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1980년 광주', 틀랄텔롤코 학살

김성호 입력 2021. 1. 1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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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독서만세 140] 로베르토 볼라뇨의 <부적>

[김성호 기자]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적잖은 나라가 비슷한 상처를 안고 있는 걸 알게 된다. 특히 세계 역사가 하나의 흐름에 묶여 거스를 수 없게 된 20세기 들어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제3세계 국가들이 단계별로 비슷한 궤적을 그리기도 한다.

개중 눈에 띄는 건 국가폭력이다. 외세에 기대 군부가 독재정권을 수립하고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궐기를 힘으로 깔아뭉개는 현상이 곳곳에서 빚어졌다.

1970년대는 세계적으로 민주화 열망이 가장 강했던 시기다. 1968년 유럽에서 일어난 68혁명의 불길이 세계 곳곳에 미친 영향이다. 68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앞둔 멕시코도 예외가 아니었다.

멕시코는 급했다. 불과 올림픽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멕시코 대학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가 일었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행사를 앞두고 대단한 망신이자 정치적 타격이었다.
 
▲ 로마 스틸컷
ⓒ 판씨네마(주)
   
멕시코의 '1980 광주', 틀랄텔롤코 학살

구스타보 군부는 강경책을 선택했다. 무장 헬기와 장갑차까지 동원해 시위를 진압했다. 틀랄텔롤코(Tlateloco) 광장에 있던 시위대를 군사작전처럼 급습했다. 당시 멕시코 정부는 사망자가 17명에 불과하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사망자는 그 10배가 훌쩍 넘는 걸로 추정된다. 2002년 들어 공개된 당시 미국 정보기관 문서는 200여 명이 사망했다고 적고 있다.

틀랄텔롤코 학살은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문학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제9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촬영상,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영화 <로마>다.

멕시코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손꼽히는 영화감독으로 성장한 알폰소 쿠아론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틀랄텔롤코 학살 사건을 의미심장하게 비춘다. 극 중 가정부인 클레오가 태어날 아기 침대를 사러 시내에 나갔다가 인근에서 일어난 시위와 폭력적 진압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클레오는 이 충격으로 아이를 사산하게 된다.

자전적 이야기로 알려진 이 영화에서 쿠아론은 틀랄텔롤코 학살을 빼놓고는 작품을 만들 수 없었던 게다.
 
▲ 부적 책 표지
ⓒ 열린책들
 
시위진압대를 피해 화장실에서 견딘 13일

쿠아론뿐 아니다. 틀랄텔롤코 학살을 배경으로 한 작품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게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부적>이다. 가브리엘 마르케스 이후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추앙받는 볼라뇨는 조국 칠레뿐 아니라 이주해 살았던 멕시코의 상처를 보듬는 작품으로 이 소설을 썼다.

이야기는 아욱실리오 라쿠투레라는 우루과이 여성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1960년대 멕시코시티로 온 라쿠투레는 그 시절 많은 라틴아메리카인이 그랬듯 좀 더 사정이 나은 멕시코시티로 건너와 불법체류 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지고 보면 <로마>의 클레오도 비슷한 상황이 아니었던가.

라쿠투레는 스페인 출신 시인으로 멕시코에 체류 중이던 레온 펠리페와 페드로 가르피아스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멕시코 대학교 인문대학 주변에서 아무 일이나 닥치는 대로 하며 살았다. 그렇게 1968년, 틀라텔롤코 대학살을 만난다.
 
"나는 그렇게 1968년에 이르렀다. 아니 1968년이 내게로 왔다. 이제 나는 그것을 예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나는 맹렬한 예감이 있었지만, 그 예감이 나를 엄습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나는 1월 벽두부터 그것을 예견하고 직관했으며, 그것을 짐작하고 감지했다. (중략)
 
나는 군대가 자치권을 짓밟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체포하거나 살상하기 위해 캠퍼스에 난입한 9월 18일에 인문대학에 있었다. 아니다. 대학에는 사망자가 많지 않았다. 틀라텔롤코였다.

영원히 우리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그 이름! 그러나 군대와 경찰 기동대가 난입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구타할 때 나는 인문대학에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문대학의 어느 층 화장실이었다." -본문 중에서
 
틀라텔롤코 학살 기간 인문대학 어느 화장실에 숨어 있던 우루과이 여성 라쿠투레는 볼라뇨 소설 상당수가 그렇듯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다. '알시라'라고 알려진 우루과이 여성은 경찰 기동대가 학살을 앞두고 대학을 점령했을 때부터 학살기간 내내 보름 가까운 시간을 화장실에 갇혀 견뎠다고 한다.

시가 세계를 구원하리라는 믿음

볼라뇨는 알시라의 이야기를 라쿠투레에게 투영하며 약간의 상상을 더한다. 변기에 앉아 스페인 시인의 시를 읽던 라쿠투레가 모든 대학 구성원이 얻어맞고, 피를 흘리며 학교 밖으로 질질 끌려나간 바로 그 시간부터 비극이 이어지는 내내 숨죽이고 화장실에 숨어 버텨낸다.

여러모로 처절하고 가난하며 보잘것없는 라쿠투레지만, 스스로를 '라틴 아메리카 시의 어머니'라고 부르며 궁핍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시인이라 말하고, 수많은 시인에 경탄과 경외를 아끼지 않는 볼라뇨가 알시라에게 시인의 정체성을 투영한 의도는 분명하다. 수많은 결점에도 시와 문학이 세계를 구원하리라는 믿음이 깔린 것이다.

멕시코의 틀랄텔롤코 학살은 우리에겐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이고, 중국의 1989년 천안문 학살이며, 지금도 진행 중인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집회 탄압이다. 이를 자신의 작품 안에 녹여내고 '심연으로 걸어 들어가는 한 떼의 젊은이들과 그들의 노랫소리'로 이야기를 끝맺은 이 작가의 시도는 부정한 자들의 훼방을 떼어내는 문학적 부적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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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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