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의 창과 방패] 주임원사들 '당나라 군대' 다니나

e뉴스팀 2021. 1. 21.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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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육군 주임원사들이 남영신 육군 참모총장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다. 뉴스를 접하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우리 군이 이 지경까지 왔는지. 또, 내가 고루한 건지.’ 아마 군복무를 마친 이들이라면 첫 번째 문제의식에 공감할 것이다. 군은 명령과 복종을 근간으로 한다. 하급자가 상급자를 들이받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설령 문제가 있다 해도 내부 해결이 우선이다. 심각한 ‘기강해이’라는 점에서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손무(孫武)와 오나라 왕 합려(闔閭) 사이 일화다. 합려는 실전에도 ‘손자병법’이 쓰일 수 있는지 궁금했다. 손무는 궁녀를 둘로 가르고 왕이 총애하는 궁녀를 지휘관으로 삼았다. 그리고 명령과 신호에 따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설명했다. 지시를 따르지 않자 합려가 총애하는 후궁을 지목해 목을 벴다. 손무는 “전장에서 전투를 지휘하는 장수는 그것이 왕명이라도 듣지 않는 게 군율”이라는 말로 기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춘추전국시대처럼 목을 베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은 자율과 창의가 존중받는 시대다. 다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묻는 것이다. 우리 병영문화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다. 군은 이익추구나 이윤창출을 위한 기업과는 다른 조직이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영토를 지킨다. 이 때문에 수직적 문화를 허용한다. 계급은 군 조직을 통솔하기 위한 불가피한 체계다. 시대가 바뀌어도 계급, 군율, 기강은 본질이다.

그날 화상회의 전문을 읽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정도 지시도 못하면 이게 정상적인 군대인가’ 싶다. 이날 남 총장은 부사관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향후 역할을 당부했다. 그는 “헌신, 희생하는 부사관이 없었다면 육군참모총장은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는 말로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또 “사단장 시절 내가 못하는 것을 부사관들이 보완해줬다. 돌이켜보면 혹사시켰다는 생각도 한다”며 개인적 고마움도 피력했다.

그러면서 세 가지를 당부했다. 전장을 주도하고, 병영문화를 혁신하고, 연결자로서 부사관 역할이다. 논란이 된 발언은 병영문화 혁신을 강조하는 대목에서 나왔다. 남 총장은 “군복은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자랑스럽고 떳떳해야 한다”면서 부사관들이 조기 전역하는 문제를 꺼냈다. 잘못된 독신 숙소 문화를 꼬집었다. 임관 기수에 따라 교육을 빌미로 통제하고 억압하는 문화를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자율과 책임을 존중하는 문화를 당부했다.

이어 계급 체계를 강조했다. “존중 받고 싶으면 장교를 존중해야 한다. 공과 사를 명확히 하고 정상적인 지휘계통에서 지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지시다. 문제가 된 건 이런 말들이다. “나이 어린 장교가 부사관에게 반말한다고 항의하는 건 있을 수 없다. 소위가 반말하면 잘못된 것인가. 부사관에게 존칭하는 문화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임무수행에 나이를 앞세우기보다 계급 체계를 존중하라는 취지다.

당사자들이 듣기엔 불쾌할 수 있다. 남 총장이 좀 더 헤아리고 보듬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다. 하지만 군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리한 언사라고 보기 어렵다는 중론이다. 문제 제기 방법도 잘못됐다. 각급 부대는 주임원사 직책을 두고 있다. 대대, 연대, 사단은 물론 육군본부에도 주임원사가 있다. 계통을 밟는 게 옳았다. 덜컥 외부에, 그것도 최고 지휘자를 제소하는 건 경솔했다. 주임원사 징계 청와대 청원도 철회해야 한다. 자칫 장교와 부사관을 편 가를 위험이 있다. 부사관을 향한 비판 댓글은 압도적이다. 이런 시각이 고루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이순신 장군은 무서울 만큼 엄격하게 군율을 집행했다. 탈영, 군량미 절도는 극형에 처했다. 임진왜란이 터진 그해 5월 3일, 탈영병 황옥천을 참수하고 효시했다. 첫 출전을 부하의 목을 베는 것에서 시작한 비장한 전투였다. “훈련은 피 흘리지 않는 전투이며, 전투는 피 흘리는 훈련”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기강이 망가진 군대를 ‘당나라 군대’라고 손가락질한다. 대한민국 군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e뉴스팀 (bod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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