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고들빼기, 뮤지엄비틀 그리고 천둥의 화석

한겨레 입력 2021. 1. 15. 19:36 수정 2021. 3. 1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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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주일우의 뒹굴뒹굴 만화
(4) 나는 신기한 박물관에 출근한다

미국사를 전공한 아내의 논문을 핑계로 신혼여행지를 뉴욕으로 잡았다. 대학도서관에서 필요한 자료를 찾겠다는 생각이긴 했다. 하지만, 간 곳이 뉴욕이고, 갓 결혼한 아내와 둘이었으니 어딘들 좋지 않았을까? 그 후로는 한 번도 가본 적도 없건만 화면에 뉴욕만 나오면 짐짓 아는 체를 한다. 뉴욕과 관련된 드라마나 영화가 나오면 고향을 본 듯 반갑다.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뿐만 아니라 거리의 가게와 공원들. 오가던 공간들이 모두 기억 속에 또렷하다. 그중에서 난생처음 갔던 자연사박물관이 가장 좋았다. 돌·뼈·식물·곤충·동물 그리고 그들이 있던 장소와 시간, 수집한 사람들. 분명하게 느껴지는 그들의 노력과 땀이 나를 감동시켰다. 시간을 건너 만나는 생명들이 건네는 이야기의 매력은 빠지면 나오기 어렵다.

세계 어디를 가든, 시간에 쫓기더라도 자연사박물관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런던·파리·프랑크푸르트·샌프란시스코·상하이·베이징·도쿄·자카르타·모스크바 등에서 자연사박물관을 찾았다. 애꿎은 동행들이 끌려가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엔 탐탁지 않아 하다가도 일단 들어가고 나면, 그곳에 매혹된다. 그들이 담고 있는 생명과 자연의 이야기, 그 이야기들이 엮이면서 넓어지는 지식의 지평은 경이롭다. 모든 것을 모으고 익혀 세상을 지배하려고 했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야망의 장소이면서 실제로 세상을 지배했던 제국주의의 흔적이라는 그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두움에 빛을 비추는 앎이 모인 곳으로 변화하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전시만 보고 빠져나오면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은 <나는 신기한 박물관에 출근한다>에서 찾으면 된다. 이 만화의 무대인 카데나의 숲 박물관. 시청 공무원 우스이가 이 박물관으로 발령받고 첫 출근길에 차에 치여 죽은 영양을 들고 뛰는 과학자를 만나 돕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과학자는 박물관의 학예사 키요스. 냉장고에 죽은 영양을 보관하려고 했지만, 아뿔싸 고장이 났다. 썩힐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해부를 한다. 여섯번 출산한 16살짜리 영양. 위장은 비어 있었고 배가 고파 길에 나섰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눈이 많이 와서 먹이가 부족한 까닭. 모피를 벗기고 경석으로 무두질을 한다. 보관할 표본으로 만든다.

올빼미 다리에 인식표 붙이려고 닷새씩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 키요스만 괴짜인가? 해양생물 담당인 나루토는 아귀 입에 호스를 넣고 물을 넣어 삼킨 물고기들을 토해내도록 한다. 샛비늘치, 샛멸, 노랑촉수 같은 귀한 물고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식물담당으로 일을 하다 은퇴한 타치바나는 범죄 현장의 식물조각을 꽃피워 까치고들빼기라는 것을 밝힌다. 절지동물 담당인 사시하라는 표본을 좀먹는 뮤지엄비틀을 찾아 헤맨다. 광물담당 치치이와는 천둥의 화석을 보여준다. 사막에 천둥이 칠 때, 고온에 노출된 모래가 순식간에 녹았다 굳어 천둥의 경로를 따라 만들어진 천연 유리관. 수억년 전, 천둥의 흔적이 남아 만들어진 섬전암이다. 공룡담당 스즈키와 함께 지하철역을 돌면서 화석을 찾는 여행도 할 수 있다. 어떤 지하철 기둥에 쓴 대리석은 쥐라기 바다에 쌓여 만들어진 돌이고, 거기엔 1억5천만년 전 바닷속 세계가 펼쳐진다. 곳곳에 박혀 있는 암모나이트, 루디스트, 벨렘나이트, 졸른호펜. 지구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이건 뭐야?”, “대퇴골 다리뼈야”, “이 멋있는 건?”, “용골돌기 가슴뼈, 그리고 이게 상완골, 척골, 이것은 날개뼈.” 샘플링하고 남은 어패류와 해외 출장지에서 사 온 술과 음식으로 차린 박물관 파티에서 닭을 뜯으면서 이런 이야기나 하는 사람들. “가다랑어에 있는 줄무늬는 살아 있을 땐 없어.” “이 얼음은 남극에서 시굴하고 남은 얼음이야. 얼음이 녹으면서 나오는 방울은 그때 잡혔던 공기지.” 회를 안주 삼아 15억년 된 얼음을 넣은 위스키를 마시며 밤이 깊어간다. 이들이 열정적으로 모은 뼈와 가죽, 그리고 생명을 잃은 식물들의 박제가 단순한 호기심의 결과물은 아니다. 인간이 지금까지 땅과 생명에 대해서 알아낸 모든 것을 모아둔 보물창고이다. 결국은 눈앞에 닥친 위기에 대한 해답은 이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만화애호가

※격주에 한번,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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