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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전날 슈만은 클라라에게 이 노래를 바쳤다 [꿀잠뮤직]

오수현 입력 2021. 01. 1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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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곡집 '미르테의 꽃' 中 '헌정'
결혼반대 장인과 소송 끝 결혼 골인..마침내 쟁취한 사랑의 기쁨
결국 슈만은 정신병 끝에 투신자살

※꿀잠뮤직은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듣기에 좋은 음악을 추천해드리는 코너입니다. 매주 한 곡씩 꿀잠 부르는 음악을 골라드리겠습니다.

[꿀잠뮤직] 슈베르트를 가곡의 왕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슈만의 노래를 훨씬 더 좋아한다. 슈베르트의 곡은 뭐랄까, 가사와 음악이 완벽히 일체화된 나머지 빈틈이 없는 음악 같은 느낌이 든다. 멜로디의 흐름도, 피아노 반주도, 가사의 변화에 따른 화성의 색체적 변화도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하다. 하지만 감수성 측면에서 크게 끌리진 않는다. 완벽한 예술가곡(Lied)일 뿐이다. 각 잡힌 슈트를 입고 실크 해트를 쓴 19세기 유럽의 신사를 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슈만의 가곡에는 무언지 모를 불완전함이 있다. 음악적인 불완전함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평생 우울증과 싸우며 고뇌했던 슈만의 내면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 같다. 그래서 그의 노래에는 심연 깊은 곳을 자극하는 우울함이 담겨 있고, 때론 언제 그랬냐는 듯 따뜻한 희망의 정서가 흘러 넘친다.

무엇보다 슈만 노래의 매력은 우아함이다. 그의 노래는 평이하고 예상 가능한 흐름으로 이어지다가 절묘한 시점에 예기치 못한 전환을 이뤄낸다. 멜로디 라인과 화성의 색체, 피아노 음형이 너무도 매끄럽고 세련되게 변화한다. 마치 노래의 나머지 부분은 그 전환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슈만의 노래 중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과 '미르테의 꽃'에선 이 같은 전환의 매력이 가득하다. 미르테의 꽃은 슈만이 결혼 전날 아내 클라라 슈만에게 바친 연가곡집이다. 모두 26개 곡으로 이뤄진 이 연가곡집은 바이런, 무어, 쾨테 등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들었다. 슈만은 음악뿐 아니라 문학에도 굉장히 조예가 깊었다.

슈만과 클라라
'미르테의 꽃'의 첫 번째 곡 '헌정(Widmung)'은 설렘이 가득한 노래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한 남자의 벅찬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대는 나의 영혼, 그대는 내 심장, 그대는 나의 기쁨, 오 그대는 내 고통이여(Du meine Seele, du mein Herz, Du meine Wonn', o du mein Schmerz)."

슈만과 클라라는 클라라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의 결사 반대를 딛고 결혼했다. 법대생이었던 슈만은 음악을 향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고 뒤늦게 음악으로 진로를 전환했다. 당시 피아노 교사로 꽤 명망이 높았던 비크 밑에서 음악을 배우던 슈만은 그의 딸 클라라 비크와 사랑에 빠졌다. 슈만이 9살 연하인 16세의 클라라와 사랑에 빠지자 비크는 그야말로 노발대발했다.

슈만의 가능성을 인정한 비크였지만 클라라는 그야말로 금지옥엽으로 길러낸 귀한 딸이었다. 슈만은 가능성이 전부인 무명의 음악가였지만 클라라는 어릴 적부터 유럽 음악계에 이름을 날린 스타 피아니스트였다. 파가니니, 괴테 등 당대의 예술가들이 클라라의 연주를 높게 평가했고, 쇼팽·리스트·멘델스존은 그녀에게 작품을 헌정하기도 했다.

비크는 슈만에게 "딸에게 접근하면 총으로 쏴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했지만 소용없었다. 슈만과 클라라는 비크를 상대로 한 법정 소송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이런 사연 많은 결혼 전날 바친 노래이니 얼마나 말랑말랑하겠는가.

하지만 부모님 말씀 틀린 게 없다고 하지 않는가. 결혼 이후 아직도 발행되는 독일의 음악저널 '음악신보'를 창간하며 새로운 음악 운동을 전개하고, 재능을 꽃피우던 슈만은 결혼 후 5년여가 지난 시점부터 내재돼 있던 정신질환이 서서히 발현되며 정신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게 된다. 슈만의 증세는 현기증, 불면증, 무력감, 신경과민, 불안, 초조, 자신감 결여, 대인기피, 이명현상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슈만은 결국 라인강에 투신해 46세 일기로 삶을 마쳤다. 음악학자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은 슈만에 대해 "(정신질환이 본격화한) 35세를 넘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으면 음악계의 찬란한 별이 됐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말년은 비참했고, 아내 클라라의 내면도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헌정은 원곡인 성악곡으로 듣는 것도 좋지만, 슈만의 동시대 작곡가이자 당대 최고 피아니스트였던 프란츠 리스트가 피아노 곡으로 편곡한 곡을 들어보길 권유한다. 슈만 특유의 매혹적인 화성의 전환이 피아노 곡에서 더 극대화되는 것 같다.

참고로 클라라는 리스트가 자신의 남편 곡을 편곡하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리스트는 슈만이 생존했을 시절 그를 폄하하는 발언을 했고, 슈만은 이에 상당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화려하고 과시적인 리스트가 보수적이고 진지한 클라라의 눈에는 잘난 척하는 피아니스트로 비쳤을 것이다. 어쨌든 리스트의 피아노 편곡은 매우 훌륭하다.

유튜브에서 'schumann widmung'이라고 검색하면 여러 연주가 뜨는데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2019년 이탈리아 RAI 오케스트라와 협연 후 앙코르 곡으로 연주한 영상을 들어보길 권한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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