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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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코리아] 듣지 않는 리더, 말하지 않는 참모

최경운 기자 입력 2021. 01. 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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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남의 말 안 듣고 靑 참모들은 直言하지 않아
尹 징계 무산 사과까지 한 건 귀와 입 닫은 대통령·참모 탓

“대통령이 속은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신임대사 신임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법무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가 법원에서 뒤집히자 여권 인사 몇몇이 사석에서 한 말이다. 윤 총장이 이른바 ‘판사 사찰 문건’ 작성을 지시하는 등 감옥에 가야 할 중죄(重罪)를 저질렀다고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과장 보고했고, 대통령이 이를 믿었다가 낭패를 본 것 같다는 얘기였다. 이런 말을 하는 여권 인사들도 윤 총장 징계를 문재인 대통령이 재가했을 때는, 대통령만 보고받는 ‘고급 정보’가 있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사이 문 대통령을 향한 외부의 무수한 경고 신호가 있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속았다니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궁금증을 풀 실마리는 여권 원로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연말에 만난 한 원로는 “대통령이 누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듣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문 대통령 당선 후 대통령을 따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청와대에서 부르질 않는다고 했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할 때 이런저런 쓴소리를 한 게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다른 원로는 2년 반 전쯤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시장(市場)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청와대가 “부동산은 끝났다”며 집값 때려잡기에 기세를 올릴 때였다. 그런데 얼마 후 청와대 정책실장이 라디오에 나와 “시장이 국가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이 원로는 “당신 얘기는 더 듣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통보를 전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대통령이 청와대 담장 밖 이야기 듣기를 꺼리면 참모들이라도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해야 한다. 새 대통령 비서실장은 취임 일성으로 “바깥 이야기를 부지런히 대통령께 전하겠다”고 했다. 청와대 참모들이 그동안 대통령에게 세상 이야기를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는 고백처럼 들렸다. 실제로 대통령의 참모를 해본 사람들은 “직언(直言)하는 참모가 드물다”고 말한다. 대통령이 듣기 싫어하는 경우가 많고, 괜히 쓴소리를 했다가 손해 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현 정부의 한 대통령 참모는 도덕성 논란에 휘말린 어느 고위 공직 후보자를 대통령 허락 없이 만나 자진 사퇴를 요청했다가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대통령에게 강한 질책을 받았다고 한다. 문제의 후보자는 결국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랬다 해도 이런 일을 겪은 참모는 이후 대통령에게 직언하기보다 침묵하는 쪽을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 일을 경험해본 드문 대통령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핵심 참모단이 대통령의 경솔한 의사 결정을 말리고자 대통령 집무실에 가장 자주 파견한 이가 ‘민정수석 문재인’이었다고 한다. 일종의 청와대 내 ‘지정 반론자’였던 셈이다. 그런 경험을 거쳐 대통령 자리에 오른 문 대통령이 연말 윤 총장 징계 무산 사태에 사과한 데 이어 신년 들어선 부동산 문제에 대해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또 사과했다. 열성 지지자들이 ‘문아일체’(文我一體)를 합창하며 대통령의 무오류를 외쳤지만 대통령의 권위 추락을 막지는 못했다. 듣지 않는 대통령과 할 말을 하지 않은 참모가 만나 합작한 결과물인 셈이다.

이러는 중에도 여전히 대통령 주변에서 “비판에 물러서면 안 된다”고 속삭이며 반대자를 적(敵)으로 돌리는 참모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해 들어 진보 진영 원로들이 대통령의 불통(不通)을 거듭 경고하고 있다. 어느 쪽 의견에 귀 기울일지는 대통령 몫이다. 선택의 결과를 두고 누구에게 속았다고 해선 안 된다. 대통령이 사과할 때, 속은 쪽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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