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CT로 찍어본 2000년전 왕망의 실패작 동전 '화천'..왜 전라도 해남에서?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2021. 1. 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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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 흑천리 마등 4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화천’. 중국 신왕조(기원후 8~24년) 연간인 기원후 14년부터 40년까지 짧게 주조됐다. 출토된 동전(왼쪽 사진)은 부식이 심해 ‘화천’동전인지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오른쪽 사진은 광주 복룡동 1호 토광묘 에서 출토된 ‘화천’이다.|김미도리·조연태·이양수의 해남 흑천리 마등 4호 토광묘 출토 화천의 보존처리와 고고학적 분석’, <박물관 보존과학> 24집, 국립중앙박물관, 2020에서

‘화천(貨泉)’은 문자 그대로 ‘재화가 샘솟는다’는 의미의 화폐였다. 왕망(기원전 45~기원후 23)이 세운 ‘신(新)’왕조에서 사용한 동전이라 ‘왕망전’이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이 화폐는 기원후 14∼40년 사이에 주조되었기 때문에 고고학적인 연대를 정하는 지표유물이기도 하다.

■실패한 왕망의 야심작

전한(기원전 202~기원후 8)의 황제 권력을 찬탈하고 신왕조(기원후 8~24)를 세운 왕망은 이상국가를 세우기 위해 개혁정책을 펼친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전한 말부터 신 대까지 총 4번에 걸쳐 복잡한 화폐 개혁을 단행한 것이 패착으로 작용했다. 즉 왕망은 기원후 7년(전한 거섭 2년)부터 기원후 10년(신 건국 2년)까지 3차례의 화폐개혁이 실패를 거듭하자 기원후 14년(천봉 원년) 4번째 화폐개혁에 나섰다. 그것이 화천과 화포(貨布) 등 두가지 화폐의 발행이었다. 화천은 지름 1촌(약 2.25㎝)의 둥근 모양에 네모난 구멍을 낸 동전이었다.

나노-CT로 들여다 본 흑천리 출토 ‘화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화천’을 의미하는 글자들이 파악됐다.|김미도리·조연태·이양수의 논문에서

무게는 5수(銖·3.2g) 정도였고, 표면에 ‘화천’이라는 두 글자를 새겨놓았다. 반면 화포는 전국시대 포전(布錢·농기구 모양의 청동화폐)을 모방했으며, 무게는 화천 1개의 5배인 25수(16g)였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왕망은 두 화폐의 가치를 화천 25개가 화포 1개에 해당되도록 정해놓았다. 화천 25대 화포 1이었다. 그런데 두 화폐의 무게는 어떤가. 화천 5개(5수·3.2g×5=16g)가 화포 1개(25수·16g)와 같았다. 그렇다면 화천 5개를 녹여 화포 1개를 만들어서 화천 25개와 바꾸면 어떤가. 화천 20개의 이득을 얻을 수 있지 않은가. 그랬으니 민간에서 몰래 화천을 녹여 화포로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왕망은 이들을 유배형 및 사형에 처하는 등 엄벌에 처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왕망의 화폐개혁은 사회에 엄청난 불안과 동요를 일으켜 신왕조의 붕괴를 이끌었다.

흑천리 마등 4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동전꾸러미는 워낙 부식이 심해서 육안으로는 도저히 식별할 수 없었다. 결국 나노-CT로 촬영했다. |김미도리·조연태·이양수의 논문에서

■저승길 노잣돈인가

그렇다면 비슷한 시기, 즉 기원전 1세기 무렵의 한반도는 어땠을까.

1928년 제주 산지항 축조공사 도중 화천 11점과 화포 1점 등이 확인된 이후 간간이 화천이 발견됐다. 주로 해안가인 김해 회현리, 해남 군곡리, 제주 금성리·종달리, 나주 랑동 등에서 1~2점씩 나왔다가 2016년 광주 복룡동 유적의 토광묘에서 49점의 화천이 꾸러미째 출토됐다.

그리고 지난해 3~5월 사이 발굴기관인 대한문화재연구원의 조사결과 전남 해남의 흑천리 마등 4호 토광묘에서 심하게 부식된 동전 13점이 꾸러미째 확인됐다. 3점씩 두 꾸러미와 7점 한 꾸러미로 뭉쳐있었다. 동전 1개에서만 ‘화천’이라는 명문이 보였다. 다른 동전들은 부식으로 인해 마모가 무척 심했다. 심한 경우엔 4분의 3정도가 떨어져나간 동전도 있었다. 때문에 전체적인 크기조차 확인이 어려웠다. 모든 동전이 화천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이에따라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는 최첨단 장비인 ‘나노-컴퓨터단층촬영(Nano-CT)’을 활용하여 육안으로는 확인이 어려웠던 동전의 정체를 분석했다. 보존과학부는 그 결과를 논문 ‘해남 흑천리 마등 4호 토광묘 출토 화천의 보존처리와 고고학적 분석’으로 정리해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발간한 <박물관 보존과학> 24집에 발표했다. 나노-CT가 어떤 장비인가. 양석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쉽게말하면 X선으로 물체를 찍을 때 0.0005㎜까지 구분할 수 있는 해상도를 갖고 있는 장비”라고 설명했다. 2~3㎜ 정도가 되어도 잘 구분이 되지 않는 일반 CT와는 해상도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분석에 참여한 이양수 국립청주박물관장은 “나노-CT 촬영결과 조사대상 동전 13개 중 12개에서 ‘화천’이나 ‘화천’으로 볼 수 있는 명문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즉 ‘화천(貨泉)’이나 ‘화(貨)’자 등이 보였고, 4분의 1만 남은 동전에서도 ‘천(泉)’자의 상형자 아래 부분을 찾아냈다. 김미도리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분석결과 13점 모두 ‘화천’ 꾸러미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화천’이 주조된 기원후 14년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시기에 조성된 무덤에 부장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화천’의 주조·사용된 기간이 기원후 14~40년까지 짧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화포와 화천 등 왕망전.왼쪽 화포는 제주 산지항 출토유물이다.|김미도리·조연태·이양수의 논문에서

그렇다면 왜 무덤에서 화천이 꾸러미째 발견되는 것일까. 발굴을 담당한 대한문화재연구원의 이영철 원장은 “화천 등이 출토되는 지역들은 예부터 중국과 통한 바닷길”이라며 “이번에 화천 꾸러미가 출토된 해남 옥천면 등지가 당대 무역의 거점이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화천’ 꾸러미가 출토된 해남 흑천리(13점)와 광주 복룡동 유적(49점) 등이 모두 토광묘라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이렇게 무덤에 돈을 부장하거나 염하는 사례는 중앙아시아의 소그드인처럼 상업과 교역이 발달한 지역 사람들의 무덤에서 볼 수 있다.

각지에서 출토된 ‘화천’을 보면 도끼자국 같은 찍힌 흔적(김해 회현리 패총)이 있거나 동전에 구멍이 난(제주 금성리) 사례가 보인다. 이는 항해의 안전을 위한 의례(회현리)를 벌였거나 동검과 같은 소지품을 매달아 장신구로 사용(금성리)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관련, 중국 군현과의 교역 때 출입증, 허가증 등의 용도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한서> ‘왕망전’에 보인다. 즉 “화포와 동전(화천) 등을 소지하지 않으면 관진을 출입할 수 없다”는 기록이다. 이영철 대한문화재연구원장은 “‘화천’의 용도는 다양했지만 가치의 척도로서 교환에 이용된 게 가장 중요한 기능이었을 것”이라며 “동전 꾸러미를 무덤에 둔 피장자의 신분이 높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전남 해남 흑천리 마등 4호 토광묘에서 동전꾸러미가 출토되는 모습이다. |대한문화재연구원 제공

■한반도에서 찍어낸 동전일까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논문에서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향후 분석을 통해 한반도 남부에서 동전을 주조하였을 가능성을 조사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제시한 대목이다.

이양수 관장에게 물었더니 “매우 조심스러워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면서 “그런데 당대, 즉 기원후 1세기 무렵에 해남 흑천리 마등 유적의 주인공을 위해 부장한 동전꾸러미를 현지에서 직접 주조했을 개연성을 제시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이양수 관장은 “다른 지역에서 출토된 ‘화천’ 등은 거의 대부분 원형훼손이 없는 상태로 출토되는데 비해 흑천리 출토 13점 만은 특히 부식이 심했다”고 밝혔다. 이 관장은 김해 양동리에서 출토되는 폭넓은 투겁창(끝을 뾰족하게 만든 창)과 방제경(중국 거울을 모방한 청동거울) 등 일본 야요이 시대(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 청동기들도 부식이 심했던 비슷한 점을 꼽는다. 중국 수입품과, 한반도 혹은 일본열도에서 만든 제품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전남 해남군 옥천면 흑천리 마등 4호분 유적의 전경. 기원후 1세기 무렵 중국과의 무역 거점이었을 가능성이 짙다.|대한문화재연구원 제공

이 관장은 이 대목에서 화천과 화포가 주조된 신왕조 시대에 민간에서 몰래 화천을 녹여 화포로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점을 상기한다. 만약 중국에서 민간이 몰래 만든 가짜 동전이 수입됐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화천이나 화포나, 동전의 성분(주석+구리)이 같을 수밖에 없기에 가짜 동전 역시 마찬가지 성질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한반도에서 자체적으로 주조한 ‘화천’이라면 중국제와 확연히 다를 것이라는 추정이다. 다만 이번에 확인된 동전꾸러미의 부식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금속의 고유성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성분분석이 어려웠다. 이양수 관장은 “흑천리 동전들의 상태가 다른 유적 출토품과 워낙 달라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 성분분석을 할 수 없었다”면서 “때문에 ‘한반도 제작’의 개연성만 열어놓고 추가 출토 및 분석자료를 기대해본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관련 이영철 원장은 “출토유물마다 토양이 다르고 퇴적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해남 흑천리 마등 4호 토광묘의 모습. 동전꾸러미를 부장할 만큼 무덤 주인공의 신분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대한문화재연구원 제공

유혜선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장은 “지난 2019년 황남대총 출토 조개껍데기가 앵무조개로 만든 금제잔이었다는 사실도 바로 나노-CT로 찾아낸 것”이라면서 “지금도 유리구슬과 같은 작은 유물의 분석에 이 나노-CT를 적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 부장의 언급처럼 국립중앙박물관은 1973~75년 사이 조사된 황남대총 남분 출토 금동제 조개유물을 나노-CT로 분석한 결과 앵무조개로 만들어진 금제와 금동제잔 1쌍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바 있다. 황남대총 남분에서는 60여점의 조개껍데기가 출토된바 있다. 그러나 금속이 붙은 이 유물들은 워낙 훼손이 심해 별다른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다가 40여 년 만에 나노-CT라는 첨단기법으로 분석했던 것이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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