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쓰레기 쌓인 집 삼남매..사연은 이랬다

이유민 입력 2021. 1. 17. 07:00 수정 2021. 8. 2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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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KBS는 경기도 시흥시의 한 옥탑방에 살고 있는 삼 남매의 사연을 보도했습니다. 이 집에는 100ℓ 봉투 13개 분량의 쓰레기가 주방과 화장실, 방 곳곳에 가득 들어차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4살과 3살 여자아이와 생후 한 달 된 갓난아기, 그리고 아이들의 부모가 함께 지내고 있었습니다.

[연관기사] 쓰레기 집에 방치된 갓난아기…주민센터 공무원이 학대 막았다 (2020.01.14. KBS1TV 뉴스9)

또 다른 사례도 전했습니다. "널어놓은 빨래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맞은 아이들의 사연입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사진 속에선 4살 누나와 한 살 터울 남동생의 작은 등에 남은 선명한 상처 자국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내버려뒀다면 자칫 더 큰 학대 피해로 이어질 뻔한 두 가정, 지역의 관심이 쏠린 이후 크게 달라졌습니다.

방송에서 다 전하지 못한 취재 뒷이야기, 방송이 나간 이후 지역사회의 반응을 [취재후]에 담았습니다.

■삼 남매 집, '이웃'이 되찾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삼 남매'의 부모는 집을 치울 기력도, 의지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치워야지" 하다 보니 하루 이틀이 흐르고, 나중엔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쓰레기가 쌓였습니다. 화장실엔 오물 묻은 휴지와 아이들 기저귀가 세탁기 높이만큼 차올랐고, 부엌엔 먹다 남은 음식물과 컵라면 용기, 생활 쓰레기가 들어찼습니다.

문제를 알아챈 건 다름 아닌 주민센터 공무원이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같은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아동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조사를 하던 중, 쓰레기가 가득 쌓인 이 집을 발견한 겁니다. 정왕본동 주민센터 장은영 주무관은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며 "쓰레기 수거업체를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시급해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주민센터 공무원들과 지역민들은 직접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아이들은 이웃에 잠시 맡겨놓고, 곧장 쓰레기를 나르고 구석구석을 닦은 뒤 소독까지 했습니다. 청소에만 매달린 지 4시간, 아이들의 집은 드디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깨끗한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깡충깡충 뛰며 좋아했다고 합니다.

청소 전 삼남매의 집 화장실(왼쪽)과 청소 이후 모습(오른쪽)

■삼 남매와 부모, '선생님'이 생겼다

청소를 도왔던 경기 행복마을관리소 소속 김미숙 씨는 이날 이후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삼 남매 가족을 수시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기껏 치운 집이 다시 더러워지진 않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있는 집은 특히 더 청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김 씨는 아이 부모에게 빨래를 개는 법부터 분리수거 하는 법까지 알려줬습니다.

다행히 김 씨의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할 때마다, 집은 늘 깨끗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분리수거도 착실하게 해서 쓰레기가 쌓일 틈이 없습니다. 김 씨는 "물고기를 입에다 물어다 준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준 것"이라며 "내가 이 가족에게 행복을 줬다기보단, 이 사람들이 변하는 걸 보며 내가 행복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육아에 미숙했던 삼 남매의 부모가 '이웃'이라는 든든한 선생님이 생겼다면, 아이들은 '진짜 선생님'이 생겼습니다. 가족의 사연을 알게 된 지자체가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연계해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게 조치한 겁니다. 주민센터 공무원의 안내로 주거급여 지원도 받게 됐습니다. 여러 선생님의 조언으로, 삼 남매 가족은 새 도약을 시작합니다.

청소 전 삼남매의 집 주방(왼쪽)과 청소 이후 모습(오른쪽)

■아이 둘 홀로 키운 엄마, '기댈 곳'이 없었다

엄마는 경기도 군포시에서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미혼모였습니다. 20대 초반인 엄마는 아이들을 고등학생일 때 낳았습니다. 아이들의 아빠는 입대 뒤 연락이 끊겼습니다. 엄마는 어렵게 구한 직장에 양해를 구해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24시간 이어지는 육아에 생활고까지…. 스트레스는 걷잡을 수 없이 쌓여갔습니다.

퇴근 뒤 널어놓은 빨랫감이 어지럽혀진 걸 본 엄마는 솟구치는 화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장난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엄마에겐 없었습니다. 엄마는 눈에 보이는 옷걸이를 집어 아이들의 등을 때렸습니다. 경기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이웃의 신고를 받고 아이들의 상처를 확인한 뒤, 엄마와 아이들을 분리 조치했습니다.

기관이 주목한 건 이 가족의 사연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언젠가 가정에 복귀시키기 위해선 엄마의 심리치료가 우선이라고 봤습니다. 상담 시작부터 엄마는 사연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행동에 반성하고, 학대 사실을 인정한다고도 했습니다. 엄마는 기관과 경찰의 조사를 받은 뒤, 사회봉사 120시간을 이수했습니다.

분리조치 직후 아이들의 등 상태 (사진제공 : 경기 아동보호전문기관)

■다시 만난 엄마와 아이들, '웃음' 되찾았다

반년 간 이어진 상담과 치료 끝에 아이들은 지난달 엄마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엄마를 보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지자체와 기관은 엄마가 일하는 시간에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갈 수 있게 조치하고, 상시 모니터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 양육지식이 부족한 엄마에게 부모교육과 가족관계 개선 교육도 듣도록 했습니다.

이 가족을 지원하고 있는 경기 아동보호전문기관 신재학 팀장은 "며칠 전엔 엄마와 아이들이 같이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며 "아이들은 전보다 더 밝아지고 어머님도 기관에 협조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신 팀장은 학대 아동을 분리하는 게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 부모가 학대 사실을 깨닫고 재발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학대 사실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조치와 교육을 통해 엄마와 아이들이 새 삶을 되찾은 이번 사례가 신 팀장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신 팀장은 "이번 경우처럼 주변 이웃들과 기관이 적절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면, 더 큰 피해를 막고 근본적인 해결을 함께 모색해나갈 수 있다"며 이웃의 관심을 촉구했습니다.

장은영 정왕본동 주민센터 주무관이 취재진에게 쓰레기를 치우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두 가정의 소식이 알려진 뒤 많은 분들은 다행이라며 안도했지만, 일부는 아이들이 다시 학대 위험에 놓이진 않을까 우려를 표했습니다. 이에 두 가정의 사례를 관리하고 있는 지자체와 기관은 KBS 취재진에게 "각 사례의 가정은 주 1회 이상 방문하며 아이들의 상태를 살피고 있고, 현재 그 어떤 아이들보다 밝고 건강한 상태"라고 전했습니다.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장은영 주무관은 "과거 학대 사실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지만, 지속적인 교육과 모니터링, 복지서비스 지원 등을 통해 다시 일어서는 부모들에겐 비난보단 격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부모들이 비난을 받고, 또다시 음지로 숨어들지 않도록 관심과 응원을 부탁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취재하는 동안 많은 취재원이 입을 모아 강조한 사실도 있습니다. 두 가정의 극복 사례는 이웃의 관심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던 일이라는 겁니다. 이들은 주변에서 사소한 단서를 포착하고 알리는 것, 도움이 필요한 가정에 손을 내미는 것이 학대받는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먼 나라의 오래된 격언이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겁니다.

이유민 기자 (reas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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