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00,000,000,000,000원.. 빚의 늪에 빠진 세계

남민우 기자 2021. 1. 22.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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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주식·부동산 버블에 가려진 '빚 시한폭탄'

277조달러(약 30경원).

2020년 말 IIF(국제금융협회)가 추산한 전 세계 정부와 기업, 개인이 진 빚(부채)의 총액이다. 삼성전자 2019년 매출(230조원)의 1300배, 대한민국 2021년 예산(555조원)의 540배에 이르는 액수다. 심지어 전 세계 200여 나라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을 모두 합친 것의 3.65배에 달한다. 세계인이 3년 8개월간 번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모두 털어 넣어야 겨우 갚을 수 있다는 뜻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전 세계는 말 그대로 ‘빚의 늪'에 빠진 상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각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유례없는 초저(超低)금리 정책을 펼친 것이 출발점이었다. 여기저기 뭉텅이로 빚이 쌓이더니, 지난해 신종 코로나 대유행(팬데믹)을 계기로 세계 경제가 일제히 뒷걸음치며 빚이 폭증했다.

소득과 매출이 급감한 기업과 개인은 파산을 막기 위해 빚을 냈고, 정부는 소득 보조금 지급과 공공 사업 확대 같은 경기 부양책을 위해 빚을 늘렸다. 이런 식으로 2020년 한 해에만 새로 생긴 빚이 20조달러(약 2경1966조원)다. IMF(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이 중 정부 빚(국채)이 10조달러(약 1경983조원), 기업과 가계 등 민간 빚이 10조 달러였다.

◇빚이 만든 거품, 세계를 뒤덮다

빚이 크게 늘면 원금과 이자를 갚느라 소비와 투자에 쓸 돈이 줄어들어 경기는 나빠지고, 자산 시장도 침체에 빠지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자산 시장은 주식과 부동산,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는 정반대 현상을 보여 경제학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시중에 더 많은 돈이 풀리며 돈을 빌리기는 쉬워졌는데, 경기가 불안하니 이 돈이 실물경제가 아닌 자산 시장에 투자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각국 정부가 빚을 내 지급한 소득 지원금까지 자산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미국에선 정부가 지난해 민간에 지급한 코로나 지원금 2760억달러 증 50~70%가 주식 등 금융시장에 흘러간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에선 집값과 주가가 급등하자 조급해진 개인들이 빚을 내 투자하는 ‘빚투’ 현상마저 나타난다.

경기 침체와 저금리 간의 상호작용이 빚에 기반한 자산 시장의 호황을 낳은 것이다. ‘빚의 늪'이 ‘거품이 가득한 빚의 늪’으로 진화한 셈이다. 이는 자연히 금융 위기와 자산 가격 조정 우려로 이어진다. 1990년대 일본의 장기 경기 침체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모두 빚을 내 사들인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떨어지면서 시작됐다.

지난 2017년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빌딩에 걸린 '국가 부채 시계'가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총부채가 20조5000만달러(약 2경2560조원)를 넘어섰음을 표시하고 있다. 지난해 말 이 수치는 27조8000억달러(약 3경594조원)를 돌파했다. /AFP

◇경기 회복 통한 빚 감소가 최선책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는 이 ‘빚잔치'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Mint가 의견을 구한 글로벌 경제 전문가와 석학들은 경기 회복을 유일한 답으로 봤다. 빚을 줄이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긴축(緊縮·austerity)을 통해 빨리 빚을 갚는 것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로 인한 경기 침체로 긴축은 ‘선택 불가능한 방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려 기업과 가계 소득을 늘리고, 세수도 늘려 민간과 정부의 빚을 갚아나가는 ‘점진적 방법’이 최상 해법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쉽지 않은 길이다. 경기가 정상 궤도로 돌아오려면 몇 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많다. 실물경제가 거대한 빚에 눌려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리를 더 낮추고 돈을 더 공급하는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로 빚 상환 부담을 줄이면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미 금리가 바닥인 데다 돈도 사방에 넘치는 상황이라 별 효과가 없을 것이란 반론이 나온다.

◇양극화와 경기 부진 심해질 수도

줄지 않는 빚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현금 부자와 빚에 눌린 자 간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경기 부진과 인플레이션(전반적 물가 상승), 심지어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우려까지 나온다. 한국은 자산 가격과 가계 부채가 동시에 급등하는 상황이 1990년대 일본의 거품 붕괴 직전과 유사하다는 말이 나온다.

인류 역사에서 빚은 단순히 경제적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수많은 국가가 빚더미에 눌려 쇠락의 길을 걸었다. 16세기 스페인 제국, 크림 전쟁으로 빚더미에 오른 오스만 제국, 프랑스 혁명으로 단두대에 오른 부르봉 왕가, 19세기 대영제국의 쇠락과 볼셰비키 혁명으로 이어진 재정 러시아 몰락의 촉매제는 모두 막대한 빚이었다.

역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이 끝나갈 때 누가 돈을 빌려주고, 누가 돈을 빌렸는지 하나둘 따져보기 시작할 것”이라며 “빚은 경제 문제를 넘어서 각 나라의 운명과 세계의 지정학적 구도를 바꿀 변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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