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임대인은 왜 나타나지 않았을까

이하늬 기자 2021. 1. 16. 15:5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세제 혜택 정책 실효성 떨어져… 방역 동참 피해는 고스란히 자영업자에게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상점에 ‘폐업’ 표지가 붙어 있다. / 김영민 기자

상가임대료 책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니느냐’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이 기준을 완전히 허물어버렸다. 거리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다. 배달은 급증했다. 그럼에도 임대료는 내려가지 않았다. 정부가 세재 혜택을 준다고 해도 ‘착한 임대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나쁜 임대인이 많았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해 11월 실시한 ‘소상공인 임대료 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임대료가 인하됐다는 응답은 5.5%에 불과했다. 반면 코로나19 이후 임대료가 올랐다는 응답은 13.6%에 달했다. 임대료가 10% 이상 올랐다는 응답도 4.2%에 달했다. 변화 없다는 응답은 80.8%였다.

왜 착한 임대인은 나타나지 않았을까. 김모씨는 2019년 10월 서울 강서구에 카페를 열었다. 권리금으로 5000만원을 냈다. 부담되는 금액이었지만 지하철역 인근 건물이라 몇년 바짝 벌면 손해는 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원래 카페가 있던 자리라 인테리어 비용은 그나마 1000만원밖에 들지 않았다. 25평(82.6㎡) 카페의 월 임대료는 320만원이다.

권리금 포기하고 나가지 쉽지 않아
3개월 만에 코로나19가 터졌다. 정부가 착한 임대인에게 세제 혜택을 준다는 소식에, 임대인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저희는 이곳에서 오래 영업하고 싶습니다. (중략) 인건비도 압박입니다. 하지만 요즘 알바 자리도 구하기 힘든데 자식 같은 친구들 일자리를 차마 없앨 수가 없습니다.” 편지에 대한 답은 받지 못했다.

김씨는 착한 임대인 정책이 허울뿐인 정책이라 생각한다. 인테리어 비용에 권리금까지 들인 소상공인은 한번 연 가게를 옮기기 쉽지 않다. 권리금을 받으려면 이후에 들어올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코로나19 상황에서 이전 수준의 권리금을 내고 들어올 사람은 없다. 이후 들어올 사람을 찾지 못하면 권리금은 통째로 날아간다.

그는 “건물주들은 임차상인이 쉽게 나가지 못한다는 걸 안다. 그러니 굳이 임대료를 내릴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래도 손해, 저래도 손해인 뻔한 상황에서 김씨의 선택지는 ‘언젠가 좋아지겠지’라는 기대감에 기대는 것뿐이다.

착한 임대인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초기부터 나왔다. 중소기업벤처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월 2일 기준 임대료 인하의 혜택을 받은 점포는 2만9869곳이다. 6개월이 지난 10월에도 수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10월 말 기준으로 임대료 인하 혜택을 받은 점포는 4만2977곳이다. 전국 소상공인이 700만이라고 단순 계산하면 1%도 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국회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으로 경제적 피해를 입었을 경우, 임대료 삭감을 요구할 수 있게 하는(감액 청구권) 내용의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기에는 세입자가 6개월간 월세를 밀리더라도 건물주가 쫓아낼 수 없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이 역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마포구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한모씨는 얼마 전 종신보험을 해지했다. 16년 동안 납입한 보험료는 4000만원. 이중 2200만원을 돌려받았다. 그는 이 돈으로 밀린 임대료를 냈다. 90평 규모의 호프집 임대료는 월 980만원이다. 임대료 두달치를 내고 나니 남는 돈은 얼마 없었다. 그는 건물주에게 임대료 삭감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한씨는 6개월 동안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쫓겨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1800만원 손해를 보고 종신보험을 해지한 이유는 연체이자와 재계약 때문이다. 보통 상가임대의 연체이자율은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24%에 이른다. 몇달 밀리면 이자가 순식간에 불어난다. 한씨처럼 임대료가 높을수록 이자 부담도 크다.

임대료 삭감 이야기도 꺼내지 못한 한씨에게 ‘감액 청구권’은 더 먼 이야기다. 괜히 나섰다가 임대인과 사이만 틀어질 수 있다. 개정안에는 임대인이 감액 요구를 수용할 의무는 규정돼 있지 않다. 임대인이 감액을 받아들인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이 경우 이후 계약에서 월세 상승폭 5% 제한이 사라진다.

‘감액 청구권’도 먼 이야기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청구를 받아들인 경우에도 재계약에서 월세를 20% 올리면 결국 부담은 임차인이 지는 것”이라며 “‘장사 그만두겠다’ 정도의 마음이어야 감액을 청구할 수 있게 제도를 만들어놨다”고 비판했다.

실효성 없는 대책이 나오는 동안,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에 몰렸다.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시행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김씨 카페의 지난해 12월 매출은 800만원이다. 올해 1월 13일까지 매출은 180만원이다. 카페의 한달 고정비용은 임대료 320만원, 재료비 200만~250만원, 각종 세금 100만~150만원, 인건비 200만원 등 900만원이 넘는다. 김씨의 인건비는 고려하지 않은 규모다. 그는 “그렇다고 가게 문을 닫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없다. 백수보다 못한 처지”라고 말했다.

한씨 호프집 사정은 더 나쁘다. 지난해 12월 매출이 16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김씨의 카페보다 매출이 적다. 2019년 12월 호프집의 매출은 5700만원이었다. 호프집의 고정비용은 임대료 980만원, 인건비 850만원, 4대 보험료 450만원, 술값 900만원, 음식재료비 400만원, 세금 200만~250만원 등 3800만원 수준이다. 그는 직원 5명을 모두 내보냈다.

지금이라도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임대료 멈춤법(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대책 중 하나로 꼽힌다. 감염병 예방조치에 따른 특례조항을 신설해 집합금지 업종에는 임대료를 청구할 수 없게 하고, 집합제한 업종에는 기존 임대료의 절반 이상을 받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임대료를 받지 못하는 임대인을 위해 금융기관의 상환기관 연장 또는 이자 상환 유예 규정을 마련했다.

박지호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사무국장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감염병으로 피해를 받은 농가는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다. 코로나19도 같은 논리가 적용돼야 한다”며 “방역이라는 공익을 위해서 멈췄지만 착한 임대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피해는 고스란히 자영업자 몫이 됐다. 제발 고통을 분담하자”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