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손실보상제 급물살 '예산 어떻게' 진퇴양난 기재부

조현숙 2021. 1. 2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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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손실 보상제가 급물살을 탔다.

21일 정세균 국무총리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자영업 손실 보상제 법제화를 추진하라고 기획재정부에 공식 지시했다. 영업 제한으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에게 현금으로 보상하는 제도를 법으로 못 박으란 얘기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2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 총리가 이날 공개회의에서 기재부를 ‘콕’ 찍어 별도 지시까지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전날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이 한 발언 때문이다.

김 차관은 20일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정례 회견에서 “해외에서 (자영업자 손실 보상제를) 법제화한 나라는 찾기가 쉽지 않다”고 난색을 보였다. 앞서 정 총리가 “가능하면 상반기까지 (손실 보상제 관련) 입법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한 데 대한 답이기도 했다.

정 총리는 즉각 반응했다. 기재부를 겨냥해 “개혁 저항 세력”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날 저녁 방송에 출연해 “정부 일각에서 그것(법제화)을 부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굉장히 의아스럽다”며 “개혁을 하는 과정엔 항상 반대 세력, 저항 세력이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될 터이지만 결국 사필귀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차관이 20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인구정책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연합뉴스

기재부는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자영업 손실 보상제 법제화 여부를 공식 검토하기로 했다. 김용범 차관은 이날 국회에서 “(정 총리가 지시한) 제도화 방안을 상세히 검토해서 국회 논의 과정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여ㆍ야 가릴 것 없이 관련 법안을 10개 가까이 발의하며 법제화 추진에 앞다퉈 나서고 있는 데다, 청와대는 물론 총리까지 나서 지원 사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물러선 건 아니다. 기재부 고위 당국자는 “법으로 하는 게 맞는지, 법으로 한다면 어떤 형태로 하는 게 맞는지 광범위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수많은 선택지가 있는 만큼 제로 베이스에서 검토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돈이 문제다. 나랏돈 관리를 책임지는 기재부가 마지막까지 버티는 이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영업 피해 보상 범위를 얼마만큼 잡느냐 따라 소요 금액은 천차만별이다. 일부만 지원하더라도 필요한 액수는 상당하다.

자영업자 손실 보상제, 돈 얼마나 들까.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손실 매출액의 50%(일반 업종)에서 최대 70%(집합 금지 업종)까지 보상하는 안을 제안했다. 22일 관련 특별법도 발의한다. 이 경우 정부가 보상하는데 월평균 24조7000억원이 든다.

민 의원은 집합 금지, 영업 제한 기간을 4개월로 가정했는데 총액은 98조8000억원에 이른다. 올해 정부 총예산(558조원)의 17.7%에 달할 뿐만 아니라 보건ㆍ복지ㆍ고용 예산(199조7000억원)의 절반에 육박한다. 1년 치 교육(71조2000억원)ㆍ국방(52조8000억원) 예산을 뛰어넘는다.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그보다 덜한 최저임금ㆍ임대료의 20%를 지원하는 법안을 지난 15일 대표 발의했다. 물론 큰돈이 든다는 점에서 다를 건 없다. 한 달 1조2370억원, 연간으로는 14조844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다.

자영업자 손실 보상제, 다른 예산과 비교하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범위를 넓히든, 좁히든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건 한국 자영업계 특성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자영업 종사자 수는 657만3000명으로 전체 취업자(2690만4000명) 가운데 24.4%를 차지한다. 생산액으로 따져도 국내 경제의 17.5%(지난해 3분기 국내총생산 기준) 비중이다.

법제화가 돼 있거나 자영업 피해에 대한 보상 규모가 큰 독일ㆍ호주ㆍ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자영업 취업자 비율이 10% 안팎으로 한국의 절반도 안 된다. 업소당 통 크게 지원하고, 법으로 규정하더라도 한국 만큼 재정 부담은 크지 않다는 의미다.

반면 한국은 자영업자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지원 대상을 일부로 한정하더라도 수조원, 많게는 100조원 가까운 재정이 추가로 필요하다. 나라 곳간은 이미 비상 상황이다. 올 한 해만 150조원 국가채무 증가(지난해 본예산 대비)가 예고돼 있다. 올해 예산도 적자 국채를 발행하며 근근이 짰는데 보상제까지 더해진다면 고스란히 빚만 더 쌓일 뿐이다.

문제는 더 있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자영업자 매출이나 소득을 파악하는 데도 불투명한 점이 많다. 정확한 피해 액수를 산출하고 대상자를 선별하는 데 어려움이 클 수 있다. 지원 대상에서 빠진 자영업자의 반발도 고민 거리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도 불투명하고, 비슷한 재난 상황이 반복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기재부가 선뜻 법제화에 동조할 수 없는 까닭이다. 사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기본소득제 등 이전에도 비슷한 논란이 반복됐다. 결국 선거철과 맞물려 정치권 뜻대로 결론 났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침묵 속에 기재부만 ‘고립무원’ 상태다.

정치권 주도로 법제화에 속도를 내기로 한 만큼 기재부가 심각한 피해를 겪은 자영업자만을 대상으로 선택적,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자영업 손실 보상제는) 방법론적으로 어떻게 손실을 측정하고 어떻게 또 배분하느냐 하는 문제가 굉장히 크다”며 “또 일정 기간으로 한정해도 최대 100조원까지 재정 소요가 추산되는데 책임감도 없고 미래 재정 위기를 키우는 아이디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교과서적으로 봐도 정부가 손실이 난 걸 보전을 해준다 하면 열심히 경제 활동을 할 유인이 줄어들 위험도 있다”며 “기존 고용유지지원금에 재정 투입을 늘려 고용 충격을 완화하는 등 다각도의 대안 검토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종=조현숙ㆍ임성빈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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