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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는 안 파는 중국 책방, 그 이유를 물어보니

김대오 입력 2021. 01. 1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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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박현숙 지음 '사람과 책을 잇는 여행'

[김대오 기자]

"고속철처럼 빠르게 달려가는 중국의 속도전식 발전 시대를 지나오면서 우리 마음은 너덜너덜해지고 구멍이 숭숭 나 버렸어요." -57쪽
 
비단 중국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편리와 풍요를 향한 질주 속에서 우리가 놓쳐버린 것들이 마음을 멍들게 한다. 치열한 경쟁과 돈을 향한 질주에서 넘어지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고장 난 마음을 치유하고 언제든 찾아가 탈진한 마음에 연료를 채울 수 있는 마음 주유소 같은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삶의 안식처이자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요양원 같은 서점' 말이다.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지식정보화 사회, 온라인으로 거의 모든 지식이 거래되면서 서점의 입지는 줄어들고 멸종동물처럼 언젠가 사라질 거라는 우울한 전망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여전히 서점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책의 집이자 유통의 정거장인 세상의 서점이 모두 망할까를 걱정한다. 그리고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서점을 힘겹게 운영해간다. 저자는 발품을 팔아 넓은 중국 22곳 서점을 취재하여 그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생생하고 맛깔나게 전한다.
  
▲ 사람과 책을 잇는 여행 ‘어느 경계인의 책방 답사로 중국 읽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중국보다 고장 났던 마음을 읽고 추스르는데 더 많은 도움을 받은 느낌이다.
ⓒ 유유출판사
 
희망을 잃었다고 반드시 절망하는 건 아니다
 
"누구나 저마다 '소쩍새 우는 사연' 한 가지씩은 품고 살아간다." 165쪽

"인생이 어느 순간 낯선 곳으로 불시착해도, 우리는 그곳을 중간 기착지 삼아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면 된다." 110쪽

책에 소개된 많은 서점 주인들은 인생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다. 현실 부적응으로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망명자들이다. 저마다 '소쩍새 우는 사연'을 품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보르헤스의 말처럼 희망을 잃었다고 반드시 절망하는 건 아니라는 걸 삶으로 증명한다. 그들은 윈난성 리장의 밍이수팡, 상하이 카이비카이스지, 장쑤성 쑤저우의 만수팡, 베이징 탄샹쿵젠 서점을 운영한다.

그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건 변방에서 서점을 운영하며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가치를 새로운 연대 속에서 흔들림 없이 추구해 가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중심에서 벌어지는 일보다 훨씬 아름답고 영롱한 빛으로 빛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국의 밀어붙이기식, 거칠고 속도 위주의 발전을 비판하고 획일화된 사상을 거부하고 다양한 사유 방식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모든 개개인이 양심에 따라 진실을 말하고 아주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힘없는 자들의 힘"이라는 것을 믿는다.

각자의 빛을 찾아가는 긴 여행
 
"알래스카로 날아가 그곳에서 자신만의 빛을 찾으며 살아간 호시노는 또 다른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언제나 각자의 빛을 찾아가는 긴 여행의 도중'이라고." 10쪽
 
호시노의 말처럼 삶은 저마다의 빛을 찾아가는 긴 여행이다. 가슴에 저마다의 돈키호테를 품고 그 길에 인생을 바친다. 저자는 중국이라는 길 위를 오래 걷고 있다. 무더운 7월 산티아고길 걷는 것만 미친 게 아니다. '중국살이 20년'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진 않아 보인다.

중국을 배불리 먹은 저자의 중국 담론은 곰삭은 깊은 맛과 갓 담은 듯한 날것 그대로의 알싸한 맛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상하이 당국이 지식인들이 모여 민감한 정치문제 토론회를 여는 지펑수위안 서점을 못마땅하게 여겨 '강제 폐업'시키는 것이, 허가된 책은 팔아도, 허가되지 않은 '정신'은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목하 중국의 현실임을 고발한다.

동시에 미성숙하고 '포라(潑辣, 사납고 우악스러운)'한 속성 발전에 저항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와 몸짓이 지속적으로 중국 전역에서 은은한 불빛처럼 존재한다는 사실도, '텔레스크린과 사상경찰'이 득실대는 엄중한 현실에도 '즐거운 저항'을 이어가는 용기와 의식 있는 지식인들이 있음을 담담히 전한다.

책 슈퍼마켓 아닌, 사람과 사람을 잇는 서점
 
"서점이 단지 책만을 판다면 책 슈퍼마켓과 다를 바 없지요. 그런 서점은 오래가지 못해요. 서점은 사람과 사람 사이 정감이 교류하는 장소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해요." 210쪽
 
쑤저우에서 원쉐산팡을 운영하는 왕 할아버지는 서점을 눈썹에 비유한다. 쿤밍의 둥팡수뎬에는 베스트셀러와 자기계발서는 팔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책은 다른 서점에도 널려 있으니까.

눈썹처럼 도시의 얼굴을 아름답게 돋보이게 하는, 책 슈퍼마켓이 아닌,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저마다 색깔로 개성 넘치는 서점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박현숙의 <사람과 책을 잇는 여행>은 '어느 경계인의 책방 답사로 중국 읽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중국보다 고장 났던 마음을 읽고 추스르는 데 더 많은 도움을 받은 느낌이다. 저자의 폭넓은 독서와 여행에서 우러나는 인문학적 교양과 책방을 운영하는 중국지식인들의 삶에서 묻어나는 진솔한 철학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유유히 흐른다.

"세상에 평등 따윈 없다. 세상은 원래 불평등하다. 그러나 책 앞에서 모든 인간은 독자로서 평등하다." 그래서 보르헤스는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의 모습일 것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도서관이나 서점은 그곳에 드는 누구든 독자의 신분으로 평등하게 맞이할 것이기에. <사람과 책을 잇는 여행>이란 작은 책 앞에 독자의 신분, 그 평등의 기회를 누려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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