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겨레21

코로나19 때문에 먼저 온 미래

한겨레21 입력 2021. 01. 17. 11:28

기사 도구 모음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코로나 시대 '조건 없는 소득 경험' 우리 사회에 깊이 각인된 가운데
재난지원금이 던진 세 가지 질문
대한민국기능성피트니스협회 관계자들이 2021년 1월8일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실내체육시설에 대해 형평성 있고 합리적인 영업 재개를 촉구하며 ‘크로스핏’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훗날 역사는 2020년을 어떻게 기록할까. 코로나19라는 감염병, 통계 작성 이후 최초의 주민등록 인구 감소, 부동산과 주식 가격 폭등…. 기록될 만한 수많은 사건이 떠오른다. 하지만 정책과 관련해서는, 2020년 5월부터 8월까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한 1차 긴급재난지원금과 이를 둘러싼 논쟁이 빠질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1차 긴급재난지원금은 1인 가족 40만원에서 4인 이상 가족 100만원까지 전 국민에게 지급됐다. 특정 지역에서 주로 소상공인을 대상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지역화폐로 지급됐다. 이 화폐는 발행 4개월 만인 8월 말에 소멸하도록 설계됐다.

이 건조한 설명 안에는 수많은 파격이 들어 있다. 우선 긴급재난지원금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지급된 소득이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에서 처음 지급된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인 소득이기도 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현금으로 지급하는 복지지출이 낮은 축에 속한다. 그런 나라에서 파격적인 소득 지급 정책을 과감하게 시행했다.

파격적이고 과감했던 1차 재난지원금

재난지원금 지급 수단인 지역화폐는 화폐에 대한 기존 통념을 뒤집었다. 원래 화폐는 어디서나 쓸 수 있고 언제까지나 저축해둘 수 있다. 그 보편성과 영속성 때문에 모든 거래를 지배하는 힘이 생긴다. 그런데 지역화폐는 지역과 대기업 사용 제한으로 보편성을 제약했고, 소멸시한을 두어 영속성을 제거했다. 결과적으로 재난지원금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대답해야 할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그리고 그 각 질문에 희미하지만 분명한 방향의 해법을 제안했다.

첫째 질문은, 오래된 어제의 질문이다. 자영업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1차 재난지원금의 목적은 명확했다. 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로 인한 소비위축 탓에 위기에 빠진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살리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른 시일 안에 내수 소비를 진작해야 했다. 그 목적에 가장 충실한 지급 방식이 소멸성 지역화폐였다.

1차 재난지원금은 그런 면에서 비전통적 지급 방식이었다. ‘피해 계층을 지원한다’는 전통적 방식을 채택한 2차, 3차 재난지원금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다행히 이 비전통적 지급 방식은 애초 목적을 달성했다. 서비스업, 특히 음식점업과 숙박업 같은 영역에 즉각 활력을 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5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니, 서비스업 전체가 4월보다 2.3% 나아졌고, 소매판매액은 2019년 같은 달보다도 늘었다. 일시적이나마 소비 회복세에 재난지원금이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0년 12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코로나19로 위축된 가계소비는 그해 5월 전 국민에게 1차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된 이후 회복되기 시작했으며, 지원금 사용 가능 업종에서 전체 투입 예산 대비 26.2~36.1%의 매출 증대 효과가 나타(났다)”고 썼다. 이 분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긴급재난지원금 규모는 11조1천억~15조3천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약 70%가 카드를 썼다고 가정하고, 카드 사용액 변화를 통해 추정했다.

코로나19로 자영업자들의 휴업과 폐업이 속출해 2020년 12월16일 서울 명동 거리가 휑하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경제적 재난도 ‘국가가 보상’ 규범 수용돼

하지만 자영업자 문제는 코로나19 때문에 생긴 게 아니다. 이미 구조적으로 축소되는 과정을 겪고 있었다.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오랫동안 차차 낮아졌다. 코로나19는 이를 가속했을 뿐이다. 직장 회식이 줄고 온라인쇼핑이 오프라인쇼핑을 넘어서면서, 코로나 이후에도 이 흐름은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넓은 자영업자층은 우리 노동시장의 쿠션 구실을 한다. 한국 경제가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영업 부문이 보조적 노동시장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제조업 중심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계층, 그리고 주된 직장을 그만둔 계층 등 노동시장 주변부 인력이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역이 자영업이었다. 다른 선진국이었다면 이 중 일부 젊은층은 더 효율적인 대기업에 취업하고, 중고령층 이상 상당수는 실업자나 간헐적 노동자로 살았을 것이다.

이게 가장 바람직한 모습일까? 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자영업에도 전환이 필요하다. 방향은 사회문제 해결형 고용이다. 형태는 자영업일 수도 있고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의 고용일 수도 있다. 기후위기, 고령화와 지역소멸 등 함께 해결해야 하는 공동체의 사회문제는 차고 넘친다. 그린뉴딜, 커뮤니티케어 등 대안의 방향도 나와 있다. 이런 사회적 활동을 통해 지역에서 일하며 소득과 보람을 함께 얻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재난지원금은 기존 사업을 유지하도록 도울 뿐이다. 이를 넘어서서 자영업 전환이 가능한 정책 형태를 만들어내야 한다.

둘째 질문은, 눈앞에 닥친 오늘의 질문이다. 운이 나빠 경제적 재난을 맞은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는 각자도생의 경제체제에서 살았다. 홍수나 산불 같은 물리적 재난에 대해서는 지원정책이 부족하나마 가동됐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과 관계없이 발생하는 경제적 재난에 대한 보상은 오롯이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복불복 체제에서 살아왔다.

2020년 재난지원금은 이런 오랜 관념을 뒤집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 대한 생활안정’이라는 목적이 명시적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등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재난 관련 기금을 끌어다 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제적 재난도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는 규범이 큰 거부감 없이 한국 사회에 수용됐다.

물론 남는 과제가 있다. 경제적 재난은 반복될 것이다. 감염병 발생뿐 아니라 불확실성도 계속 커진다. 경제적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누구에게 얼마를 지급해야 하는지 전국적 논쟁을 할 수는 없다. 경제적 재난 구제는 일회적이어서는 곤란하고, 구조적이 되어야 한다.

전통적 틀은 작동하기 어렵다. 취업자-실업자, 경제활동-비경제활동 인구만 나누고 실업자 중심으로 구제하는 이분법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자영업자를 보면 드러난다. 소득이 높다가도 뚝 떨어질 수 있고, 매달 달라질 수 있다.

코로나19 세상은 예견된 미래 모습과 비슷

이런 상황에서 지속적 경제재난 구제를 하려면 소득 파악 시스템을 구축해 당한 재난의 크기만큼 지원금을 지급하거나, 재난지원금 등을 과세대상소득으로 만들고 사후 정산을 통해 지급액이 조정되도록 해야 한다. 재난지원금을 정례화하되 연말에 소득이 높았던 사람은 받은 지원금까지 과표에 포함해 세금을 더 부담하도록 함으로써 재난 크기에 비례한 지원금을 받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면, 이게 마이너스소득세(NIT) 같은 일종의 기본소득제도가 된다.

셋째 질문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내일에 대한 질문이다. 재난지원금 지급 논의 과정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제 논의가 빠르게 진전됐다.

우리 경제체제가 이대로 간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두 가지 현상에 직면할 것이다. 하나는 기술혁신으로 인한 생계노동의 소멸이다. 또 하나는 금융시스템이 한계에 부닥치면서 벌어지는 법정화폐의 기능 저하다. 두 현상이 모두 코로나19를 겪으며 드러났다. 세계는 갑작스러운 고용 축소를 겪었다. 잠기고 돈이 돌지 않았다. 여기에 대한 대응이 재난지원금이었다. 고용 없이도 소득을 얻을 수 있고, 그 소득은 소멸시한이 정해진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신세계가 열렸다. 노동 없는 세계에서 지역에서 소비하며 살아가는, 일종의 기본소득 사회를 우리는 경험했다.

기본소득제도는 찬반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순식간에 필요해질 상황에 대비해 준비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정책실험이 필요하다. 핀란드식 정책실험으로 기존 사회보장제도와의 관계를 재설정해볼 필요도 있고, 경기도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처럼 지역의 특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점검해볼 필요도 있다. 이 과정에서 기본소득제의 장기 로드맵이 그려질 수 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세상은 이미 예고됐던 우리 경제의 미래 모습과 깜짝 놀랄 만큼 비슷하다. 거래의 질서가 바뀐다. 비대면 거래는 주류 자리에 올라섰다. 불필요한 회식과 술자리는 사라지고 저녁이 있는 삶이 시작됐다. 머나먼 대형마트는 하나둘 문을 닫고, 슬세권(슬리퍼 신고 다닐 수 있는 상권) 가게, 편의점이 기세를 올린다. 음식점은 배달 중심으로 모델이 바뀌고 있다. 집에서 조리하는 일이 늘면서 반조리식품은 대박이 났다. 이 모든 것은 놀랍게도 이미 우리가 그리던 미래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불평등은 점점 더 커져 이제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아래는 더 깊게 파이고 위는 빠르게 상승하는 ‘K자 반등’이 오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기술변화와 인공지능의 발달은 우리 미래의 궁극적 모습을 풍요의 사회로 그린다. 그 사회는 모두가 생계에서 해방돼 각자 가치 있는 일에 열중하는 유토피아일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이나 공동체 회복 같은 공동 목표를 향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 기본소득제는 궁극적으로 이런 사회를 그리는 제도다.

올해 정책 논쟁이 다음 한 걸음 결정

그러나 디스토피아가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일의 보람은 사라지고 모두가 투기와 도박에 열중하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 자산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는 계급이 생기고 영원히 고착될 수도 있다. 하층 계급은 여전히 하찮게 여겨지는 노동을 생계 때문에 억지로 하며 살아야 하고, 상층 계급은 자산을 불리려는 고귀한 투자 행위를 게임하듯 즐기며 살아가는 ‘카지노자본주의’의 끝장판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세상은 논리로만 바뀌지 않는다. 경험과 공감으로 바뀐다. 1차 재난지원금이 선사한 조건 없는 소득의 경험은 우리 사회에 깊이 각인됐다. 소득의 미래로 한 걸음 다가선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 미래가 기본소득사회인지 카지노자본주의인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다음 한 걸음이 그 방향을 좀더 명확하게 하지 않을까. 2021년은 다음 대선을 1년 앞둔 해다. 올해 벌어질 정책 논쟁이 우리 사회가 뗄 다음 한 걸음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원재 LAB2050 대표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