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린 위대한 선수 루니 시대.. 지도자 루니 시대 올까

이준목 2021. 1. 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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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비 카운티, 감도 계약 공식 발표.. 계약 기간은 2023년 6월까지

[이준목 기자]

또 한 명의 슈퍼스타 출신 감독이 탄생했다.

잉글랜드 축구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웨인 루니가 선수 은퇴와 동시에 감독 데뷔를 선언했다.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리그) 더비 카운티는 15일 루니와의 감독 계약을 공식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2023년 6월까지다.

루니는 지난 2020년 1월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DC유나이티드를 떠나 더비 카운티와 플레잉 코치 신분으로 계약하며 잉글랜드 축구계로 컴백했다. 더비에서는 총 35경기에서 선수로서 활약하며 피치 위에서 젊은 선수들을 이끌어왔다. 더비는 지난해 11월 감독이던 필립 코쿠와 상호계약을 해지하면서 루니에게 감독 대행 역할을 맡겼다. 감독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리암 로시니어 코치, 셰이 기븐 코치, 저스틴 워커 유스팀 감독 등 4인의 코칭스태프가 협업하는 공동 감독 체제에 가까웠다.

사령탑으로서는 아직 경험이 일천한 루니였기에 우려가 많았지만 9경기에서 3승 4무 2패로 선전했고 특히 5번의 무실점 경기를 이끄는 등 상당한 성과를 보였다. 루니는 이미 지난해 감독대행에 취임하면서 더비 구단이 정식 감독직을 제안하면 선수생활을 은퇴할 수 있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최근의 호성적에 고무된 더비 경영진이 이를 수락하면서 약 20년간에 걸친 위대한 선수 루니의 시대는 끝나고, 지도자로서 '루니 감독'의 시대가 열렸다.

루니 감독은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불과 16살 때인 2002년 에버튼에 입단해 프로 경력을 시작한 루니는 2004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며 선수 경력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루니는 맨유에서만 무려 13시즌을 활약하며 프리미어리그 우승 5회, 리그컵 3회, 챔피언스리그-유로파리그-FA컵-클럽월드컵 각 1회 등 우승할 수 있는 모든 대회를 석권하고 팀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루니가 맨유에서 활약하던 시절은 '한국축구의 전설' 박지성이 활동하던 시기와 겹친다.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호날두-루니-박지성의 이름을 합쳐 '호루박' 트리오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골결정력의 호날두, 여러 포지션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파워 넘치는 드리블과 패스로 창의성을 불어넣던 루니, 이타적인 플레이와 활동량으로 이들의 뒤에서 소리 없이 헌신하던 박지성의 조합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내며 맨유의 황금기를 견인했다.

'악동' 이미지로 이름 높던 루니였지만, 의외로 성향상 전혀 다른 '모범생'에 가까운 박지성에 대해서 여러 차례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루니는 2020년 한 언론에 기고한 칼럼에서 "요즘 어린 팬들은 호날두는 알아도 박지성은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박지성은 치명적인 선수였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은 나나 호날두였지만 박지성도 우리만큼이나 중요했다. 라커룸 안의 모든 선수들이 인정했던 부분은, 박지성 역시 충분히 뛰어난 선수임에도 팀을 위하여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라며 박지성의 가치를 극찬하기도 했다.

현역 시절 루니의 매력은 다재다능함으로 요약된다. 루니는 재능 면에서는 호날두-메시를 능가하는 '타고난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을만큼 기술, 파워, 체력, 전술 이해도 등을 두루 겸비한 만능 선수였다. 포지션 측면에서도 주포지션은 세컨드 스트라이커였지만, 최전방 원톱과 윙포워드는 물론이고 중앙 미드필더까지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멀티플레이어이기도 했다.

화려한 골잡이 이미지와 달리 맨유 시절의 루니는 엄밀히 말하면 에이스라기보다는 항상 '1.5인자'에 더 가까웠다. 당시 맨유에는 뤼드 판 니스텔루이, 호날두,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카를로스 테베스, 로빈 판 페르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등 항상 당대 최강의 공격수들이 파트너로 있었고, 다재다능한 루니는 팀 상황에 따라 여러 포지션을 옮겨 다녀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루니의 뛰어난 연계능력은 각기 다른 개성의 파트너들을 거치면서도 맨유가 안정적인 공격조합을 구축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루니가 박지성을 유독 높이 평가한 데는 이러한 본인의 플레이스타일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공격수치고는 이타적인 플레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총 253골로 맨유 역대 최다 득점자를 차지했다는 것이 루니의 가치를 더 빛나게 해준다. 또한 에버튼 시절 1,2기까지 합치면 프리미어리그에서만 208골을 넣으며 앨런 시어러에 이어 통산 득점 2위, 어시스트도 103개로 역대 3위에 올라 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A매치 120경기에서 53골을 터뜨리며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역대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루니는 한때 라이벌로 꼽히던 호날두나 메시와 같은 반열에까지 오르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루니는 메이저대회 득점왕이나 발롱도르같은 굵직한 개인 타이틀이 없고, 국가대표에서는 상대적으로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월드컵과 유럽선수권 대회 본선에 수차례 도전했으나 최고 성적은 8강을 넘지 못했다. 루니의 A매치 득점 기록도 주로 약팀들과 경기했던 예선에 집중되어 있고, 정작 중요한 본선이나 토너먼트 경기에서는 침묵하는 경우가 많았던 탓에 임팩트가 떨어졌다.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인한 문제아 기질도 선수생활 내내 평가를 깎아먹은 원인이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상대 선수의 급소를 밟는 비신사적인 플레이로 퇴장당하며 팀 패배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SNS에서 악플을 다는 팬에게 직접 만날 것을 제안했다가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희대의 어록을 이끌어낸 원인 제공자이기도 하다. 무절제한 사생활과 충동적인 성격 때문에 잉글랜드 대표팀과 맨유의 주장까지 역임했음에도 말년까지 적지 않은 사건사고에 휘말리며 체면을 구겼다.

또래의 호날두나 메시가 어느덧 노장이 된 나이에도 여전히 전성기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달리, 루니는 30대 초반에 불과했던 2010년대 중반부터 신체 능력의 저하와 함께 급격한 노쇠화 조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맨유와 에버턴에서 프리미어리그 경력을 마감한 루니는 미국으로 눈길을 돌려 DC 유나아티드에서 2시즌간 52경기 25골로 잠시 부활했지만, 잉글랜드로 다시 돌아온 더비 카운티에서는 세월의 흐름을 절감하며 더 이상 예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레전드라는 수식어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그야말로 10대 시절 세계축구의 판도를 뒤바꿀 신성으로까지 불렸던 유망주 시절의 기대치를 떠올리면 아쉬움이 남는 선수인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루니의 은퇴로 축구계는 위대한 레전드 선수 한 명을 떠나보낸 대신, 또 한 명의 스타 출신 감독을 새롭게 얻게 됐다. 올레 군나르 솔샤르(맨유), 프랭크 램파드(첼시), 스티븐 제라드(레인저스), 라이언 긱스(웨일스) 등 그가 현역 시절 경쟁하던 선수들이나 팀동료들이 어느덧 감독의 반열에 오른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고 마라도나나 로이 킨 처럼 선수시절의 화려한 명성에 비하면 감독으로서는 실패한 경우도 적지 않다. 현역 시절 탁월한 재능만큼이나 화려한 사건사고의 아이콘으로 악명 높았던 루니가 선수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지도 흥미를 모으는 대목이다. 루니는 과연 스타출신 감독의 새로운 성공사례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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