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코로나..발빠른 대응 도운 난중일기"
[경향신문]
손수 쓴 16권의 일지…동선·접촉자 정보 교차 역추적해 집단감염 막아
‘상주 수차례 다녀왔지만 열방센터는 안 갔다’ 메모 덕에 조기 방역 가능
“하나하나 기록하고, 그 기록을 서로 연결했더니 선제 대응의 길이 보이더라. 코로나19 방역이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일인데, 이 일지가 일종의 등불이 되어주었다.”
대전시 코로나19 방역 정책을 최일선에서 이끌고 있는 문인환 감염병관리과장(53). 그는 지난 18일 대전시청 사무실에서 한 인터뷰에서 그동안 손으로 직접 쓴 코로나19 방역일지 16권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일지는 지자체 공무원들이 방역 현장에서 벌여온 코로나19와의 싸움을 오롯이 담고 있었다. 문 과장은 코로나19 방역과 관련된 모든 것을 일지에 적었다고 한다. 그의 기록은 업무를 시작하는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하루 종일 이어졌다. 그의 일지는 코로나19와의 전쟁을 담은 일종의 ‘난중일기’이기도 했다.
문 과장은 “제대로 대응 하기 위해선 감염병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문 과장은 지역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바로 확진자의 지역별 고유번호와 나이, 성별, 거주지, 직장 등을 노트의 맨 위에 적었다. 이어 확진자의 날짜별 동선과 접촉자, 역학조사 결과 등을 기록했다. 추후에 다시 확인해야 할 내용이나 중요한 사항은 빨간색 글씨로 다시 정리했다.
지난 16일 양성 판정을 받은 한 확진자 관련 일지에는 “열방센터는 방문하지 않았다고 진술”이라는 빨간색 메모가 있었다. 문 과장은 “경북 상주를 여러 차례 다녀오고도, BTJ열방센터 방문 사실을 부인하는 점을 이상하게 여겼기 때문”이라면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을 바탕으로 한 역학조사에서 열방센터에 다녀온 사실을 조기에 확인한 뒤 방역에 나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꼼꼼하게 기록한 일지는 한발 빠른 대응에 힘을 보탰다. 문 과장은 “일지에 나와 있는 확진자 번호와 동선, 접촉자 정보 등을 교차하거나 역추적해 가는 방법으로 집단감염 가능성이 높은 곳을 빨리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선제 대응의 기회를 찾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일지는 개인적인 업무기록이지만, 코로나19 관련 회의에서도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문 과장은 “민감한 개인정보를 제외한 정보는 방역대책회의 등의 자료로 활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문 과장의 일지에는 코로나19 관련 각종 회의 내용과 정책적 대응 방안까지 담겨 있다.
문 과장은 일반 시민들에게도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줄 것을 당부했다. 코로나19 검사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시민을 대상으로 동선과 접촉자 등을 조사하다 보면, 불과 2~3일 전의 일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게 차단 방역을 지연시키는 경우를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그는 “스마트폰의 일정표나 메모장 등에 그날그날의 동선과 만난 사람 등을 간단하게 기록해 놓는 것만으로도 상황 발생 시 방역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이 조금 더 긴장하고, 조금 더 견뎌서 이 사태를 멋지게 극복했으면 좋겠다.”
글·사진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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