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100만년전.. 인문학이 탄생하고 '창의성 진화' 시작됐다

오남석 기자 2021. 1. 1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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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창의성의 기원│에드워드 윌슨 지음│이한음 옮김│사이언스북스

인문학·과학이 서로 융합할 때

제3의 ‘창의성 폭발’ 경험할 것

인류만의 형질 ‘창의성’ 발휘해

학문·예술·첨단기술문명 이뤄

과학과 인문학의 그 어떤 것도

‘진화의 관점’ 아니면 의미없어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아브데라에서 활동했던 철학자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역사와 삶을 주관하는 존재는 제우스나 헤라 등 당시 그리스인들이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신들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선언이었다.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이자 통섭(通攝·consilience), 바이오필리아(biophilia·생명 사랑) 등의 개념을 만들어 낸 에드워드 윌슨 미국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그러나 신간 ‘창의성의 기원’(원제 The origin of creativity)에서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선언이 필요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물이 인간의 척도다.” 그는 “생물학의 그 어떤 것도 진화의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유전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의 말도 “과학과 인문학의 그 어떤 것도 진화의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로 대담하게 확장돼야 한다고 했다.

두 가지 언명을 통해 윌슨이 주장하는 바는 분명하다. 인간을 중심에 둔 인문학만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 사회적 행동, 인류가 이뤄낸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며, 인문학은 반드시 과학과 손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진 그렇게 새롭지 않다. 윌슨이 대표작 중 하나인 ‘통섭’(1998년) 등을 통해 진작부터 주장해 온 바다. 앞서 학문 간 융합을 인류가 처한 생태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까지 확장한 윌슨은 ‘창의성의 기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창의성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발휘되는가. 이는 애초에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하면 더 확장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인문학과 과학의 통섭에서 찾는 것이다.

‘새롭고 적절한 일을 할 수 있는 특성 또는 능력’을 뜻하는 창의성은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이다. “창의성은 우리 종을 정의하는 독특한 형질”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인간만이 진정한 의미의 창의성을 발휘하며, 그 덕분에 인류는 첨단 기술 문명에까지 이르렀다. 저자는 여기서 예술과 인문학의 관점에 치우친 기존 창의성 관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과학, 특히 진화 생물학적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아 “창의성의 키메라(chimera·한 개체 내에 서로 다른 유전적 성질을 가지는 동종 조직이 함께 존재하는 현상)적 특성에 대한 이해가 결여돼 있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의 창의성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가 “인과관계 설명에 근원이 빠져 있고, 제한된 감각 경험이라는 공기 방울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역사 시대의 ‘문화적 진화’ 이전에 있었던 선사 시대의 ‘유전적 진화’를 외면할 뿐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의 생물학적 한계 밖의 세계에도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이런 단점들 때문에 인문학은 불필요하리만큼 인간 중심주의적이고, 따라서 인간 조건의 궁극 원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인간의 창의성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인류가 멸종을 피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십만 년 동안 진행된 ‘자연 선택’의 신비, 인간의 제한된 시·청각을 넘어서는 생물들의 다양하고 뛰어난 감각 등 과학이 밝혀낸 성과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문학이 지나치게 위축돼 있다”면서 인문학이 고대 그리스 미케네의 구전 서사, 초기 수메르의 점토판 등 수천 년 전 탄생한 게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인 100만 년 전쯤 탄생했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인문학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인문학의 대상을 인간의 맨 감각 세계 너머로 확장하고, 유전자·문화 공진화(共進化)에 대한 자연과학자·인문학자의 공동 연구를 확대하며, 인간 중심주의를 경계할 것. 저자는 고생물학과 인류학, 심리학, 진화 생물학, 신경 생물학 등을 인문학의 우군이 될 ‘빅 파이브(big 5)’라고 지목한다. 이들이야말로 “자연 선택이 구석구석까지 프로그래밍해 온” 인간의 생물학적 본질을 밝혀주고, 인문학의 토대인 인간 본성과 조건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인문학과 과학이 별개가 아니라 서로 침투하는 것임을 받아들일 경우 인류가 제3의 ‘창의성 폭발’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기원전 5∼4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일어난 첫 번째 계몽, 종교전쟁 이후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에 이르는 두 번째 계몽에 이은 세 번째 계몽 운동이 가능할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양쪽이 만나 공통의 탐구를 할 때 마침내 철학의 위대한 의문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제 전보다 더 솔직하게, 훨씬 더 확신을 갖고 역사의 위대한 질문들을 다시금 할 때다.”

인문학계에서 윌슨은 논쟁적인 저자다. 그를 세상에 알린 ‘사회생물학’(1975년)이 나왔을 때 인문학계는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비판을, 이후 ‘통섭’에 대해서는 ‘과학 제국주의’라는 비판을 쏟아냈었다. 이를 의식한 듯, 윌슨은 ‘창의성의 기원’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인문학의 가치와 인문학 부흥 필요성을 강조한다. 인문학을 “도덕 판단의 최고 원천”이자 “인간다움의 총체”라고 말하는가 하면 “과학은 실증적인 것과 가능한 것을 모두 탐구할 보증서를 지니지만, 인문학은 가능한 것뿐 아니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탐구할 권능을 지닌다”고도 말한다. 인류가 직면한 도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인문학과 과학 사이의 평행선을 달리는 듯한 논쟁을 넘어서야 한다는 노학자의 조급한 마음이 묻어나는 듯하다. 하지만 숨이 찰 정도로 빠른 기술혁명의 속도를 보면 이런 논쟁은 이미 부질없어진 게 아닌가 싶다.

인간의 통제권을 넘어선 인공지능(AI), 눈앞에 다가온 포스트 휴먼(진화 인류) 시대, 인류 절멸을 걱정하게 하는 생태계 위기 등 시대적 환경으로 볼 때 더 이상 과학과 동떨어진 인문학을 상상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272쪽, 1만95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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