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노동 정서 심해졌나..LG트윈타워 청소 노동자에게 쏟아진 혐오

반기웅 기자 2021. 1. 1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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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해 12월 24일 오전 11시 12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의 투쟁 뉴스가 포털에 걸렸다. 박소영 공공운수노조 LG트윈타워 분회장의 전화 인터뷰(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내용을 갈무리한 기사였다. 금세 노동자를 겨냥한 날선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정규직을 목적으로 하는 농성’, ‘정년을 70세까지 요구하고 급료도 많다’는 댓글이 최다 추천을 받아올라왔다. ‘노동자가 쉬는 대기실은 넓다’, ‘모든 청소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한 것도 아니고 (용역업체)지수에는 청소만 있는 게 아니라 타 시설팀 직원도 수십명이다’와 같은 내부 정보를 언급한 댓글도 있었다.

인터뷰 기사가 나온 날은 LG 측의 해명문이 배포되기 전이다. 이 때문에 노조는 사측이 거짓을 섞은 악의적인 댓글을 달아 여론 선점 작업을 벌였다고 판단한다. 노조 측은 “실제로 <MBC 뉴스 데스크> 유튜브에 ‘배ㅇㅇ’이라는 이름으로 댓글이 달렸는데 확인해보니 배씨는 LG그룹의 자회사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에 근무하는 관리자(운영PL)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사측의 댓글 작업 정황을 떼어 놓고 봐도 LG트윈타워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사회적 연대와 지지가 이어졌던 2011년 홍익대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와 비교해도 온도차가 있다. 그 사이 우리 사회의 반노동 정서가 심화된 것일까.

기자회견하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 이석우 기자

청소 하청회사는 구 회장의 고모 회사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건 2019년 10월이다. LG그룹은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에 LG트윈타워의 건물 관리를 맡겨왔다. 에스앤아이코퍼 레이션은 관리 업무 가운데 건물 청소를 지수아이앤씨에 재하청했는데, 지수아이앤씨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두 고모인 구미정·구훤미씨가 50%씩 지분을 나눠 소유한 회사다. LG트윈타워 청소 노동자들은 구 회장의 ‘고모 회사’인 지수아이앤씨와 계약을 맺고 일했다. LG트윈타워 노동자들은 연결된 세 회사를 한 몸으로 본다. 노동자들이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해고에 대한 책임을 LG 측에 묻는 이유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계약해지는 용역업체가 단독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다. 지분 구조나 일감을 몰아줬던 운영 방식을 미루어 봤을 때 총수 일가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LG가 공동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왜 노조를 결성했을까. “정규직 전환이라니요. 정규직의 ‘정’ 도 꺼낸 적 없어요. 정규직 전환해달라고 떼쓴다는 댓글 저도 봤어요. 거짓말이에요. 우리가 원하는 건 지금처럼 여기에서 일하는 것뿐이에요.” 박소영 분회장은 억울하다고 했다. “정규직·비정규직에 대한 개념도 모르고 일한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1년씩 계약해 일 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일하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노조 만들었다고 갑자기 나가라고 하네요. 이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싸우고 있는 겁니다. 이제는 거짓말을 퍼뜨려 우리를 욕보이네요.”

박춘남씨(60)는 야간 노동자다. 밤 9시에 청소를 시작해 새벽 5시까지 일한다. “야간에는 관리자 갑질이 심해요. 창문에 물방울 자국 하나만 있어도 다시 청소를 시키죠. 일이 끝이 없어요. 폭언에 욕설을 듣기도 해요. 그래도 찍소리 못합니다.” 청소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받고 일했다. 주말 노동도 했지만 수당 지급은 없었다. 박씨는 “혜택을 달라는 게 아니에요. 주어진 권리를 찾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노조를 만든 거예요. 우리 말 좀 들어달라고.”

비정규직 중에서도 청소용역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조건이 가장 열악한 노동자에 해당한다.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상시 해고위협에 시달리고 인격적 무시를 당한다. 용역, 청소, 여성이라는 삼중의 차별을 당하며 일한다. 사고를 당했거나 신체의 이상이 생겨도 해고나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산재신청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전체의 3분의 1에 달한 다는 연구결과도 있다.(청소용역노동자 노동조건 및 생활 실태 분석, 조돈문 2007)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고용승계를 촉구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노조 결성하자 계약 종료, 사실상 해고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뒤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은 지수아이앤씨와 계약을 종료했다. 청소 품질 저하가 계약 해지의 이유였다. 이후 노동자 80여명은 지난해 12월 31일 사실상 해고됐다. 용역업체 교체 후에도 고용승계를 하는 업계 관행에 비춰보면 부자연스러운 조치였다. 고용노동부는 ‘기간제 및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가이드라인’에 “도급사업주는 사내하도급 계약 중도해지 또는 계약만료 1개월 이전에 수급사업주에게 통지하고 고용승계 등의 방법으로 사내하도급 노동자의 고용 및 근로조건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LG 측은 따르지 않았다.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사측은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지난 6일 고용노동부 남부지청 주관으로 열린 조정회의에서 노동자들의 고용유지를 약속하고, 65세 노동자분들께도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는 뜻도 밝혔지만, 노조가 트윈타워에서의 근무를 주장하며 이를 거부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LG트윈타워 노동자 집단해고는 2011년 홍대 청소노동자 해고 사태와 비슷한 모양새다. 그런데 여론 지형은 홍대 사태 때와 비교해 나아지지 않았다. 온라인상에서는 청소노동자의 투쟁을 귀족노조의 떼쓰기로 매도하고 공격하는 혐오 댓글이 넘친다. 현실에서 노조 조직률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반노동 정서는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불거진 공정성 논란이 반노동 정서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한다. 이 연구위원은 “인천국제공항 등 일련의 사태를 거치면서 고용 이슈에 대한 피로감이 쌓인 상태”라며 “하청 노동자의 고용 유지 요구를 마치 불공정한 정규직 전환 이슈처럼 받아들여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다른 노조의 투쟁은 별개 사안으로 철저히 분리해서 본다. 사안의 배경이나 현실을 배제한 채 투쟁의 당위성만 따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보다 약자에 대한 혐오가 짙어진 사회적 환경도 반노동 정서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홍대 청소노동자 사태 때와는 사회적 정서가 다르다. 지난 10년간 한국사회의 양극화는 심해졌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삶의 질이 하락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결국 고령의 여성 노동자까지 혐오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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