 아버지는 유대인 여인과 결혼하게 되고, 자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라의 아버지는 카탈루냐인으로서, 그리고 유대인으로서 (결혼을 통해) 이중으로 쫓기는 마음이 드는 것이지요.” - <나는 고백한다 3> ‘작가의 말’에서 “나는 이 소설을 완성하지 않고 아우슈비츠 석방 기념일인 2011년 1월27일부로 더 이상의 집필을 완전히 그만두었다.”라고 썼습니다. 이 소설의 집필을 마친 그때 당시의 심경은 어떠했는지요? “소설을 끝내지 못했다는 심정이었습니다. 또 다른 인물, 또 다른 상황을 계속 써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면, 그것에 일관성을 부여하고 흥미롭게 만들고자 하는 의무감 같은 것이 생기지요. 그것을 성취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그렇게나 긴 소설, 즉 8년 동안 매일 함께한 인물들과 이야기의 형식들로부터 나를 분리하고, 하나의 작품을 편집자에게 보낸다는 것이, 스스로 버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의 실신하기도 했었고요.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왔어요. 심지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싶다는 유혹까지도 말입니다. 그래서 책을 끝냈을 때, 그 마지막에 들었던 심경 그대로를 썼습니다. 바로 이 소설은 “분명히 미완성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소설을 끝내면, 다시 말해 소설의 집필을 마치고 편집자에게 보내고 나면, 언제나 버려진 느낌이 듭니다. 왜냐하면 소설 속의 모든 인물들, 상황, 풍경, 기쁨, 그리고 슬픔이 저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지요. 이제는 내 인생에서, 무얼 해야 하나?” - 이 소설에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소설 속 한 문장이 있다면? 만약 한 문장을 꼽았다면 왜 그 문장을 선택했는지요? “독자에게 중요한 한 문장을 제가 어떻게 감히 꼽을 수 있을까요…. 저는 그냥 소설을 썼을 뿐입니다! 아, 한 문장이 기억나긴 합니다! 아드리아가 수년간의 독일 생활을 접고 돌아왔을 때일 겁니다. 친구 베르나트가 아드리아의 책 상자들을 열고, 내용에 따라 책을 분류해 그의 집 구석구석에 정리해 넣는 중이었어요. 그 순간 책들을 정리하는 것이, 세상을 정리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화적 의미의) 천지창조가 등장하고, 신에 의해 창조된 세상의 정신이 이야기되며, 물, 산, 동물, 인간의 창조가 나오는 창세기의 말을 인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곧 신은 7일 만에 세상을 만들고 7일째 휴식을 취하였고, 사람들과 동물들에게 세상 속에서 번창하며 그 수를 늘려 나가라고 했죠…. 그래서 저는 창조주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저 또한 소설이라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창세기의 말을 빌려와 조금 바꾸어, 다음과 같이 썼죠. “주님은 책들에게 말했다. 자라고 또 자라 집의 구석구석으로 번져 나가라.”” - 작가 이력을 보면 20년간 중등 교사로 일하며 문학 작품을 쓰다가 1974년 작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했다고 나옵니다. 교사로 활동하다가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오랫동안 두 일을 동시에 했어요. 일주일 내내 교사로 일했고, 잠시 짬이 나는 오후가 있으면 글을 썼지요.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면, 또 몇 시간 정도 글을 썼어요. 제 아내도 교사이고, 고맙게도 아이들을 돌보는 데 더 많은 힘을 쏟았어요. 이제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고, 제 아내는 아들뿐만 아니라 손자, 손녀들까지 돌보게 되었어요. 정말 쉼 없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죠. 시간이 좀 지나고, 저는 텔레비전 시리즈의 각본을 쓰게 되었어요. <대영주>라는 소설을 쓴 이후에는 <환관의 그림자>, <파마노의 목소리> 그리고 <나는 고백한다>를 썼고, 다른 이야기들과 소소한 글들을 영광스럽게도 한국의 독자들에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방에서 써 내려갔습니다. 제 삶의 대부분이 이 방에서 이루어진 지도 꽤 되는군요. <나는 고백한다>를 쓰느라 8년, <파마노의 목소리>(괜찮다면 추천드리고 싶군요)를 쓰느라 7년을 이 방에서 보냈어요. 제 문학 작품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저의 출판 목록이 잘 소개되어 있는 홈페이지가 있습니다: www.jaumecabre.cat 제 아들을 위해 집필한 책들과(소설 두 편) 저의 손녀, 손자 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쓴 세 가지의 이야기에 대해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이 홈페이지에는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 한국에 작가님의 작품이 처음 번역 출간됐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될 한국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굉장히 설렐 따름입니다. 기자님 질문 하나하나에 기쁜 마음으로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독자들과 만나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한국의 독자들이 이 소설을 흥미롭게 읽고, 한국의 편집자분들이 저의 또 다른 소설의 출간을 결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더없이 영광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독자분들께는, 어쩌면 카탈루냐(제 출신 국가이지요)와 카탈루냐어(제 모국어입니다)를 처음 접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 한국 작가들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인상 깊게 읽은 문학 작품이나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안타깝게도, 한국 작품을 많이 접해 보지 못했습니다만, 소설집 <고발>이라는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작가는 ‘반디’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엑토르 보필과 유혜영 씨에 의해 카탈루냐어로 번역된 것이었어요. 신기하게도 북한에서 남한으로 책이 전달되어 나왔더군요. 이 두 분이 카탈루냐어로 번역한 것은 저에게 대단한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한국 문학에 대한 경험의 전부이군요…. 한국어로 제 작품을 번역해 주신 권가람 씨가 번역 과정에서 생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먼 걸음을 해 주셨을 때, 정말 완벽한 카탈루냐어 실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사전에 등장하지 않는 표현, 단어, 관용어 들의 번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신을 교환했던 매 순간마다 수준 높은 카탈루냐어를 확인할 수 있었고요.(다른 외국어들 실력은 물론이고요.) 반면 제가 책을 옮기는 일이 생긴다면… 아주 엉망진창 번역가가 될 겁니다!” - 앞으로 어떤 소재나 주제를 담은 작품을 쓰고 싶은가요? “최근에 단편 소설 하나를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무엇에 대해 쓸지 당장 떠오르는 생각은 없어요. 한국 독자들께서 알고 계실 <나는 고백한다> 이후, <반영이 드리울 때>라는 단편 소설 묶음 하나가 출간되었고, 문학에 대한 단상을 모은 <세 편의 수필> 또한 나왔습니다. 샘 아브람스 씨가 서문을 써 주었고요. 그리고 요즘에도 여전히 작품을 쓰고 있습니다. 글을 쓰지 않는 삶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표지를 입히고 제목을 달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단계이고요. 지금은 제 친구인 한국 독자들에게 이 글을 쓰고 있지요! 당신의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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