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0%, 한국은 1%..공매도가 '기울어진 운동장'인 이유

황의영 2021. 1. 16. 09: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공매도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수식어다. 사실상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만 접근할 수 있고, 개인 투자자에겐 '그림의 떡'이어서다. 실제 국내 주식시장에서 개인 공매도 비중은 고작 1.1%(2019년 기준) 정도다. 외국인(62.8%)과 기관(36.1%)의 전유물인 셈이다. 개인 투자자 사이에서 "공매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가까운 일본의 개인 공매도 비중(20%)과도 차이가 크다. 왜 그럴까.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 겸 한국판뉴딜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 11일 공매도 재개 방침을 밝혔다. 뉴스1



개인 주식 빌리기 어려워
자본시장법 등에 따르면 개인이나 기관, 외국인 모두 공매도를 할 수 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주가가 내려가면 싼값에 사서 갚아 차익을 얻는 투자 기법이다. 누구든 공매도로 하락장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단 뜻이다.

현실은 다르다. 국내에서 공매도하려면 반드시 주식을 빌려야 한다. 개인은 우선 이것부터 쉽지 않다. 구조적인 제약 때문이다. 주식을 빌려주는 건 크게 대차거래와 대주거래로 나뉜다. 대차거래는 외국인과 기관이 증권사·한국예탁결제원·한국증권금융으로부터 주식을 빌리는 것이다. 일단 개인은 여기에 끼지 못한다. 기관 등에 비해 신용도와 자금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개인투자자는 증권사 '대주거래'를 이용해야만 한다. 그런데 대차거래와 비교하면 조건이 불리하다. 대차거래는 대여 기간이 6개월~1년이지만, 대주거래는 30~90일 정도다. 개인은 공매도를 '짧게' 할 수밖에 없다. 수수료도 대주거래는 5% 이상으로, 대차거래(1~4%)보다 높다.


대주거래 조건도 불리
제약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주거래를 하는 증권사는 대부분 증권금융에서 주식을 빌려다가 개인 투자자에게 다시 빌려준다. 문제는 증권금융이 증권사에 빌려주는 주식이, 고객이 신용융자를 받을 때 담보로 잡은 주식 중 대주 재원 활용에 동의한 주식에 한정된다는 데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인이 빌릴 수 있는 주식 수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대주 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사도 NH투자증권 등 6곳뿐이다.

이 때문에 개인의 대주시장 규모는 2019년 기준 230억원에 불과하다. 대차시장(67조원)에 비하면 미미한 수치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견되는 이유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공매도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비판받는 데는 개인이 주식을 빌리기 어렵고, 대주거래 조건도 불리하다는 점이 그 핵심"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등의 '무차입 공매도'도 개인투자자의 원성을 산 이유로 꼽힌다. 주식을 빌리지 않고 파는 무차입 공매도는 국내에선 불법이다. 하지만 일부 기관과 외국인은 금융당국의 처벌이 약한 틈을 타 무차입 공매도를 암암리에 해왔다. 2018년 골드만삭스의 무차입 공매도 사태가 대표 사례다. 당시 주가 하락을 부추겨 개인투자자가 피해를 봤다는 지적이 많았다.

2020년 공매도 금지 현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대주 접근성 개선해야"…당국도 긍정적
전문가들은 기관과 외국인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기 위해서 개인이 공매도할 주식을 쉽게 빌릴 수 있도록 대주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원한 한 경제학 교수는 "현재는 대주 물량이 제한된 만큼 증권금융이 가진 주식을 증권사들에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쪽으로 제도가 손질돼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기존엔 각 증권사에 물량이 일정하게 쪼개져 들어간 탓에 A증권사에서 10주밖에 거래하진 못했다면, 앞으로는 기계적으로 분배할 것이 아니라 수요에 따라 주식을 빌릴 수 있게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유원석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증권사 참여를 유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공매도 제도 손질에 긍정적이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3월 16일 공매도 재개를 목표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개인의 공매도 활성화를 위한 대주 시스템을 개편도 포함돼 있다. 이를 위해 금융위는 증권금융과 함께 대주 서비스 취급 증권사와 투자자가 종목별 대주 가능 수량을 즉각 확인할 수 있는 실시간 통합거래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도 강화하고 있다. 무차입 공매도 등의 경우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부당이득의 최대 5배 벌금과 함께 과징금이 부과되도록 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