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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더듬이 소년을 시인으로 길러낸 한마디 "너는 강물처럼 말한단다" [그림 책]

김지혜 기자 입력 2021. 01. 15.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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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조던 스콧 글·시드니 스미스 그림·김지은 옮김
책읽는곰 | 52쪽 | 1만3000원

“나는 아침마다 나를 둘러싼 낱말들의 소리를 들으며 깨어나요. 그리고 나는 그 어떤 것도 말할 수가 없어요.”

막 잠에서 깬 아침 창가, 아이는 말들의 기척을 듣는다. 창밖으로 아슴푸레 보이는 소나무와 까마귀, 달에서 태어난 낱말들은 스-, 끄-, 드 같은 소리로 아이의 몸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멈춰 선다. 낱말들의 소리는 아이의 목구멍 안쪽에 깊이 뿌리를 내린 채 밖으로 나설 줄을 모른다. 몸 안에 온갖 낱말이 아우성치는데 아이는 “돌멩이처럼 조용”하다. 말을 더듬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사방에서 말들의 기척을 느끼면서도 우물쭈물 침묵을 뱉어낼 수밖에 없는 것.

학교에 가면 맨 뒷자리에 앉는다. 선생님은 한 사람씩 돌아가며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에 대해 말해보자고 한다. 맨 뒤의 아이를 돌아보는 친구들 얼굴이 차가운 색감으로 뭉개진다. “아이들은 내가 저희들처럼 말하지 않는다는 것에만 귀를 기울여요.” 당혹과 좌절 속에서 아이는 끝내 입을 다문다. 학교로 마중을 나온 아빠와 함께 들른 강가에서도 참담함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발표 시간이 자꾸만 떠올라요. 그 많은 눈이 내 입술이 뒤틀리고 일그러지는 걸 지켜보았어요.”

아이의 절망과 별개로, 해질녘의 노란빛을 싣고 흐르는 강물은 도도하고 온전해 보이기만 한다. 아빠는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아이를 가만히 끌어안는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아이는 아빠의 말을 듣고 다시 강물을 본다. 온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물거품이 일고 소용돌이치고 굽이치다가 부딪쳐요.” 강물 역시 매 순간 부서지고 굽이치며, 온통 더듬거리는 모양으로 흐르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아이는 비로소 깨닫는다. 제 안에 흐르던 빠르고도 잔잔한, 거칠고도 부드러운 강물의 깊이를. 부족한 것도, 열등한 것도 아닌 그만의 고유한 일렁임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시인 조던 스콧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말더듬이 소년을 시인으로 길러낸 아버지의 한마디는 스콧의 유려한 글솜씨, 일러스트레이터 시드니 스미스의 서정적인 삽화를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강렬한 치유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남들과 다른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모든 이들에게 ‘당신은 강물과 같다’며 있는 힘껏 껴안아주는 듯한 책이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에서 올해의 그림책을 수상하며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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