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4년 된 월드콘·요맘때 팝니다"..황당한 아이스크림法

홍다영 기자 2021. 1. 15.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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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즐겨 찾는 월드콘·요맘때제조 4년된 아이스크림 버젓이 판매 중선진국 유통기한 6개월인데...한국엔 제재할 방법 없어 지난 13일 오후 2시 서울 강북의 한 슈퍼마켓.

식품위생법상 아이스크림은 유통기한 표시 의무 없이 제조일자만 표시하면 된다.

박희라 식약처 대변인실 연구관은 "(오래된 아이스크림이 있어도 사전에) 제재하는 방법은 딱히 없다"며 "유통기한은 식품의 변질·부패를 우려해 정하는 것인데, 냉동식품은 보관 온도를 준수하면 부패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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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즐겨 찾는 월드콘·요맘때
제조 4년된 아이스크림 버젓이 판매 중
선진국 유통기한 6개월인데...한국엔 제재할 방법 없어

지난 13일 오후 2시 서울 강북의 한 슈퍼마켓. 가게 앞에 진열한 냉동고를 열자 딱 봐도 오래된 것 같은 아이스크림이 눈에 띄었다. 2017년에 생산한 롯데제과(280360)의 월드콘, 빙그레(005180)의 요맘때가 판매되고 있었다. 이외에도 초코, 쿠키, 캐러멜, 수박맛 등 여러 제품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냉동고 구석엔 성에가 가득했다. 성에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아이스크림도 있었다. 이날 서울 슈퍼마켓 수십여 곳을 확인한 결과, 관리가 안 된 채 장기 보관된 아이스크림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13일 서울 강북의 한 슈퍼마켓에 2017년 8월 제조된 아이스크림이 유통되고 있다. /홍다영 기자

국내에서 판매하는 냉동식품 유통기한은 통상 1~2개월이다. 그런데도 4년 된 아이스크림이 버젓이 팔리는 이유는 뭘까. 원인은 선진국보다 느슨한 식품위생법에 있었다. 식품위생법상 아이스크림은 유통기한 표시 의무 없이 제조일자만 표시하면 된다. 제조 과정에서 멸균하고 영하 18도 이하에서 냉동 보관하면 문제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법의 기준대로라면 만든지 100년이 지난 아이스크림도 제조 일자만 표시하면 시중에 유통될 수 있는 셈이다.

아이스크림은 만들어진 후에도 유통 과정에서 변질되거나 유해균이 증식할 수 있다. 냉동고 문을 여러차례 여닫으면 내·외부 온도 차로 성에가 끼기도 하고, 아이스크림이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하게 된다. 이 때문에 냉동고에 보관하더라도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해야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영세한 동네 슈퍼는 오래된 아이스크림을 롯데·빙그레 등 대기업 제조사에 반품하기도 쉽지 않다. 법적 근거가 없어서다. 오래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식중독이 발생하면 뒤늦게 판매를 중단하고 제품을 회수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게 전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을(乙)인 동네 슈퍼가 갑(甲)인 제조사에 반품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상황에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3일 서울 강북의 한 슈퍼마켓에 구매한 2017년 8월 제조된 아이스크림. /홍다영 기자

2016년 김해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빙과류도 유통기한 표시 대상에 추가하는 내용의 식품위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부는 아이스크림 유통에 대한 감독에 손을 놓고 있다. 주무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현행법상 제조일자를 표시했다면 아이스크림이 아무리 오래 보관돼 있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박희라 식약처 대변인실 연구관은 "(오래된 아이스크림이 있어도 사전에) 제재하는 방법은 딱히 없다"며 "유통기한은 식품의 변질·부패를 우려해 정하는 것인데, 냉동식품은 보관 온도를 준수하면 부패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만 "보관 온도를 점검하며 제조 일자를 허위로 표시하는 등 문제가 발생할 경우 처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3일 서울의 한 슈퍼마켓에 아이스크림이 성에에 파묻혀 방치되고 있다. /홍다영 기자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지나치게 소극적인 행정이라고 지적한다. 선진국은 아이스크림에 대해 6개월~2년의 유통기한을 정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유통기한 표시제를 시행한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은 적정 온도를 전제로 상미기간(賞味期間·제품의 품질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기간)을 표시하고 있다. 아이스크림에 대해 유통기한 규정이 없다 보니, 국내 제조사들만 편익을 누리고 있다. 오래된 재고 아이스크림을 회수 처리하지 않고 계속 유통하면서 재고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편의점에서 원플러스원(1+1) 아이스크림을 샀는데 성에가 많고 맛이 이상했다는 피해 사례 등이 접수된다"며 "냉동식품이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없어도 된다는 것은 논거가 부족하다. 아이스크림에도 유통기한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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