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미세공정 주도권 뺏긴 인텔, 왜 칩 생산 포기 못할까

이상훈 기자 shlee@sedaily.com 2021. 1. 1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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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재미있는 반도체 이야기]
[서울경제]

독자 팹 없으면 결국 제조에 설계 맞춰야

사업 마진 줄고 칩 성능개발 여력도 감소

반도체 호황에 삼성·TSMC 주문량 꽉 차

인텔이 칩 생산 맡기려 해도 여의치 않아

50%만 아웃소싱 해도 年 40억달러 절감

인텔에 활로···"결국 외주화 할 것" 관측

보유한 현금만 'AMD+엔비디아'의 3배

삼성 등과 공정기술 격차도 크지 않아

메모리 철수 때처럼 새 승부수 띄울수도

인텔은 그 자체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역사다. 지난 1968년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가 설립한 인텔은 1980년대 개인 컴퓨터가 선풍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이래 반도체 칩 제조 분야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1992년부터 2016년까지 세계 최대의 반도체 기업이 바로 인텔이었다.

그랬던 인텔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주력인 중앙처리장치(CPU)에서는 미세공정 전환이 더디면서 AMD에 완전히 주도권을 내줬다. AMD는 올해 5나노 CPU를 내놓는데 이제야 일부 제품을 10나노로 업데이트했을 뿐이다. 여기에 애플은 탈 인텔을 선언하고 자신의 노트북과 PC에 자신만의 CPU를 탑재하기로 했고 ‘윈텔(윈도우의 마이크로소프트+CPU의 인텔) 동맹’의 운영체제(OS)를 담당했던 마이크로소프트마저 서버 CPU 개발에 나섰다. 기업들의 자체 CPU 개발 시도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인텔이 뿌리내린 X86 생태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 시대 프로세서 경쟁은 엔비디아에 밀렸다. 규제 당국의 심사 절차가 남아있지만 엔비디아는 ARM, AMD는 자일링스를 먹었다. 반면 인텔은 5세대(5G) 모뎀칩 사업부를 애플에 넘긴 데 이어 낸드 사업부도 SK하이닉스에 팔아 체면을 구겼다.

급기야 인텔 지분을 10억 달러 보유하고 있다는 한 행동주의 펀드는 인텔에 자체 팹을 해체하는 등의 전략적 대안을 모색하라는 서한까지 보냈다. 행동주의 펀드의 지적이 없더라도 인텔은 최근 제조 경쟁에서 완전히 주도권을 잃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속사정

이런 질문을 해보자. 왜 인텔은 팹리스 전환을 주저하는 걸까. 최근 애플·마이크로스프트·퀄컴 등의 PC용 CPU 개발 붐과 같은 X86 계열의 AMD 프로세서 점유율 급상승 등은 모두 인텔 CPU의 제조 능력이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결과물이다. 현재 시장 상황만 놓고 보면 TSMC·삼성전자 등 외부 파운드리를 활용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인텔의 입장은 어정쩡하다. ‘외부 파운드리를 전략적 파트너로 참여는 시키겠지만, 자체적으로 7나노, 5나노 공정 개발도 계속할 것’이라는 게 공식 입장이다. 달리 보면 자체 팹을 보유하는 게 큰 메리트가 있기 때문에 인텔도 팹리스 전환을 주저하는 것이다.

그럼 자체 팹을 보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일단 자신만의 팹이 없다면 자신의 설계를 결국 제조를 담당할 파운드리에 맞춰야 한다. 제조 기술에 설계를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인텔이 설계할 때부터 제조 파트인 파운드리를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설계 유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내부에서 칩 설계와 제조를 같이 할 때와 같은 즉각적인 의사 소통도 불가능해진다. 제조와 설계를 모두 할 경우 반대로 제조기술을 설계에 맞추게 된다. 설계 파트가 주도권을 갖는다는 뜻으로 이는 칩의 성능 개선에 최적의 환경 조건을 구축했다는 의미다. 제조를 내놓는 순간 사업의 마진도 줄고 칩의 성능도 떨어진다. 주도권이 파운드리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전제는 제조가 수율 관리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가정 하에서 얘기다.

칩 공급 부족 사태와 같은 비상사태가 빚어져도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도 칩 직접 생산의 이점이다. AMD, 엔비디아처럼 TSMC, 삼성의 제조 라인에 철저히 종속돼 있으면 손쓸 방도조차 없다.

더구나 인텔의 칩 생산량은 TSMC 생산량의 두 배가 넘는다. 인텔의 별명이 괜히 칩질라가 아니다. 특히 TSMC는 인텔이 아직 완성하지 못한 7나노, 5나노 공정의 생산라인이 주문물량으로 꽉 차있기도 하다. 삼성도 워낙 파운드리 업황이 호황이라 생산캐파에 여유가 거의 없다. 인텔이 외부 파운드리에 칩을 맡기려고 해도 여의치 않다는 뜻이다.

최근 일부 외신에서는 인텔이 외부 파운드리에 직접 칩을 맡기는 게 아니라 생산시설은 자신의 팹을 활용하되 기술만 라이선스 형태로 받아서 칩을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과거 IBM이 삼성과 글로벌파운드리에 공정 기술을 로열티를 받고 넘긴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같은 파운드리 사업을 영위하는 TSMC나 삼성이 라이선스 형태로 인텔에 제조공정 기술을 넘겨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설이 흘러나오는 것은 그만큼 인텔의 입장이 절박하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본다.

■썩어도 준치···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시가총액에서 인텔을 제치고 미국 최대 반도체 기업으로 올라선 엔비디아를 보자.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특화된 기업으로, 늘 외주 제조에 의존했다. AMD도 10년 전 공장을 분사했다. 완전한 팹리스로 전환한 것이다. 사실 제조업과의 결별이 주는 장점은 많다. 반도체 기업들은 공장 건설과 가동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 수요가 부진할 때 자체 공장의 가동률이 낮아지는 것을 걱정할 필요도 사라진다. 이미 반도체 생산에 글로벌 생태계가 형성돼 있기에 이를 잘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인텔이 결국 칩 외주화에 나설 것으로 본다. 이를 더 미뤄서는 경쟁자의 부상이 위험 수위까지 치고 올라올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UBS는 보고서를 통해 만약 인텔이 칩의 50%만 아웃소싱만 해도 연간 최대 40억 달러의 자본 지출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설비 투자에 돈을 아껴 다른 유망 기업에 대한 M&A 등에 나설 수 있다. 이는 인텔이 새 활로를 만드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일본의 노무라도 결국 인텔이 칩 외주화에 나설 것이며, 이는 삼성에게도 큰 기회가 될 것이란 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지금 경쟁 구도상 인텔의 결단이 임박했다는 시장의 컨센서스가 형성돼 가고 있는 셈이다. 극단적으로는 외주를 주면서도 공정 개발을 계속 하는 이원화 전략으로 가더라도 칩의 외주화는 불가피하다고 대부분의 전문가는 보고 있다.

지금 인텔이 주춤하고는 있지만 인텔은 그 자체로 '파워풀한' 공룡이다. 외형만 봐도 경쟁사인 AMD, 엔비디아와 비할 바가 아니다. UBS에 따르면 인텔의 보유현금은 AMD와 엔비디아를 합친 것보다 대략 세 배 가량 된다고 한다. 공정 기술에서는 TSMC, 삼성 등에 밀리고 있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고 보유 현금도 충분해 이제 긴 싸움이 시작되고 있다는 게 객관적 평가일 것이다. 인텔로서는 전략 수정을 통해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다.

■반도체 제국의 역습은 어떤 모습일까

인텔은 그간 미국 반도체 기술 선도력을 입증하는 존재였다. 시장의 접근 방식도 달랐다. 미국 기업들은 제품 설계만 맡고 생산은 외주를 준다. 가장 잘하는 창조적인 임무에 자원을 집중하는 게 더 낫다는 논리다. 디자인과 설계에만 집중하는 애플을 떠올리면 쉽다. 물건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막대한 리스크를 지지 말자는 것이다. 하지만 인텔은 반도체 설계와 제조를 분리하지 않았다.

사실 지난해 칩 외주화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인텔의 전략 변화는 지난 1985년 메모리 시장에서 철수한 인텔을 연상시킨다. 당시 인텔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메모리 분야에 머물러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으로 메모리칩은 계속 저렴해졌다. 인텔은 일본 기업을 상대하기 버거웠다. 일본 기업들은 최첨단 공장 건설에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었다.

결국 인텔은 메모리 시장을 버렸다. 당시에도 미국이 기술적 강점을 잃고 있다며 시장의 우려가 컸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그 시절을 복기해보면 인텔은 메모리를 버렸기에 더 번영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이후 인텔은 고유의 장점인 CPU 설계에 가용자원을 집중했다. 이는 고수익으로 돌아왔다. 과연 인텔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지금은 제조를 조금씩 버리기 시작하는 것이 경쟁력 상실로 평가받고 있지만 먼훗날 인텔에 대한 평가는 인텔이 하기에 따라 사뭇 달라질 여지도 있다. 21일 인텔의 실적 발표가 기대되는 이유다.

/이상훈 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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