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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이웃이 큰 집 살면, 좀 같이 살자 할 건가

김현숙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입력 2021. 01. 22. 03:20 수정 2021. 01. 22.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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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피해 기업 지원은 정부가 해야 할 일
'결과적 평등' 좇는 반강제 이익 공유제는 사회주의적 발상
논리도 근거도 없는 反시장적 개입 멈추라

옆집 이웃이 주식 투자로 큰돈을 벌었거나, 부동산 매매로 큰 차익을 거두었다면 반대로 손실을 본 사람과 과연 그 이익을 공유하는 것이 제도화될 수 있을까? 정부가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준다고 해서 이웃에게 자신의 이득을 선뜻 나누어 줄 수 있을까? 거래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사전에 차익을 나누기로 약속했거나, 자금을 공동으로 투자한 것이 아니면 현실적으로 어려운 얘기다. ‘이익 공유제’가 뜨거운 감자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경제학자 미제스 (L. v. Mises)가 1922년 ‘이익 공유 제도는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사회주의적 제도’라고 비판했지만, 기업 간의 이윤 실현에 격차가 생길 때마다 이익 공유제는 한국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소상공인연합회 간담회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성과 공유제는 상생협력법에 따라 이미 도입되어 있다. 2004년 포스코에서 시작됐는데, 대기업이 협력사와 함께 신제품 개발, 판로 확대, 원가 절감을 포함한 생산성 향상 등 협력을 통해 성과가 생기면 이를 사전 계약대로 공유하는 방식이다. 도요타는 원가 30% 절감 운동을 전개하면서 목표를 달성하면 그 이득을 협력사와 나누었다. 크라이슬러사도 원가 절감 목표 초과분의 절반을 협력사에 제공하는 ‘SCORE(Supplier Cost Reduction Effort)’를 시행했다. 그런데 이는 ‘성과 공유’지 회사의 영업이익을 공유하는 ‘이익 공유’가 아니다.

특정 회사의 영업이익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그 이익의 원천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를 구별해낼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협력 이익 공유제’도 사실상 이런 어려움 때문에 물 건너갔다. 대기업에 재무적 성과와 관련된 모든 협력 중소·중견기업과 이익을 공유하라는 것인데, 영업이익은 여러 변수로 결정되기 때문에 그 목표를 사전에 설정하기도 어렵고 사후적으로 원천을 분해하기도 어렵다.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산업 발전으로 대기업·중소기업의 협력, 플랫폼과 파트너 간의 새로운 협력 모형이 개발되고 협업을 통한 이익의 창출도 가능해지고 있다. 이익 실현 여부가 불확실한 영화 산업 배급 네트워크, 항공기 생산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분담하기 위해 투자 지분에 따라 수입을 나누는 유럽의 항공 업체들, 매출액이나 영업이익이 플랫폼 크기에 의존되는 규모의 경제가 큰 네트워크 산업 등에서 매출액이나 이익의 크기에 따라 협력 기업에 제공하는 수익 비율을 조정하는 사례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사전에 위험을 분산하는 행위이거나 영업이익의 원천이 어디인지 알기에 가능하다.

신(新)제도주의 경제학자들의 상호 신뢰에 따른 이익 공유 개념은 기업 간의 이익 공유가 서로에 이득이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기업 간의 관계가 연속적이고, 합의를 위반할 경우 페널티를 부과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이 또한 산업과 시장의 성격에 따른 당사자들의 사적 계약의 결과이지 정부 방침에 따른 것은 아니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공헌 활동의 형태로 수익 공유나 임금 공유를 하는 사례들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서 산업의 특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이익 공유제를 도입하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시장 개입이다.

한술 더 떠서 코로나 상황에 이익을 낸 기업이 손실을 본 기업과 영업이익을 공유하라는 것은 논리적 근거가 전혀 없다. 기업은 손실을 포함한 모든 재무적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 주체이다. 성과가 나면 그 성과의 원천과 아무 관련도 없는 기업과 이익을 나누라고 한다면 이는 기업의 이윤 추구라는 경제활동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금 조성 등을 언급했으니 벌써 이익 공유제가 어느 정도 반강제적 형태로 전환된 거나 마찬가지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중소기업이 고비를 넘기도록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은 정부 재정의 역할이다. 기업의 사회 공헌이나 자발적 기부를 넘어서는 반강제적 ‘코로나 이익 나누기’는 시장 자본주의의 성과를 부정하고 싶은 현 정부 반(反)시장주의의 단면이다. 예견된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을 올릴 대로 올려놓고 이제야 고개를 숙이고, 공급 확충을 약속한 정부가 또 다른 반(反)시장적 정부 개입을 시작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속성에 변화가 없음을 의미한다.

이러다가는 정부가 가구원 수에 따라 적정 면적을 정해 그보다 큰 집에 살고 있으면 다른 가구와 집을 공유하라고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무리 ‘큰 정부’ 지향 철학을 가졌다 해도, 결과적으로 평등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정부 역할을 민간에 떠넘기는 식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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