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미스트롯] 대중음악에서 대중은 늘 옳다, 어쩔 수 없이 그렇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 1. 22. 05:50 수정 2021. 1. 2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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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미스트롯]
전유진 김다현 김태연 중 한 명은 끝까지 갈 것이다
'범 내려온다'가 미스트롯을 통해 전세계로 퍼지길 기원한다
삼단 고음 같은 것은 노래 잘 하는 사람들에겐 아무 것도 아니다
미스트롯2 1대1 데스매치에서 '약속'을 부르는 전유진양. /tv조선

초등학생 김다현과 김태연의 영상 조회수가 200만 뷰를 넘어 어른들의 노래 영상보다 훨씬 많았다. 트로트가 어린이의 장르인가. 그렇지 않다. 결국 대중은 이 프로그램에서 노래 잘하는 사람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누가 더 놀라움을 선사하는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중학생 전유진과 초등학생 김다현 김태연 중 한 명이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예견해 보지만, 이 셋 중 한 명이 마지막 승자의 자리에 오를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미스트롯 2가 발굴한 사람이 있다면 단연 이 세 명의 어린 노래꾼들이다.

김다현이 1:1 데스매치에서 회룡포를 부르고있다./tv조선

전유진은 고등학생 성민지와 1대 1 대결에서 7대 4로 졌다. 작곡가와 프로페셔널 가수와 개그맨이 섞여있는 심사위원단에서 7대 4는 사실상 5대 5라는 뜻이다. 음악 위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점수를 줘봐야 무대를 보고 얼굴을 보고 프로그램의 흥행을 생각하는 나머지 심사위원들이 표를 쥐락펴락하는 바람에 음악으로는 공정한 심사가 불가능하다.

김태연이 1:1 데스매치에서 '간대요 글쎄'를 부르고 있다./tv조선

어젯밤 데스 매치 가운데 전유진과 성민지의 대결이 가장 볼 만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주현미의 ‘길면 3년 짧으면 1년’이란 곡을 선택했고 전유진이 양보했다고 했다. 이것이 전유진의 패착이었다. 두 사람이 이 곡을 고른 이유는 호흡과 고음과 멜로디가 자신의 장기를 표현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성민지는 성공했고 전유진은 다른 노래를 택하는 바람에 불리했다. 그럼에도 나는 전유진의 편이었다. 이 중학생은 이선희의 분신이다. 아무리 음표가 높게 올라 가거나 성량이 최대로 필요할 때도 전유진은 얼굴을 찡그리지 않는다. 뱃속에서 소리를 끌어올려 미간에서 뿜어내기 때문이다. 이런 가수는 흔치 않다. 전유진이 선택한 노래는 흔히 하는 말로 ‘싸비’가 약한 노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유진은 듣는 사람을 사로잡는 창법을 들려줬다. 나는 전유진이 최종 결선에서 노래하는 것을 꼭 보고 싶다.

시청률 30%를 오르내리는 이 프로그램은 어떤 한 세션을 마무리하면서 끝내지 않고 다른 세션을 시작하면서 끝내는데, 그것이 시청률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시청자로서는 좀 당혹스럽다. 이날 미스트롯의 마지막은 팀 미션 첫 팀에서 끝났는데 그 곡이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였다. 이 곡은 수궁가의 범 내려오는 대목으로, ‘어어부 프로젝트’ 출신의 장영규가 편곡하고 김보람이란 불세출의 안무가가 합작해 만든 곡이다. 이것을 초등학생 김태연이 가창하고 나머지 멤버들이 추임새를 넣으며 도와주는 형식으로 보여줬다. 이 노래가 어젯밤 이 프로그램의 정점이었다. 이 노래는 한국 판소리와 현대 음악과 무용과 무대 연출을 모두 버무려 보여주는 최고의 종합 예술이다. 이것을 선택한 ‘미스유랑단’은 무조건 본선에 올라가야 한다. 나는 이 노래가 시청률 30%의 미스트롯을 통해 전세계로 퍼질 것을 간절히 희망한다.

황우림과 임서원./TV조선

아이돌 출신 황우림과 진달래가 대결한 무대에서 간발의 차이로 황우림이 본선에 올랐다. 황우림의 무대는 흠잡기 쉽지 않았지만 진달래의 꺾기는 과했다. 트로트라는 장르는 꺾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어떨 때 꺾고 어떨 때 아닐지를 잘 고려해야 한다. 그것이 트로트 가수가 세종문화회관에 서느냐, 깻잎축제 무대에 서느냐의 차이다.

영지 무대가 눈에 띄었다. 흰 블라우스에 바지를 입고 나와 가장 평범한 의상을 보여준 영지는 역시 록 보컬이었다. 이 세상에 점 하나 안되지만 내가 모든 세상을 품을 수 있다는 가사도 그렇고, 영지의 무대는 18년간의 무명가수 세월을 들려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영지의 노래는 트로트가 아니었지만 그 정서는 가장 트로트에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어린 가수는 반음 세번 올렸다고 삼단 고음 어쩌구 하는 칭송을 받는데, 영지 같은 가수에겐 그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조용필 노래 ‘창밖의 여자’를 최은비가 불렀다. 과감한 선택이었지만 이 노래는 그렇게 부르면 안되는 것이었다. 일단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하는 식으로 끊어 부르면 노래의 맛이 죽는다. 욕심은 우리 모두에게 아드레날린을 생성시킨다. 그러나 그 신경물질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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