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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마음치유] '부캐'시대의 마음가짐

남상훈 입력 2021. 01. 2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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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자기 모습을 숨기고 다른 사람처럼 행세할 때 드러나는 인격 '부 캐릭터' 줄여서 '부캐'라고 한다.

이제 부캐는 유행을 넘어 자연스러운 생활양식이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무미건조해진 일상에서 색다른 재미를 찾으려고 새로운 부캐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치 과거의 모습이 본캐고, 시간이 흘러 달라진 지금 모습은 부캐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까발림 혹은 실망을 표현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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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와 직업 넘어 '또 다른 나' 변신
급변하는 세상 자연스러운 생활양식
원래 자기 모습을 숨기고 다른 사람처럼 행세할 때 드러나는 인격 ‘부 캐릭터’ 줄여서 ‘부캐’라고 한다. 이제 부캐는 유행을 넘어 자연스러운 생활양식이 되었다. 경기 침체로 한 직장에만 매달려서는 생존이 담보되지 않으니 다양한 부캐 직업이 필요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무미건조해진 일상에서 색다른 재미를 찾으려고 새로운 부캐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직업을 하나 더 갖는다” 혹은 “다양한 취미를 즐긴다”라고 부캐의 개념을 한정해서는 안 된다.

예전에 교장 선생님 모임에 초대 받아 강의한 적이 있다. 그때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다. “학교 밖에서도 교장 선생님인 거 금방 티가 나면, 인생 망한 거예요.” 좀 과한 농담이다 싶겠지만, 본캐(본래 캐릭터) 하나만 갖고 버티다가는 사회적으로 낙오되기 십상이란 걸 강조한 것이었다. 상상해 보라.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이 집에서도 교장 선생님처럼 행동하고, 쇼핑할 때도 교장 선생님처럼 점원을 대하고, 친구를 만나도 교장처럼 굴고, 식당에 가서도 교장 선생님인 거 팍팍 티내가며 주문한다면 과연 그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까? 이런 사람과 친해지고 싶을까? 한 가지 모습만 고집한다면 급변하는 세상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나는 누구이며, 어떤 일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며,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질적이며 심지어 모순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 답할수록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다. 자아가 다양한 모습을 띨수록 스트레스를 덜 받고, 위기에 처했을 때 회복 탄력성이 좋으며, 우울증에 걸릴 위험도 낮다. 다채롭게 분화되지 못한 정체성이 심리적 부적응을 낳는다.

오랫동안 못 봤던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났는데 “옛날 네 모습이 아니네. 너 많이 변했다!” 라는 투의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거다. 마치 과거의 모습이 본캐고, 시간이 흘러 달라진 지금 모습은 부캐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까발림 혹은 실망을 표현한 것이리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언제나 한결같은 사람은 없다. 불변의 자아는 없다. 물론 과거의 그 모습도 ‘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체험을 하면서 자아는 분화한다. 오히려 어린 시절 모습을 나이 들어서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 과거에 묶여 성장하지 못한 것이다.

부캐 역할에 충실한 이를 두고 “가식적이다, 이미지 포장한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다중인격자라며 한 사람의 근본을 문제 삼기도 한다. 그래선 곤란하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른 역할을 하는 게 당연하고, 맥락과 상관없이 똑같기를 요구하는 것이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든다.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할 수 있어야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더 입체적으로 가꾸어야 한다.

오래전 유행가 가사처럼 “내 안에는 내가 너무도 많다.” 단 하나의 진정한 자아란 개념은 허상에 불과하다. 다양한 자아 중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은 가짜다”라고 할 수 없다. ‘나’라는 사람은 다양한 자아의 총합이다. 나를 이루는 다양한 자아 중에 일부만 인정하고, 어떤 것은 못마땅하다며 부정할 때 심리적 문제가 생긴다.

험난한 세상, 부캐 없이 살아남기 힘들어졌다. 한 사람이, 한 가지의 일관된 모습이어야 한다고 강요받던 시대에서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하며 살 수밖에 없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일관된 정체성이 정상이고, 다중적인 것을 비정상이라고 규정하던 때도 이미 지나갔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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