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도 보류한 광화문광장 개조, 서정협이 누구길래 강행하나

조해수 기자 2021. 1. 1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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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등 "시장 권한대행 추진은 위법" 행정소송 나서
김부겸 전 행안부 장관 "서울시장 뽑힐 때까지 기다려야"

(시사저널=조해수 기자)

4월7일 치러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서울시(시장 권한대행 서정협)는 지난해 11월 광화문광장 공사를 시작했다. 광화문 서쪽(세종문화회관 방향)으로 광장을 넓혀 공원처럼 꽃과 나무를 심고, 동쪽(교보문고 방향) 차로는 7~9차로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9개 시민단체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이 사업의 중단 의사를 밝힌 바 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시장도 보류한 사업을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비(非)선출직 공무원인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행정1부사장)이 위법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실련 등은 이 사업의 무효화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자유연대는 서 권한대행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시는 2020년 11월16일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추진 기자설명회를 열고 광장 동측 도로 확장 및 정비를 시작으로 '사람이 쉬고 걷기 편한 광화문광장' 조성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광화문광장 조감도 모습 ⓒ 서울시 제공

안철수·오세훈·조은희 등 야권 시장 후보는 반대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들도 나섰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물론 권수정 정의당 서울시의원 등이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찬성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내며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을 반대했던 김부겸 전 의원은 "서울시가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조금 있으면 선거가 치러지고 새로운 시장이 온다. 그때까지 기다려도 늦지 않다. 이 사업은 서울 시민이 뽑은 시장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서울 시민들은 이 사업을 어떻게 생각할까. 서울시는 지난 4년간 330회의 시민토론을 거쳐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을 추진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1월12일 서울 거주 18세 이상 남녀 5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을 알고 있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55.6%에 그쳤다. 이 사업에 서울 시민의 세금 662.5억원(국비 128.5억원, 총사업비 791억원)이 투입됐지만, 절반에 가까운 시민(44.4%)은 사업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공론화 과정이 얼마나 부실했는지 보여준다. 또한 이 사업에 반대하는 의견은 56.7%로 집계됐다. 특히 적극 반대가 32.7%를 차지했다. 찬성은 34.4%에 그쳤다.(관련 여론조사 기사 참조)

배정한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는 "누가 원하는지, 왜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가 결국 강행됐다"며 "박 전 서울시장의 '새로운 광화문광장' 구상은 전시성 공간정치 프로젝트였고, 2021년 5월로 못 박은 완공 일정은 차기 대선을 의식한 과속 주행이었다"고 꼬집었다.

졸속 행정도 쉽게 눈에 띈다.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광장을 만드는 '서쪽 편측안'이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서측 편측안이 64%에 이르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64%의 모집단은 2019년 서울시가 개최한 시민대토론회 참석자 268명이다. 무작위 추출이 아니었다. 윤은주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간사는 "모집단 수가 너무 적고 서울시가 연 토론회이기 때문에 응답자들이 서울시 의견으로 치우쳤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2006년 6~11월 오세훈 시장 때 서울시가 시민 1만2454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앙광장안 44.4%, 편측광장안 29.7%, 양측광장안 25.9%로 집계됐다"면서 "서쪽 편측안은 서울시의 초대 총괄건축가를 지낸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과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의 제안이었다. 시민 여론과는 관계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

서정협 "내가 시작한 사업 아냐. 중지하면 그게 더 문제"

서울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광화문광장을 뜯어고치는 사업은 놀랍게도 서울시장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다. 서정협 권한대행은 서울 시민의 투표로 선출되지 않은 임명직 공무원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해 서 권한대행은 1월5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권한대행을 맡았을 때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이 광화문광장이었고, 권한대행 자격으로 이 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말을 주신 분들도 있다"면서도 "이 사업은 권한대행인 제가 시작한 사업이 아니다. (오히려) 권한대행이 중지한다면 더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전 시장이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다. 오히려 광화문광장과 관련한 박 전 시장의 마지막 공식 발표는 2019년 9월19일 '전면 재검토'를 밝힌 긴급 브리핑이었다. 당시 박 전 시장은 "시민과의 소통과 교통 불편에 각별히 신경 써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당부가 있었다"며 "사업 시기에 연연하지 않고 시민 목소리를 더 치열하게 담겠다"고 밝혔을 뿐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박 전 시장이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을 중단하려고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남은경 경실련 정책국장은 "2020년 5월23일 토요일, 박 전 시장은 서울 종로구 가회동 시장공관에서 시민사회단체들과 만나 '시민단체와 합의가 되지 않고 코로나 상황도 있어 이 사업을 그만두려 한다'고 밝혔다"며 "당시 자리에는 정상택 광화문광장 사업추진단장, 고한석 비서실장을 비롯해 실무진이 참석했다. 다만 서정협 권한대행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시 측은 박 전 시장이 사흘 뒤인 5월27일 시장 주재 회의 때 '광화문광장 사업은 행정 역량을 집중해 어떠한 흔들림 없이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박 전 시장이 세상을 떠난 7월9일까지 43일 동안 왜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민법 60조 "법인의 통상 사무에 속하지 않는 행위 할 수 없어"

이런 상황에서 서 권한대행이 월권 또는 직권남용을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 권한대행은 지방자치법 제111조 제1항1호에 따라 시장 권한을 대행하고 있는데,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은 없다. 그러나 민법 제60조의2(직무대행자의 권한)에 따르면 직무대행자는 가처분명령이 정한 특별한 경우 외에는 법인의 '통상 사무'에 속하지 않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즉, 직무대행자는 현상을 유지·관리만 해야 한다. 이에 따라 서 권한대행 역시 광화문광장을 유지할 뿐, 재구조화 사업 개시를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무효확인 소송에서 경실련을 대리하는 백혜원 변호사는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 국무총리 등이 권한대행으로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와 유사하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및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 당시 권한대행의 업무 수행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었다"면서 "민주적 정당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대통령의 전면적 권한 범위를 국무총리인 권한대행자가 행사한다는 것은 대통령직이라는 국민의 대표성을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권한대행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비선출직 공무원은 권한대행이 될지라도 선출직 공무원의 권한을 모두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서 권한대행이 현상유지는 고사하고 박 전 시장의 치적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박 전 시장은 2012년 "보도블록이야말로 서울시 행정의 쇼윈도"라면서 '보도블록 10계명'을 발표했다. 이 중에는 11월까지만 보도공사를 할 수 있도록 한 '보도공사 클로징 일레븐(Closing 11)'도 포함돼 있다. 박 전 시장은 "겨울철 기온이 낮아 파낸 땅이 얼어버려 부실한 시공이 발생하기 쉽고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도로굴착 공사와 보도블록 공사를 금지했다. 이후 서울시는 천재지변·돌발 사고로 인한 긴급한 굴착공사, 겨울철 상수도 동파 사고로 인한 소규모 공사와 같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겨울철 공사를 제한해 왔다.

그러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은 1월인 현재도 진행 중이다. 현재 서쪽 도로를 보행공간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마무리됐으며, 세종대로 사거리~숭례문 교차로~서울역 교차로까지 1.5km 보도구간을 임시개통한 상태다. 이에 대해 서울시 측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해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동절기 사고 위험성이 높은 콘크리트 타설 작업은 3월부터 진행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1월12일 광화문광장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시사저널 이종현

"광화문광장 사업의 주역은 서울시 공무원들"

서울시장 궐위라는 특수한 상황이 없었더라도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은 결국 추진됐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정치인이 '늘공(늘 공무원)'인 관료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운동본부 본부장은 "박 전 시장의 곁에는 시민운동을 하던 사람과 교수가 많았다. 이들은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서울시 관료들을 통제하기는커녕 이용당하기 일쑤였다. 박 전 시장도 관료에 크게 의존했다"면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 역시 관료주의의 산물에 불과하다. 현재 이 사업은 시민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관료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전 시장의 공식 발표와 서울시의 행정은 어긋나는 경우가 많았다. 경실련 측은 "2019년 9월, 박 전 시장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 중단을 선언하고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해 9월부터 12월까지 서울시는 '광화문 일대 보행환경 개선사업 기본 및 실시계획'(10월3일),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계획 교통대책에 따른 영향지역 자원조사 및 상생방안 수립'(10월11일) 등 다양한 용역계약을 체결했다"면서 "(박 전 시장의 사업 중단 선언과 달리) 광화문광장 추진단의 관료들은 기존 그대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GTX 광화문역 신설에 드는 3470억 예산은 누구 돈인가

서울시 관료들이 그리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의 최종 모습은 무엇일까?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의 광화문역 신설이 그것이다. GTX-A 노선은 파주 운정역에서 화성 동탄역을 잇는 철도다. 중간에 서울역을 경유하는데, 서울시는 2019년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광화문광장에서 서울시청까지 이어지는 지하공간을 활용해 GTX-A 광화문역 신설 방침을 발표했다. 2021년 예산에는 GTX 광화문역 신설 사업비 명목으로 4000만원이 책정됐다. 타당성 조사 용역 등을 위한 예산으로, 서울시는 이미 지방행정연구원에 조사를 맡겼다. 오는 2월 나올 것으로 보이는 이 조사는 행정안전부의 중앙투자심의를 신청하기 위한 사전 절차다. 시민토론에서 대다수 전문가가 GTX 광화문역 신설을 반대했지만, 서울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 웨이'를 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예산이다. 경실련 측은 "광화문역 신설에 드는 비용은 무려 3474억원"이라면서 "현재 국토교통부는 서울시가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서울 시민의 세금으로 경기 도민의 서울 도심 접근 편의를 증진하게 되는 셈"이라고 비꼬았다. 이어 "서울시는 '쉬고 걷기 편한 광화문광장', 즉 보행자를 위한 재구조화 사업이라고 홍보해 왔지만, 결국 대규모 토건사업으로 귀결되고 있다"면서 "서울역에서 광화문역까지는 2km 남짓하고, 그 사이에 많은 대중교통 노선이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광화문에 역을 추가하는 것은 불필요한 인프라 투자며 예산 낭비다. 잦은 정차로 급행철도라는 취지도 무색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폭주 막을 서울시 의회는 110석 중 민주당이 102석

서울시장도, 서울 시민의 의견 수렴도 없는 상황에서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상 이를 막을 방도는 없어 보인다. 남은경 경실련 국장은 "또 다른 선출직인 서울시의회가 서울시의 폭주를 막아야 하는데, 110석 중 102석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다.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이 한 몸으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여당 측 서울시장 후보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면서 "설령 이 사업에 반대하는 시장이 당선되더라도 이미 그때는 공사가 상당 부분 진행돼 버렸을 것이다. 무효확인 소송도 언제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고 토로했다.

광화문광장은 문재인 정부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문재인 정부는 광화문광장을 가득 채웠던 '촛불'로 탄생한 정권임을 강조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1호 공약으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을 내세우며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천명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2019년 1월 이 공약이 사실상 무산됐음을 밝혔는데, 당시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은 "광화문 대통령을 하겠다는 뜻은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시민사회는 '불통'을 이유로 광화문광장에 다시 촛불을 밝히겠다고 성토하고 있다. 경실련 등 9개 시민단체는 성명을 통해 "지금 서울시가 하는 것은 '광장 정신'이 없는 광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광장이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치와 개방성, 포용성, 다양성을 담을 리 없다"면서 "우리는 이런 사태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수차례 대화 요구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면, 과거 부패한 정권을 몰아냈던 그 광화문광장에 다시 설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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