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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숲속 일가족이 꾸린 '독립 왕국'

최재봉 입력 2021. 01. 15. 05:06 수정 2021. 01. 1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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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부커상(당시 이름은 '맨부커상')의 2017년 수상작은 한국에도 번역 소개된 미국 작가 조지 손더스의 소설 <바르도의 링컨> 이었다.

폴 오스터, 앨리 스미스, 모신 하미드 같은 저명한 작가들이 최종 후보 6인에 올랐는데, 피오나 모즐리라는 낯선 이름이 그들 틈에 끼어 있었다.

그렇게 '깜짝 스타'가 된 피오나 모즐리의 등단작 <엘멧> 이 번역 출간되었다.

'엘멧'은 과거 잉글랜드 북부에 존재했던 독립 켈트 왕국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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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멧>의 작가 피오나 모즐리. ⓒ Heidi Stoner

엘멧피오나 모즐리 지음, 이진 옮김/문학동네·1만3500원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부커상(당시 이름은 ‘맨부커상’)의 2017년 수상작은 한국에도 번역 소개된 미국 작가 조지 손더스의 소설 <바르도의 링컨>이었다. 폴 오스터, 앨리 스미스, 모신 하미드 같은 저명한 작가들이 최종 후보 6인에 올랐는데, 피오나 모즐리라는 낯선 이름이 그들 틈에 끼어 있었다. 작가 나이 스물아홉이었고 후보작은 그의 첫 장편이었다. 비록 첫 장편 <작은 것들의 신>으로 1997년 부커상을 거머쥔 아룬다티 로이의 신화를 재현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문단 안팎에 존재감을 확고히 심는 데에는 성공한 셈이었다. 그렇게 ‘깜짝 스타’가 된 피오나 모즐리의 등단작 <엘멧>이 번역 출간되었다.

‘엘멧’은 과거 잉글랜드 북부에 존재했던 독립 켈트 왕국의 이름. 그 영토에 해당하는 숲속에 아버지와 딸, 아들로 이루어진 세 식구가 집을 짓고 바깥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살아간다. 거구에다 힘이 센 아버지 존은 맨주먹으로 내기 싸움을 해서 돈을 벌고,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는 대신 자유롭게 책을 읽고 자연 속에서 배운다. 각각 열다섯 살과 열네 살인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술을 마시고 담배도 피운다. 바깥 사회의 상식과 규범에 구애받지 않고 독자적인 가치와 질서를 좇는다는 점에서 이 일가는 일종의 독립 왕국이라 할 수 있다. 누나인 캐시가 또래 남자아이들을 완력으로 제압할 정도로 거칠고 힘이 센 반면, 남동생인 대니얼은 섬세한 성격에 요리와 장식 같은 집안일을 좋아한다는 점에서는 남매의 성역할이 바뀌어 있기도 하다.

외부의 시선이야 어떻든 간에 평화롭고 자족적인 나날을 이어 가던 이 일가의 삶에 위기가 찾아온다. 이들이 집을 지어 살고 있는 땅의 주인인 프라이스 씨의 간섭과 훼방이다.

“프라이스 씨는 이 나무들을 전혀 활용하지 않아. 돌보지도 않고. 가지를 쳐주지도 않지. 그자는 나무를 몰라. 여기 사는 새도 모르고 짐승도 모르지. 그런데도 이 땅이 그의 땅임을 밝히는 문서는 갖고 있어.”

아버지 존의 말은 아메리카 원주민 시애틀 추장의 연설을 떠오르게 한다. 근방의 땅과 집들을 소유한 프라이스의 횡포에 시달리던 주민들은 존을 앞세워 저항 행동에 나서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지만, 프라이스의 반격 역시 만만치가 않다. 양쪽의 갈등과 충돌은 점점 고양되어서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으며, 비밀에 싸여 있던 남매의 어머니와 프라이스의 관계도 그 과정에서 드러난다. 마지막 대폭발 장면을 지배하는 ‘여전사’ 캐시의 활약이 인상적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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