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더 그리운.. 글보다 아름다웠던 엄마 박완서"

이기문 기자 2021. 1. 2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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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박완서 작가 10주기.. 함께한 부엌·음식 주제로 맏딸 호원숙 '정확하고..' 펴내

‘어머니가 떠오르는 장면은 거의 다 부엌 언저리에서, 밥상 주변에 있었던 시간이다.’

고(故) 박완서 작가의 맏딸 호원숙 작가는“엄마는 글만 쓰신 분이 아니었다”며“엄마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부엌으로 가 함께 음식을 맛보고 이야길 나눴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소설가 박완서(1931~ 2011)의 맏딸 호원숙(67) 수필가가 어머니 타계 10주년을 맞아 산문집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을 펴냈다. 오늘(22일)은 박완서의 기일. 부엌과 음식을 주제로 ‘엄마'와의 추억을 풀어놨다. 호씨는 어머니가 생전에 지내던 구리시 아치울 마을 집에 산다. “엄마가 ‘그냥 살아라’ 해서 살았더니 그새 10년이 됐다”고 했다. “물려주신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은 서재도, 마당도 아닌 부엌이었어요. 함께 만두 빚고 카스테라 빵을 굽던 때가 자꾸 생각났습니다.” 그에게 박완서는 “작가이기 이전에 엄마였다”고 했다. 박완서는 여느 주부와 다름없이 남편과 오 남매를 위해 매일 앞치마를 두르고 불 앞에 서서 달그락 소리를 냈다. 산문집 ‘호미’에서 박완서는 이렇게 썼다. ‘나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건 참을 수 있지만, 맛없는 건 절대로 안 먹는다.’ 호씨는 “어머니는 맛있는 음식을 일부러 찾아다니진 않으셨지만, 성의 없이 만든 음식에 대해선 마뜩잖아하셨다”고 했다.

음식에 대해 쓰며 작품 속 음식을 발견하는 재미를 찾았다. 소설 ‘그 남자의 집’에서 민어를 손질하는 대목을 보고서 직접 민어를 해체하고, 준칫국 묘사를 읽고선 어머니가 봤던 오래된 요리책을 다시 꺼내 레시피를 따라 해봤다. 그는 “어머니 작품엔 1950년대 말 동대문 시장 어물전 모습 등 당시의 풍경과 음식들이 기록 영화처럼 나타나있다”며 “작품 속 음식에 관한 숨은 이야기를 내가 요리하면서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완서는 나이 마흔에 장편 소설 ‘나목’으로 등단했다. 그때 호씨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소설 쓰기는 우리 가족에게 혁명보다 더 큰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자애롭기만 했던 엄마의 내면에서 어떤 것이 밖으로 튀어나올지 몰라 두려웠다. “소설 속 화자가 어머니를 혐오하는 장면에서 제 가슴이 떨렸어요. 저는 외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했으니까요. 소설과 현실을 분리해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뒤 발표된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고서야 “어머니의 작품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부엌과 살림을 물려받았듯, 호씨는 박완서 문학을 지키고 새롭게 알리는 역할을 도맡고 있다. 출판사와 함께 미발표 원고를 묶어 펴내 세상 빛을 보게 하고, 기존 작품들엔 새로 옷을 입혀 개정판을 낸다. 이번 수필에선 오래도록 옆에서 지켜봤던 생활인 박완서의 모습을 담았다. 그는 “찾아온 손님에게 어머니가 자주 대접하던 소박하고 정갈한 가지나물처럼, 글보다 더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인간 박완서를 편안하게 독자에게 전달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완서와 호원숙 모녀(母女). 박완서의 나이 20대 때다./세계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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