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마구 팠던 日 온천.."공짜로 내놔도 안 가져"

황현택 2021. 1. 2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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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온천의 나라', 일본에서 온천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시설 전체를 '공짜'로 내놔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데요.

왜 그런 건지, 도쿄 연결해 알아보겠습니다.

황현택 특파원, 코로나19 이후 일본 관광 산업 역시 크게 위축됐을 텐데, 특히 겨울철 일본을 대표하는 온천 업이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요?

[기자]

네, 일본에선 이미 몇 년 전부터 온천 업이 사양길에 접어든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 배경에는 일본의 사회 변화가 자리하고 있는데요.

먼저 개업 110년이 넘은 한 온천의 폐업일 모습부터 보시겠습니다.

1905년에 문을 연 이 온천, 올해로 개업 116년이 됐는데요.

한때 일본 왕실이 묵고 갔을 정도로 이름난 온천입니다.

하지만 인근 스키장이 20여 년 전 문을 닫았고, 이어 2011년에는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에서 오던 관광객도 줄었습니다.

숙박객은 연간 1천 명 정도로, 한창때에 비해 10분의 1로 줄었는데요.

여기에 가업을 이어받은 후계자마저 끊기면서 결국 116년 역사를 마치게 된 겁니다.

[소우카와 요시카즈/온천 운영자 : "최근 3~4년간 최선을 다해 왔음에도 우리 힘만으로는 더는 버틸 수 없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앵커]

유명 온천이라면 시설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있을 텐데 왜 그냥 문을 닫은 거죠?

[기자]

네, 최근 일본 상황을 보면 매각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 보시는 마을에선 주민들이 공동 운영하는 온천 시설이 10곳 있습니다.

연간 유지 비용 15억여 원을 마을 사람들이 공동 부담해 왔는데, 최근 적자가 심해지자 10곳 중 7곳이 매물로 나왔습니다.

이 온천의 경우 남탕과 여탕, 휴게실과 매점, 여기에 주차장까지 갖추고 있는데요.

매각 가격 '0원'으로, 온천 시설 전체가 '공짜'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입찰에 참여한 사람은 온천 10곳 모두,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앵커]

온천 시설을 싼값에, 심지어 '공짜'로 주겠다는데도 외면받는 이유가 뭔가요?

[기자]

네, 구입 후에 5년 동안 온천 영업을 계속 해야 한다는 조건이 걸림돌이 된 겁니다.

실제로 이 마을의 고령화 비율은 51%,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입니다.

이와테현 33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고령화 비율 1위입니다.

온천의 주 고객인 마을 주민 수 역시 2005년 7천4백 명에서 지금은 5천4백 명으로 줄었습니다.

시설을 민간에 넘겨도 적자 탈출이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사토 타로/니시와카마치 관광상공과 과장 : "민간이라면 흑자를 당연히 원하겠죠. 다만 민간 사업자는 여러 방식의 도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힘으로 흑자 반전을 이루는 시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한마디로 인구는 꾸준히 줄고 있는데, 온천 시설은 과잉 공급된 상태라는 얘기 같군요.

[기자]

네, 일본 환경성 자료를 보면 2019년 3월이 최신 통계인데요.

숙박이 가능한 온천 시설, 무려 1만 2천8백여 곳이나 됩니다. 연간 이용자도 1억 3천만 명이 넘습니다.

우리나라 온천이 약 450개쯤 되니까 일본이 대략 30배 더 많은 셈입니다.

[앵커]

일본 인구가 주는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그렇다면 수요 예측에 실패했다는 말도 되겠군요.

[기자]

네, 일본 정부는 1980년대 후반, 침체에 빠진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대규모 재정을 투입했는데요.

이 교부금을 타기 위해 지자체들이 가장 많이 시도한 게 바로 온천 건설이었습니다.

[이이데 토시오/온천 전문가 : "일본 정부가 '고향 살리기' 명목으로 각 지자체에 10억 원씩 뿌렸어요. 그 돈으로 많은 지자체가 온천을 팠죠. 그래서 단번에 온천 수가 늘었습니다."]

일본에선 25도 이상 뜨거운 물, 또는 19가지 온천 성분 중 1개라도 기준을 충족하면 온천 시설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특색 없이 우후죽순 늘어난 온천들은 이용객을 붙들 수 없었는데요.

일본의 온천 이용자는 1992년을 정점으로 1천2백만 명 이상 감소했고, 온천 시설 역시 97년을 정점으로 3천 개 가까이 줄었습니다.

[앵커]

지금 보여주신 통계, 2년 전 수치를 보여준 건데, 이후 상황은 더 심각하겠어요?

[기자]

네, 2년 전부터는 수출 규제에 따라 한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었죠.

여기에 특히 지난해 초 터진 코로나19 사태는 결정타가 됐습니다.

한 전문가는 온천이 과잉 공급된 상황에서 코로나19까지 들이닥치면서 앞으로 온천 절반이 사라질 거라고 내다보기도 했습니다.

[이이데 토시오/온천 전문가 : "인구 그 자체가 크게 줄고 있어요. 게다가 금전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던 '전후 베이비붐 세대'도 곧 없어질 거고요. 온천 절반 정도가 사라질지 모르겠어요."]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변화에도 늦었던 일본의 온천 산업,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시작됐습니다.

지금까지 도쿄에서 전해 드렸습니다.

황현택 기자 (news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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