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대' 갇힌 일본..'한국 때리기'의 속내는 열등감

윤세미 기자 2021. 1. 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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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일본의 이유있는 위기감 (上)

[편집자주] 새해부터 한일 관계가 심상치 않다. 양국간 관계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불리는 과거사 문제는 한국법원의 위안부 판결로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 수출규제와 상호 입국규제, 징용배상 문제 등으로 채 아물지 못한 상황에서 새로운 이슈가 불거진데다 일본내 위기감마저 돌출했다. 양국 관계는 어떻게 흘러갈까.

냉정 잃은 건 후퇴해서다…'잃어버린 시대' 갇힌 일본
사진=AFP
1990년부터 일본은 오랜 경기침체를 겪었다. 자산거품이 터지면서 수십년에 걸친 디플레이션과 장기불황의 수렁으로 빨려들었다. 아무리 돈을 풀어도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현상을 가리키는 '일본화(Japanification)'는 세계 경제 정책입안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 됐다.

최근 일본 증시는 1990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지만 일본이 30년 전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만 해도 세계는 일본을 연구하고 일본을 배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어떻게든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일본은 대규모 돈풀기로 요약되는 '아베노믹스'를 통해 강하게 회복하는 것처럼 포장됐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못하다. 국가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디플레이션과 침체 공포는 상시적이며 극심한 고령화로 소비력도 쪼그라들고 있다.

지난해에는 도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통해 해외에 일본의 저력을 과시하고 경제 도약의 계기로 삼으려 했지만 이 마저도 코로나19 팬데믹에 물거품이 됐다. 또 코로나19 대응에서 정부는 무책임과 무능을 드러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전격 사임한 뒤 스가 요시히데 정부가 수립됐지만 '그밥에 그나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쇠퇴의 신호는 진작부터 감지됐다. 세계 2위 경제국이라는 타이틀을 중국에 내어준지 오래다. 일본 경제가 머뭇거리는 동안 한국과의 경제력 격차도 좁혀졌다. 지난해 일본은 세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34위에 그치며 한국(23위)에 크게 밀렸다. 일본을 문화강국으로 이끈 만화, 게임, 영화 등의 문화수출은 K팝, K웹툰, K드라마에 자리를 빼앗겼다

사회에선 오랜 침체로 변화와 도전보다 안정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개혁과 혁신은 거리가 멀다. 현금과 팩스, 도장으로 점철되는 아날로그 문화는 정책적 개혁 과제로 삼아야할 정도다. 2020년 블룸버그가 뽑은 세계 혁신 순위에서 일본은 12위에 그치며 한국(2위)에 한참 밀렸다. 미래 경제를 이끌 스타트업도 기근현상에 시달린다.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일본의 스타트업은 4개로, 중국(122개), 한국(11개)에 못 미친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일본에서 한국과 중국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일본이 전 세계 부와 국제질서를 이끄는 아시아 유일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이 흔들리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서다. 지난해 선진 7개국(G7) 모임에 한국, 호주 등을 포함해 G11로 확대 개편하려는 움직임에 일본이 난색을 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특히 한국에 대한 정서가 경계심을 넘어 혐오로 향하는 점은 우려스럽다. 거리에서 버젓이 혐한 시위가 벌어지고 서점에는 혐한 서적만 파는 매대가 있을 정도다. 일본 우익은 혐한 정서를 주입하면서 정신승리를 외치지만 우월감의 이면에서 열등감을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다.

일본 정치인들이 국내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으로 한국과의 갈등을 이용하는 건 익숙한 패턴이 됐다. 일본 정치인들은 '한국 때리기'를 시전하며 지지율을 높이는 기회로 삼았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후 아베 전 총리가 수출규제를 꺼내든 게 대표적이다. 최근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한국 법원의 위안부 배상 판결 후에도 일본 정치권에선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일본이 당면한 위기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유니클로의 모회사 일본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일찌감치 "일본이 냉정을 잃고 한국을 대할 때 전부 신경질적으로 바뀐 것은 일본이 후퇴했기 때문"이라면서 "일본이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선진국은 커녕 개도국으로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간플레이보이 역시 지난 9월 "혐한을 자극하는 우익이 판을 치게 된 것은 아시아 유일 선진국이라는 일본의 긍지가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라며 "현실을 부정해서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잃어버린 30년'을 넘어 '잃어버린 40년'으로 갈 수 있다는 뼈아픈 지적인 셈이다.

윤세미 기자

'육해공 모두 삐걱' 한일관계 신년부터 살얼음판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도미타 코지 주한일본대사를 접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2021.01.14./사진=뉴시스 photo@newsis.com
한일관계가 신년부터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지난 2018년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판결로 이미 악화일로를 걷던 한일관계가 최근 일본 정부에 배상을 명한 '위안부' 판결로까지 이어지며 급속도로 경색된 모양새다.

이후 일본이 한국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사전 협의 없이 측량 조사를 강행하면서 한일 양국은 해상 대치를 이어갔으며, 코로나19로 하늘길마저 막혔다. 한일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됐단 목소리가 나온다.

◇韓, 日정부에 '위안부' 배상 책임 첫 인정

지난 8일 한국 법원은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원고들에게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고 위자료 배상 판결을 내렸다. '위안부' 피해자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가운데 첫 원고 승소 판결이었다.

일본은 즉각 주권면제 원칙을 들어 '위안부' 판결은 무효라고 항의했다. 이는 한 국가가 외국의 재판소에서 강제로 피고가 될 수 없단 원칙을 말한다.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겼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우리나라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여러 건 냈지만, 1심 결론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 세워져 있는 고(故) 배춘희 할머니의 흉상. 2021.1.8./사진=뉴스1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결코 수용할 수 없다"며 "국제법상 주권국가는 타국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는다"고 불복했다. 이어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일본 언론은 한국의 강제징용 판결과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로 틀어진 양국 사이가 새 난제를 안게 됐다며 한일관계가 더 악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위안부' 판결 보복인가…양국 해상 대치

며칠 지나지 않아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난해 8월 15일 이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한일 양국이 해상에서 40시간 가까이 대치하는 일이 벌어진 것.

지난 10일 오후 11시55분쯤 한국 EEZ에 진입해 측량 조사를 한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측량선 '쇼요'(昭洋·3000톤급)는 한국의 중단 요청에도 불응하고 퇴거하지 않고 대치를 이어가다 지난 12일 오후 4시24분쯤 떠났다.

지난 11일부터 제주 남쪽 해상에 일본 해상보안청 측량선 쇼요(昭洋)가 해양 조사를 진행하면서 한국 해경 함정과 40시간 가까운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해당 수역은 1999년 '신한일어업협정'을 통해 설정된 한일 중간수역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12일 제주 남쪽 해상에서 해경과 대치 중인 측량선 쇼요(昭洋).(제주지방해양경찰청 제공)2021.1.12./사진=뉴스1

해당 해역은 한국과 일본의 양쪽 연안에서 200해리 범위에 있어 EEZ가 겹치는 이른바 '중첩수역'이다. 중첩수역은 상호 협의해 기준을 정하게 돼있지만, 한일 양국은 서로 자국의 해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일본 선박은 물러났지만 긴장감은 여전하다. 일본 해상보안청이 다음달까지 조사를 이어간다는 계획을 내놓아 한국은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하늘길마저 막혔다

한일 양국간 하늘길도 다시 막혔다. 일본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외국인 입국을 당분간 막았고, 한국도 일본에 대한 기업인 특별입국절차를 중단했다.

일본은 다음달 7일까지 '비즈니스 트랙'을 일시 중단한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일본 비즈니스 트랙은 지난해 10월8일 시작된 기업인 특별입국절차다. 한국, 중국, 대만 등 11개국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목적 왕래를 허용한 바 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기업인 특별입국도 막혔다. 한국 외교부는 지난 13일 "2월7일까지 일본에 대해 격리 면제서 발급이 일시 중단될 예정"이라 밝혔다.

이지윤 기자

日스가의 인기 추락, 文도 부진…희미해지는 정상회담
스가 요시히데 일본총리의 지지율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최근 일본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센데 총리의 대응은 더디다는 게 주된 평가다. 이에 따라 꼬여 있는 한일관계를 풀 수 있는 여지도 좁혀지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총리 /사진=AFP

일본 교도통신이 지난 9~10일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스가 내각의 지지율은 한달 새 9%포인트 빠진 41.3%였다. 불지지율은 42.8%로 더 컸다. 9~11일 NHK의 조사에서도 지지율 40% 대 불지지율 41%로 부정 평가가 처음으로 앞섰다. 취임 직후 지지율이 70% 수준이었던 데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코로나19 관련해 스가 총리는 지난 7일 도쿄 등에 긴급사태 선언을 내렸는데, 두 여론조사에서 일본인들 80%가량이 "너무 늦었다"고 답했다. NHK 조사에선 스가 총리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로 "실행력이 없기 때문"(40%), "정책에 기대를 가질 수 없어서"(33%) 등 능력을 문제삼았다.

무파벌로 당내 세력이 약한 스가 총리가 취임 4개월 만에 큰 위기를 맞자 일본에선 3월 조기퇴진설까지 돈다.

이처럼 그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분위기 전환 조짐이 있었던 한일관계도 쉽게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아사히신문 계열 주간지 '아에라'는 11일자 기사에서, 당초 스가 총리가 1월에 고유권한인 중의원 해산 및 총선을 계획했지만 코로나19 급속 확산으로 무산됐고 이후 지지율까지 떨어진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지지율에 좋지 않은 정책을 쓸 여유가 없다"면서 한일관계는 추락 기미가 짙어졌다고 평가했다.

양국 국민의 상대국에 대한 호감도가 낮은 상황에서 '한일 관계개선 카드'를 꺼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여기에 스가 총리는 13일 기자회견에서 "내각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꺼냈다. 한일 관계는 우선 순위가 아닌 것이다.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한국에서는 지난해 11월 10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13일 김진표 의원(회장) 등 한일의원연맹 의원들이 일본을 방문해 스가 총리와 회담하며 양국 관계 개선 물꼬를 트려했지만, 스가 총리는 한국이 답을 달라며 수비적인 자세를 취했고 이후 연말 한국에서 열려던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을 꺼려하며 사실상 찬물을 끼얹었다.

여건은 좋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15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12~14일) 결과 취임 최저인 지지율 38%인 상황에서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치른다. 일본도 가을 이전에 중의원 선거를 치러야 하며, 그 이전인 7월엔 개최 여부가 불투명한 도쿄올림픽이라는 큰 과제마저 있다.

다만 문 대통령은 14일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조기에 복원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해 관계 개선 여지는 열어뒀다.

갈등으로 치닫는 한일관계 개선의 해법으로 양국의 양심적 지식인들은 한일 정상회담을 주로 거론하고 있다. 실제로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 일본 학자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은 지난해 기자회견을 열어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관계 개선을 위해 양국 정부가 나설 때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서로 성실하게 노력한다는 것을 약속하는 것이 관계 개선의 첫걸음이라고 규정하고서 “가능한 한 빨리 양국이 정상회담을 열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자국내 지지도 취약해진 상황에서 한일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은 점점 멀어진다는 우려도 불거지고 있다.

김주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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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미 기자 spring3@mt.co.kr, 이지윤 기자 leejiyoon0@mt.co.kr, 김주동 기자 news9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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