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만 보면 엄마 박완서 떠올라"
음식 얘기로 어머니 10주기 추모
"치맛자락엔 늘 희미한 음식냄새가"
“남동생은 한참 먹성이 좋을 때이기도 했지만 만두를 특히 좋아했다. 만두를 스물다섯 개 먹었다고 자랑하곤 했으니. 볼이 붉었던 소년, 엄마가 만든 만두라면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엄마는 그 아들의 등을 자랑스러운 듯 툭 치면서 만두 만드는 노고를 잊는 듯 허리를 펴셨다.”
박완서(1931~2011) 작가의 딸 호원숙(67) 작가가 음식 이야기로 어머니의 10주기를 추모한다. 수필집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세미콜론)을 기일인 22일에 맞춰 냈다. 책은 주로 어머니와 함께 먹던 소박한 음식에 관한 이야기다. 박완서 작가가 소의 생간을 사다가 얇게 저며 부친 간전, 겨울이 되면 석유 난로 위에 동그란 알루미늄 찬합을 올려 구워주던 카스텔라를 통해 호 작가는 어머니를 되살려낸다. 치맛자락에 음식 냄새가 늘 희미하게 배어있고, 『죄와 벌』 『전쟁과 평화』 곁에 요리책을 나란히 꽂아뒀던 어머니다.
박 작가가 1988년 세상을 떠난 아들에게 먹이던 만두도 나온다. 호 작가의 동생 원태씨는 25세에 사고로 사망했다. 호 작가는 책에서 “만두 박사가 없는데 무슨 재미로 만두를 빚나”하면서도 세밑이 되면 만두를 빚던 어머니를 묘사했다.
호 작가는 20일 전화 통화에서 “음식과 어머니에 관해 써 달라는 출판사 부탁을 받고 나서 음식 리스트를 쫙 써 내려 갔다”고 말했다. 그는 책 서문에 “어머니가 떠오르는 그리운 장면은 거의 다 부엌 언저리에서, 밥상 주변에서 있었던 시간이었다”라고 썼다.
박 작가는 결혼해서 다섯 명의 아이를 낳은 후 마흔에 등단했다. 호 작가는 “일상에서 늘 음식을 차리셔서 가족을 먹이셨던 분”이라고 기억했다. 어머니와 먹던 음식을 마주할 때마다 그는 어머니와 어머니의 글이 연이어 떠오른다고 했다. 이번 책은 박완서 문학의 산증인인 딸이 머릿속 데이터베이스에서 음식이라는 키워드로 추려낸 결과다. 호 작가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음식을, 어머니는 나보다 더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어머니는 지금 존재하지 않으시지만 그렇게 글 속에 계신다”라고 말했다.
호 작가의 책을 비롯해 10주기를 기리는 도서가 잇따라 나왔다. 에세이 35편을 엮은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문학세계사), 개정판으로 나오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웅진지식하우스), 중·단편 10편을 담은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문학과지성사), 마지막 장편 『그 남자네 집』(현대문학) 개정판 등이다. 호 작가는 “어머니의 글에는 많은 코드가 숨어있다. 아주 단순한 글조차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읽을수록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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