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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월의쉼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질문

남상훈 입력 2021. 01. 15.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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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는 늘 마음이 분주하다.

올해 어떤 목표를 세우고 어떤 발전을 꾀할까 같은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고민 때문이 아니라, 그런 고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 때문이다.

왜 춥고 눈까지 내리는 날 굳이 밖에서 책을 읽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센트럴파크 남쪽에 오리가 있는 연못 아시죠? 그 연못이 얼면 오리들이 어디로 가는지 아세요? 아, 그것은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이 뉴욕의 택시운전사에게 한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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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는 늘 마음이 분주하다. 올해 어떤 목표를 세우고 어떤 발전을 꾀할까 같은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고민 때문이 아니라, 그런 고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 때문이다. 그럴 때면 가끔 오래전 1월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뉴욕에 있었다. 할 일은 없고 시간은 많았다. 그래서 매일같이 센트럴파크에 갔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조깅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자전거를 타는 것을 느긋하게 지켜보았다.

어느 날에는 오솔길에서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며 울먹이는 여자를 보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문득 코끝이 시큰했다. 왜 옆에서 누가 울면 따라 울고 싶어질까 생각하며 서둘러 그 자리를 떴다. 눈 내리던 날에는 벤치에 앉아 책 읽는 남자를 보았다. 그는 누가 보건 말건 개의치 않고 독서삼매에 빠져 있었다. 책 제목은 궁금하지 않았다. 왜 춥고 눈까지 내리는 날 굳이 밖에서 책을 읽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그리고 또 어느 날 나는 호수에 오리들이 떠다니는 것을 보았다. 평화롭고 고즈넉한 풍경인데 왠지 어디서 본 장면 같았다. 이윽고 문장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센트럴파크 남쪽에 오리가 있는 연못 아시죠? 그 연못이 얼면 오리들이 어디로 가는지 아세요? 아, 그것은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이 뉴욕의 택시운전사에게 한 질문이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거세졌다. 호밀밭에서 아이들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던 열여섯 살 소년, 한겨울 연못의 오리들을 걱정하던 홀든에게 냉소로 응했던 세상을 천천히 걸었다. 마침 눈앞에 노란 택시 한 대가 섰다. 미드타운으로 갑시다. 운전사의 눈매가 선량해 보였다. 그래서 용기 내어 물었다. 센트럴파크의 호수가 얼면 그곳 오리들이 어디로 가는지 아세요? 운전사는 재깍 대답했다. 얼지 않은 다른 호수로 가겠죠. 그런데 당신은 여행 왔나요? 어디 출신인가요? 그는 내게 미드타운의 관광명소들을 소상히 일러주었다.

그런데도 그날 내가 어디를 방문하고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기억한다, 새해 분위기로 들뜬 맨해튼 한복판에서 홀든을 떠올리며 걷던 그 밤을. 주식 투자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영어를 잘하려면? 좋은 대학에 가려면? 세상의 숱한 쓸모 있는 질문들 사이에 불쑥 던져진 그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질문이 준 이상한 여유를. 그 덕분에 춥지도 외롭지도 않았던 그 밤의 위안을.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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