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전 법무부장관, 왜 문제 많은 긴급출국금지 승인했나

이희경 입력 2021. 1. 15. 13:02 수정 2021. 1. 1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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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기 전 장관, 긴급출국금지 문제제기 없이 승인
박 전 장관, 수사기관장에게 자료 제출 요구 안 해
당시 긴급출금요청서, '수사기관장' 결재 없어 문제
박 전 장관, '출금' 하루 전 국회서 "중간보고 안 받아"
법조계 "승인 단계서 소명자료 요구해 제출받았어야"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김학의 불법 긴급출국금지 의혹’ 사건 수사와 관련해 긴급출국금지 과정 뿐 아니라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의 사후승인 과정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박 전 장관이 당시 사건에 대해 제대로 몰랐던 상황에서 요건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긴급출국금지 요청서를 별다른 이의 제기 없이 승인해줬기 때문이다. 요청서를 작성한 이규원 검사가 독단적인 결정으로 이행할 가능성이 상식적으로 낮은 만큼 박 전 장관 등 윗선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15일 국민권익위에 제출된 공익신고서에 따르면 박 전 장관은 이규원 검사가 2019년 3월23일 오전 3시8분에 제출한 긴급출국금지 요청서를 별다른 이의 제기 없이 오전 9시54분에 승인했다. 이에 따라 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기간은 3월23일부터 4월21일까지 적용됐다.

그런데 이 검사가 제출한 요청서는 관련 법령이 규정한 요건에 맞지 않는 문서였다. 이 검사는 3월23일 오전 0시8분 출입국본부에 긴급출국금지를 요청해 김 전 차관의 출국을 막았다. 이 때 직원에 보여준 요청서에는 무혐의 처리된 서울중앙지검 사건번호(2013년 형제65889)가 기재돼 있었고, 요청기관으로는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서울동부지검 직무대리 검사 이규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후 3시간 뒤 행정 처리를 위해 이 검사가 법무부에 제출한 요청서는 서울중앙지검 사건번호 대신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서울동부지검 내사번호(2019년 내사1호) 부분만 변경됐다. 출입국관리법상 긴급출국금지 요청서는 수사기관의 장이 제출해야 하고 피의자를 대상으로 해야 하지만 문제의 요청서에는 이 검사 명의만 적혀 있고 긴급출국금지 근거인 사건도 실체가 없었던 셈이다.

문제는 법무부장관은 직무상 이 요청서가 적법한지 심사해야 하는데 박 전 장관이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요청서를 승인했다는 것이다. 출입국관리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이 법무부에 접수된 긴급출국금지 요청서의 승인 여부를 심사해서 결정해야 한다. 아울러 장관은 긴급출국금지를 심사, 결정할 때 필요하면 승인을 요청한 수사기관의 장에게 의견을 묻거나 관련 자료를 제출할 수 있도록 요청할 수 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연합뉴스
이 법령에 따르면 박 전 장관은 긴급출국금지 요청서에 필수 요건인 수사기관의 장 직인이 없는 점 등을 문제 삼아 동부지검에 의견을 묻거나 자료 제출을 요청해야 한다. 아울러 긴급출국금지 요청서에 첨부됐어야 할 검사의 검토의견서 등이 누락된 점도 지적해야 했다. 하지만 박 전 장관은 이런 흠결에도 요청서를 승인했다.

당시 박 전 장관은 이 검사가 파견 소속돼 있는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으로부터 어떠한 중간보고도 받지 않은 상황이었다. 김 전 차관 출국금지 하루 전인 3월22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 출석한 박 전 장관은 당시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상조사단으로부터 중간보고를 받지 않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형, 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라는 단서가 달 정도로 긴급출국금지 요건은 엄격하게 규정돼 있다.

수사상황을 잘 몰랐고 긴급출국금지가 예외적인 규정인 점을 감안하면 박 전 장관이 보다 엄격하게 긴급출국금지 요청서를 봤어야 했지만 이 책임을 도외시한 셈이다. 이에 따라 이 사건의 공익제보자는 공익신고서를 통해 박 전 장관이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박 전 장관이 요청서가 오기 전부터 김 전 차관의 출국을 막을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공익신고서에 따르면 출입국관리사무소 한 직원은 검찰 조사에서 “김학의의 출국 시도 전에 법무부장관, 차관, 본부장 선에서 그런(출국금지) 논의를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선임인) A과장으로부터 수사기관의 요청 없이 법무부장관이 직권으로 출국금지를 한 사례가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A과장이 제게 이 같은 질문을 했다면 당연히 장관님 등 윗선에서 A과장에게 같은 내용을 물어 보았을 것이라고 그렇게 추측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자유연대와 공익지킴이센터 등 보수성향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과 이용구 법무부 차관 등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김 전 차관이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지기 5일 전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 조직의 명운을 걸라”며 김 전 차관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공개 지시하기도 했다.

자유연대 등 8개 단체는 14일 박 전 장관과 함께 이용구 법무부 차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태훈 법무부 감찰과장, 이종근 대검 형사부장, 이규원 검사,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처음 긴급출국금지는 그야말로 법무부 해명대로 세세하게 살펴볼 수 없으니까 일단 처리됐다고 하더라도 승인 단계에서는 내사번호로 왜 바꿨는지 처음 기재된 사건번호와 무슨 관계인지 등 소명을 당연히 받았어야 했다”며 “경찰의 긴급체포도 검사가 승인할 때는 사후적으로 법률 요건을 철저하게 따져보는 것과 비슷한 구조”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대통령이 한 마디 했는데 출국시켰다면 징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사상 물먹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그런) 지시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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