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프리즘] '서울리뷰오브북스'를 응원하며

신준봉 2021. 1. 16.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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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맥 끊겼던 서평 전문지 창간
생산적인 지식 공론장 역할 해야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코로나로 우울하지만 그래도 새해니까 희망찬 이야기로 시작하고 싶다. 마침 출판계에는 그런 소식이 있다. 서평 전문지 ‘서울리뷰오브북스’의 탄생이다. 글 잘 쓰기로 소문난 교수님들이 파묻혀 있는 좋은 책 ‘인증’에 나섰다고 해서, ‘서평 어벤저스’의 탄생이라고 해서 기다려졌던 그 잡지 말이다.

지난해 말 신문사 편집국에 배달된 창간호는 합격점을 줄 만하다. 지적하고 싶은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공언했던 대로 서평 분량이 국내 어떤 서평 매체에서 접했던 것보다 긴 듯하고, 그러니까 한 권에 대한 세밀한 리뷰가 가능할 듯싶고, 깊이도 느껴진다.

700쪽 가까운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푸른역사)는 중앙SUNDAY 출판 면이 다루지 않았던 책이다. 하지만 소아치과 전문의 김준혁씨의 리뷰를 보고 읽고 싶어졌다. 서평 초반은 지루하지만 감염병을 둘러싼 교역 갈등의 역사라는 책의 핵심을 잘 짚은 것 같다. 불평등에 관한 국내·외 도서 다섯 권(한 권은 국내 미출간)을 묶어 ‘기회 평등’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허점 많고 이루기 어려운 목표인지를 지적한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송지우 교수의 기획 서평은 이런 잡지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범답안을 내놓았다고 느껴진다. 비이성적이라고 치부됐던 마음과 사회학의 접목을 시도해 온 서울대 사회학과 김홍중 교수, 산문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로 알려진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의 글도 있어 풍성하다.

주목받지 못했던 책을 발굴. 좋은 책을 쉬운 언어로 소개. 서평이 반론을 불러 참신한 사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궁극적으로 ‘뉴욕리뷰오브북스’나 ‘런던리뷰오브북스’ 같은 반열의 최고급 서평 잡지로 성장. 잡지 편집장인 서울대 생명과학부 홍성욱 교수의 이런 출사표가 마냥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는다.

국내 서평 전문지는 2000년대 들어 명맥이 끊겼다는 게 정설이다. 1987년 창간된 서평지 출판저널의 주인이 바뀌면서 성격이 변질된 이후부터다. 서평 전문지의 부재, 그에 따른 건강한 서평 문화의 실종은 문제가 심각하다. 책과사회연구소 백원근 대표는 책을 둘러싼 공론장 부재의 폐해를 이렇게 설명했다. 책이 담고 있는 주장에 대한 다양한 의견, 상반된 의견들이 의견들의 용광로인 서평 지면에서 토론이라는 숙의 과정을 거쳐 문제의 사안에 대한 진전된 시각에 도달할 때 우리 지식사회에 풍부한 영양소가 될 수 있다. 그런 서평지가 없다는 건 그만큼의 한국사회의 퇴보를 뜻한다는 것이다.

소설가 김연수씨는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판저널 기자였다. 당시 출판저널의 위상을 묻자 “내가 알던 책의 세계는 굉장히 협소한 세계였다. 출판저널 서평란을 통해 세상에 대한 견문이 크게 넓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서울리뷰오브북스의 창간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창간이 곧 잡지의 성공은 아니다. 당장 우리 독서 저변이 미국이나 영국에 비하면 너무 허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경희대 이택광 교수). 김연수씨는 독자들이 성격이 예전과 다르다고 했다. 과거에는 이해 못 하는 책도 붙잡고 읽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런던리뷰오브북스 등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토니 블레어 같은 1급 정치인도 글을 쓴다. 이를 따라가려면 김우창·백낙청 같은 최고 지식인들이 이 잡지에 글을 보태고, 지식 공론장에서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는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같은 책에 대한 열띤 지적 공방이 수시로 벌어져야 한다.

그런 점들을 생각하면 잡지의 안착·성공은 오히려 어려워 보인다. 싸움이 불리할 때 응원이 필요한 법. 잡지를 사보는 게 응원의 한 방법이다. 1만5000원이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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