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일본과 2021년 한국의 '데자뷔'

남민우 기자 2021. 1. 22.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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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후 #mint

이번 주 기획을 준비하면서 유심히 살펴본 곳 중 하나는 1990년대 거품 붕괴 후 부채가 급증한 일본입니다. 1992년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2000달러, GDP 대비 부채 비율은 39%였습니다. 경제 구조가 달라 수평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대표적 거시 지표가 지금 한국과 비슷합니다. 자국 경제에 대한 자부심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도 이 무렵이죠.

이후 30년간 일본 정부는 경제를 되살리겠다며 매년 ‘빚잔치’를 벌여왔습니다. 그때마다 등장하는 조연이 있습니다. 바로 ‘정치에 포획된 관료’입니다. 정치인들의 구호를 그럴듯한 ‘경제 대책’으로 포장해주고, 각종 재정 준칙을 피하려 회계 처리 방식을 비트는 꼼수를 고안해 냅니다. 이를 통해 매년 수십조엔 빚을 내고, 금리는 20년간 0%대에 묶어 뒀습니다. 최근 10년간은 중앙은행이 상장지수펀드(ETF)를 사들이면서까지 돈을 뿌리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해도 일본이 저성장·저물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하지만 주된 요인 중 하나는 정치인들이 쏟아낸 수많은 경제정책이 제 역할을 못 한 것입니다. 그리고 ‘손타쿠(忖度·윗사람의 뜻을 헤아려 행동한다)’ 문화가 뿌리 내린 관료 집단은 일본의 부채를 늘린 가속 페달이었죠.

한국 상황은 어떨까요. 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저출산·고령화 속도는 30년 전 일본보다 심각합니다. 정부 재정을 ‘곳간’으로 보는 국회에서 해법을 찾긴 요원해 보입니다. 정치권의 복심(腹心)처럼 움직이는 정부 관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직 세금 낼 세월이 30년 넘게 남은 30대 월급쟁이 처지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정부의 빚보다, 지역구 예산 수백억원을 확보했다며 현수막을 내거는 정치인들과 그 논리를 완성해주는 엘리트 관료 집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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