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좋아합니다, 저를 먹지 마세요
어느 동네든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풍경이 흔해졌다. 홀로 어르신들에겐 좋은 벗이고, 힘든 이들에겐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존재만으로도 큰 위안이다. 그래서 반려견을 키우는 이들은 '가족'이라 한다. 우리가 키우는 개만 해도 598만 마리(농림축산식품부 통계, 2020년), 함께 사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나 극복해야 할 괴리는 여전하다. 사랑하며 키우는데, 그걸 또 먹는다. 전국엔 여전히 개농장(3000여개)도, 거기서 도살장으로 가기 위해 준비하는 개들(100만 마리 추산)도 많다. 이를 두고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반려동물을 물고 빨면서, 한쪽에서 먹는 건 넌센스"라 표현하기도 했다.
2018년엔 표창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 식용을 목적으로 도살하는 걸 금지하는 법안을 냈다. 당시엔 이를 통과시켜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와 무려 21만2424명이 동의하기도 했다. 개 식용업자들을 위해 업종을 전환하는 등 살 길을 마련하는 방안도 담겼었다.
그러나 해당 법은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여전히 개 식용 금지에 기본적으로 찬성한다는 표 전 의원은 18일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당시 개 식용업자, 농림축산식품부 등과 전체적 합의를 하려 했는데 논의도 시작하지 못했다"고 했다. 개 식용업자들조차 찬반으로 나뉘어 의견을 못 모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래서 표 전 의원은 "현실성을 담보하는지,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사전에 조율됐는지가 관건"이라며 강조했다. 실제 통과되기 위해 법안을 추진하더라도, 그런 부분이 미흡하다면 상임위에서 꿈쩍도 안 할 거라는 얘기였다.
이번엔 동물 보호에 평소 힘써왔던,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자로 나섰다. 그가 지난해 12월 말에 발의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엔 '개나 고양이를 도살, 처리해 식용으로 쓰거나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벌칙 조항도 있다. 이를 어겼을 땐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나 육견업자들의 생계 및 업종 전환을 도울 방안도 마련토록 했다. 폐업 신고와 업종 전환을 할 경우 지원금 지급 등 대책을 마련토록 한 것. 그리고 시행 시기도 법이 통과된 뒤 5년 후로 미루도록 했다. 개농장을 접거나 다른 업종으로 바꿀 수 있게 충분한 시간을 주겠단 뜻이다.
한정애 의원실 박철호 비서관은 "관건은 상임위다. 상임위에서 틀고 놓아주지 않으면 어렵다"며 "상임위만 지나면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에 관여하는 국회 농해수위 위원들은 기반이 농촌이라, 이번에도 육견단체 등의 반대가 강할 경우 통과가 쉽지 않을 거란 설명이다.
개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점차 커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설문 조사 결과(2020년 10월 22일 발표) 응답자 1000명 중 83%는 "개고기를 여태껏 안 먹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했다. 동물자유연대와 한국갤럽 조사(2019년)에선 응답자 78%가 "개식용 산업은 앞으로 더 쇠퇴할 것"이라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SNS에선 주변에서 우연히 발견한 개농장을 고발하는 글들이 줄을 잇는다. 뜬장에 갇힌 개들을 구하고 싶단 얘기에 안타까워하고, 이를 위해 후원하는 이들이 많다. 먹는 고기가 아니라 '생명'으로 보는 것. 실제 개농장에 있다가 구해진 뒤, 해외 입양을 가서 따뜻한 가정을 만나 잘 사는 개들 이야기가 수없이 많다.
그러니 시기를 장기적으로 보더라도, 개 식용업자들이 알아서 포기하도록 유도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지원 범위'다. 표 전 의원은 "국가 지원이 어느 정도 가능할지가 관건"이라며 "보상 범위를 섣불리 정하다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처음부터 보상한다고 하면 알박기를 할 수 있으니, 조건부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들 스스로 사람에게 왔다고 합니다. 처음엔 남은 음식 찌꺼기나 이런 걸 먹기 위해서 왔지요.
원시인들은 처음에 개들을 쫓아냈는데, 도망가도 곧 되돌아오고 했답니다.
실은 원시인들도 밤에 야생동물의 습격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침번을 서기도 했고요.
그런데 개들이 사람에게 온 뒤, 야생동물이 오면 막 짖어서 알려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파수꾼이 된 거지요. 그래서 인간이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는데 개 역할이 컸다는 학자들 말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의 개들도 혹독하게 대하지 않는 이상 도망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멀어졌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거지요.
"당신을 좋아합니다." 오래도록 함께 사람과 함께 살아온 개들 몸속에는, 여전히 그런 유전자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한준우 딩고코리아 대표(동물행동심리학자)를 인터뷰 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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